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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

모로코 여행4-페스

by 황교장 2023. 1. 18.

모로코 여행4-페스

2022년 7월 11일, 오늘 일정이 빽빽하게 짜여 아침 7시에 카사블랑카를 나와 페스로 향했다. 차는 대서양이 보이는 길을 따라 수도 라바트 근처까지 가다가 내륙으로 들어갔다. 오늘까지가 명절이라 고속도로에는 차가 거의 없는 한산한 모습이다. 가이드가 모로코의 특산품 중에서 아르간 오일을 적극 추천하였다.

아르간 나무에 오른 염소들

아르간 나무는 모로코 서남부에 위치한 아르가느레 생물권보전지역(Arganeraie Biosphere Reserve)에서 자생하는 고유 수종이다. 이러한 아르간 나무 일부가 라바트의 남동부, 모로코 북동부 끝에 있는 베르칸 지역에서 자생한다고 하는데 지금 지나가고 있는 이곳이 라바트의 남동부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아르간 나무

아르간 나무를 보려고 주변의 나무들을 살펴보았지만 사진에서만 본 아르간 나무와 실제의 아르간 나무를 구별할 수가 없었다. 아르간 오일은 아르간 나무의 열매로부터 전통적인 방법으로 오일을 추출하여 요리는 물론이고 약재료, 화장품 재료 등 다방면으로 사용되어 아주 비싼 가격으로 거래되고 있다. 가이드가 자기 딸이 아토피가 심하여 아르간오일을 사서 바르는데 수제품인 아르간오일은 값이 비싸서 딸은 온몸에 바르고, 아내는 얼굴만 바르고, 자신은 겨우 입술 정도만 바를 수 있다면서 아토피엔 좋은 오일이라고 체험을 들려주었다.

아르간 열매

차창으로 흘러 지나가는 다양한 수종들 가운데 그래도 쉽게 알아볼 수 있는 나무는 올리브 나무밖에 없다.  그런데 아르간 나무와 올리브 나무는 비슷하게 생겼지만 아르간 나무는 가시가 있고 올리브나무에는 가시가 없다고 한다. 계속 이어지는 이국적인 야트막한 산과 구릉이 교차하면서 차창을 스쳐 지나간다.

스쳐 지나가는 풍경을 무념무상으로 보는 것 또한 여행의 참맛이다. 고향같이 정겨운 풍경이 다가왔다가는 이국적인 풍광과 교차하면서 지나간다. 중간에 휴게소에 잠깐 들르고는 다시 한 시간여를 달리자 페스라고 느껴지는 아주 큰 도시가 나타났다.

길가에 차를 잠깐 세우고는 본 것은 하산 2세의 왕궁이다. 입장은 안 되고 차 안에서만 볼 수 있었다. 그야말로 호화롭게 보이는 금빛의 왕궁 대문만 보았다. 라바트에서는 제법 시간을 내어서 볼 수가 있었지만 이곳은 안 된다고 한다. 나름대로 이유가 있겠지만 내부도 한번 보고 싶었다.

모로코의 수도는 1925년 프랑스 보호령 하에서 페스에서 라바트로 옮겨 왔지만 과거의 왕궁을 별궁처럼 지금도 활용하고 있다고 가이드가 설명하고 있다. 그래서 주변을 경비병들이 지키고 있다. 왕궁을 주마간산격으로 보고는 구시가지인 메디나에 도착했다. 입구에서 페스의 가이드가 기다리고 있었다. 페스에선 무려 9,000여 개의 골목길을 다니려면 페스의 현지인 가이드가 필히 있어야 한다.

메디나 안으로 들어가려면 독특한 푸른 빛의 타일로 장식된 ‘페스 블루게이트’라고 일컫는 문으로 들어가야 한다. 페스 메디나의 관문이자 여행객들의 이정표 같은 곳이다. 페스 메디나로 들어가는 여러 문 중에서 가장 화려하고 찾기가 쉬운 문으로 메디나 안에서 길을 잃으면 블루게이트만 찾아 나오면 된다는 문이다. 페스 블루게이트를 지나면 옛 시가지 메디나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페스는 모로코에서 카사블랑카, 마라케시에 이어 세 번째로 큰 도시다. 페스의 구시가지 메디나는 서기 789년, 이드리스 2세(재위 793~828)에 의해 이드리스 왕조의 도읍으로 정해져 13세기 메리니드 왕조 시대에 가장 번성했다. 지금도 1200년 전의 이슬람 왕조 시대의 정취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다. 페스에 미로가 많은 주된 이유는 외적의 침입으로부터 방어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지금도 약 25만 명이 이 좁은 메디나에 살고 있다. 이곳 메디나에는 여전히 이슬람의 전통과 문화가 살아 숨 쉬고 있다. 이 도시의 사람들은 모로코에서 신앙심이 가장 깊고, 문화적으로 가장 세련되고, 예술적 감수성이 가장 발달한 곳이 자신들의 도시, 페스라고 굳게 믿고 살아간다고 한다.

현지인 가이드와 함께 메디나 재래시장으로 향했다. 현지인조차 길을 잃어버린다는 페스의 골목들은 그 수많은 미로 속에서 다양한 물건들이 거래가 되고 있다. 평소에는 사람들이 많아서 북적이는 곳이라는데 역시 명절의 영향이라 가게들은 많이 닫혀 있고, 관광객도, 주민들도 그리 많이 보이지 않는다. 붐비지 않아서 좋은 점도 있지만 페스 본모습을 제대로 못 보는 것 같은 아쉬움은 남았다.

페스는 장인의 도시다. 공예학교가 있어 수공예품의 본산지이기도 하다. 현지 가이드의 안내로 매장으로 들어갔다. 작은 망치 하나로 동을 섬세하게 두드려서 화려한 문양을 만들어 내고 있는 장인을 만날 수 있었다. 그의 손에서 화려하게 살아난 접시는 50년간 수련한 실력이라고 한다.

가죽제품과 아랍풍의 팔찌, 목걸이 등 장신구와 의류를 파는 가게들이 미로의 골목 여기저기에 자리하고 있었다. 페스 현지인 가이드가 오른쪽, 왼쪽을 한국말로 외치면서 우리를 이끌었다. 가이드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859년 개교)인 ‘카라우인 모스크와(Kairaouine Mosque)대학’으로 안내한다. 이곳에서 배출한 수학자와 과학자, 철학자들이 이베리아 반도로 건너가 유럽의 암흑시대를 깨웠다고 설명한다.

가이드는 페스의 하이라이트라고 불리는 전통 가죽염색공장인 ‘테너리’를 보기 위해 또 다른 길로 안내한다. 가죽제품으로 이어진 상점을 지나자 테너리의 입구에 도착했다. 입구에서 박하잎을 하나씩 건넨다. 그리고 코에다 대라고 한다. 얼마나 냄새가 고약했으면 이럴까 싶었다. 계단을 따라 올라가자 작업장이 나타났다. 일행 중 한 분은 바로 화장실로 토하러 달려갔다. 이곳에서는 작업장을 한눈에 내려볼 수 있었다.

이곳 페스는 북부 아프리카와 남부 유럽을 연결하는 중개무역이 활발한 도시로 천 년 이상 가죽을 생산해왔다. 세계 최고 품질로 꼽히는 페스의 가죽은 ‘말렘’이라고 불리는 장인이 털을 벗기는 일에서 무두질과 염색까지 중세 시대의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비둘기 똥이나 소의 오줌, 재와 같은 천연재료를 염색재료로 쓰는 만큼 이곳의 냄새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독하다. 땡볕 아래 악취가 코를 찌르는 곳에서 종일 일해서 버는 수입은 그리 많지 않다고 한다. 그런데도 묵묵히 일하는 이들의 삶을 들여다보면 그 어떤 슬픔보다도 무거운 생존의 무게를 새삼 깨닫게 한다.

테너리 탐방을 하고 간 옆 가게에서는 완성된 가죽으로 만든 가죽제품을 팔고 있었다. 이것저것 구경해 보아도 정작 내게 필요한 것은 없어 보였다. 그런데 한편에 편해보이는 혁대가 있어 가격을 물어보니 우리 돈으로 삼만 원 정도 한다. 지금 가지고 있는 혁대만 해도 세 개나 된다. 퇴직한 이후에는 특별한 날이 아니면 편한 등산바지를 사시사철 입고 다녀 혁대를 맬 일이 적어 사지 않았다.

테너리 탐방을 하고는 바로 연결된 가게에서 테너리에서 완성된 가죽으로 만든 가죽제품을 팔고 있었다. 이것저것 구경하다가 정작 내게 필요한 것이 없어 보였다. 그런데 한편에 편리한 혁대가 있어 가격을 물어보니 우리 돈으로 삼만 원 정도 한다. 그런데 지금 가지고 있는 벨트만 해도 세 개나 있다. 그리고 퇴직한 이후에는 특별한 날이 아니면 편한 등산바지를 사시사철 입고 다녀 벨트를 멜 일이 적어 죽을 때까지 다 못할 것 같아 사지 않았다.

가이드를 따라 점심을 먹기 위해 식당으로 갔다. 식당의 문이 조금 높고 문양이 조금 화려할 뿐이다. 그런데 안으로 들어서자 예사롭지 않다. 더욱더 화려한 문양으로 치장되어 있다.

알함브라궁전을 연상시키기까지 했다. 귀족의 집을 식당으로 개조한 것이라고 한다. 평민과 귀족의 차이는 외형으로 보아서는 차이가 조금 보이지만 안으로 들어가면 확연한 차이가 난다고 한다. 식사도 먹을 만했다. 제법 여유있게 양탄자에 앉아 휴식을 취하다가 다시 미로의 골목길로 나왔다.

페스는 여행자들이 길을 잃기 위해 찾아드는 도시라고 한다. 페스의 메디나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 것은 이방인의 당연한 권리이자 의무라고 한다. 정해진 루트도 없고, 예상되는 소요 시간도 없다. 그저 마음이 내키는 대로, 발길이 닿는 대로 걷고 또 걸을 뿐이란다. 그렇게 느슨한 마음으로 좁고 구불구불한 골목을 따라 걷다 보면 골목은 온갖 소음으로 가득 차 있다.

오래된 옛 사원과 이슬람 학교, 목욕탕과 찻집들이 끝없이 이어진다. 인생 그 자체가 우울한 날에는 페스의 미로를 헤매며 길을 잃자! 길을 잃어보아야 새로운 길을 찾을 수 있다! 고 페스가 속삭인다고 한다. 삶이 허망하고 무의미하여 가질 수도 버릴 수도 없을 때 이곳 페스에 다시 와서 길을 잃고 새로운 길을 찾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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