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인 여행11-세비아
2022년 7월 12일(화) 세우타에서 다시 페리를 타고 알제시라스로 향했다. 올 때 타고 온 배를 다시 탔다. 한 번 타본 배라 반갑고 정감이 간다. 익숙한 것과 새로운 것에는 나름의 특징이 있다. 새로움은 호기심을 자극하고 익숙함은 친숙하여 편안하다. 지브롤터 해협을 건너는 동안 갑판에 서서 배의 속도에 따라 변하는 주변의 풍광을 즐겼다. 풍경도 같은 듯 다른 느낌을 준다.
알제시라스에 도착하자 스페인을 여행하는 동안 함께한 버스가 기다리고 있었다. 버스 기사와 반갑게 인사를 했다. 다음 목적지인 세비야로 향했다. 밀 수확을 마친 농촌풍경이 창가를 스쳐 지나간다. 올리브와 포도나무도 많이 보인다. 지금 지나가는 곳은 헤레스 지역이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셰리 와인은 헤레스 과달키비르 삼각주 지방에서 나는 포도로 만들어진다. 셰리 와인은 발효가 끝난 일반 와인에 브랜디를 첨가하여 알코올 도수를 높인 와인이다. 포트와인과 함께 세계 2대 주정 강화 와인으로 알려져 있다.
셰리와인
포트와인
비교적 드라이하여 식사 전에 식욕을 촉진시켜주는 식전 와인이다. 와인은 좋아하던 기호품이었다. 특히 2018년 7월에 크로아티아 여행에서 사주 상담의 복채로 받은 딩가츠 와인이 생각났다.
딩가츠 와인
도수는 조금 높지만 당가츠 와인의 풍미와 향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이곳의 세리와인과 내일 가는 포르투갈의 포트와인을 비교하고 싶지만 이미 금주를 결심한 참이라 참아야 한다.
버스는 어느새 과달키비르강을 건너고 있다. 과달키비르강은 세비아를 관통해 흐르는 강이다. 세비아는 안달루시아의 주도이다. 스페인은 광역자치주 17개 주와 2개의 해외자치시가 있다. 해외자치시는 세우타와 멜리야다. 광역자치주 가운데 안달루시아주는 인구가 가장 많은 주이다. 그만큼 살기가 좋다는 의미이기도 하겠다.
안달루시아는 알메리아·카디스·코르도바·그라나다·우엘바·하엔·말라가·세비야 등 8개주로 나누어져 있다. 북쪽에는 시에라모레나산맥이 있고, 남쪽은 지중해와 지브롤터 해협과 대서양에 면하며, 서쪽은 포르투갈에 접한다. 과달키비르강에는 ‘황금의 탑(또레 델 오로)’이라는 뜻을 지닌 세비야의 전성기를 상징하는 탑이 있다.
황금탑
1220년 무어인들이 과달키비르강을 통과하는 배를 검문하기 위해 세웠다. 강 건너편에는 은의 탑이 있었는데, 당시에는 두 탑을 쇠사슬로 연결하여 세비야에 들어오는 배를 막았다고 한다. 이후 황금의 탑은 감옥, 예배당 등 다양한 용도로 사용됐다. 황금의 탑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탑을 지을 당시 금 타일로 탑의 바깥을 덮었기 때문이라는 설과 16~17세기에 신대륙에서 가져온 금을 이곳에 두었기 때문이라는 설이 있다. 지금은 작은 해양 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는 탑을 차창으로 보고 스쳐 갔다.
우리 일행은 세비야 대성당 동쪽에 위치한 산타크루스 지역 근처에서 내렸다. 이곳은 옛 유대인 거주 지역으로 미로 같은 좁은 골목이 오밀조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좁은 골목길과 집들은 이슬람 양식이 그대로 남아 있다. 골목에서 유명하다는 빵집과 아이스크림 가게에 들러 아이스크림을 먹고는 세비아 대성당으로 향했다.
골목길을 벗어나자 대성당이 시야에 들어왔다. 그동안 보아왔던 성당들과는 또 다른 느낌이다. 우선 규모면에서 압도한다. 건축 당시에는 세계에서 가장 큰 성당이었지만 현재는 바티칸시국의 산피에트로대성당과 영국의 세인트 폴 대성당 다음으로 세 번째로 큰 성당이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어 있다. 대성당은 1172년 지어진 이슬람 사원인 알모하드 모스크를 개축해서 건설되었다. 멀리서도 보이는 105m 높이의 종탑은 이슬람 사원의 미나렛 위에 고딕 양식으로 지어진 것이다. 증축된 상단부를 제외한 70m 높이까지는 모로코 라바트에 있는 하산 탑과 거의 같은 크기의 탑으로 이슬람양식인 셈이다.
핫산탑은 북(北)아프리카·이베리아반도를 지배한, 모로코 최초 이슬람 왕조인 알모하드 칼리파 왕조(1121∼1269) 때 지어진 탑이다. 무어양식으로 잘 보존된 세계 3대 미나렛은 라바트 하산탑과 마라케시의 꾸뚜비아 모스크 미나렛과 이곳 세비아 대성당 히랄탑이다. 성당이 지어지는 과정에서 옛 미나렛에 종이 설치되고 기독교의 상징인 십자가가 덧붙여져 교회 종탑으로 변했다. 탑 꼭대기에 설치된 여신상이 바람개비처럼 빙글빙글 돌아갔기 때문에 히랄다(바람개비)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대성당에 들어가자 규모와 화려함이 압도한다. 그러나 천정이 생각보다 낮다. 가우디의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을 보고 난 후라서 그런지 그때만큼의 강한 감동은 없었지만 나름의 다양한 특색이 있다. 이슬람 양식인 둥근 천장의 모스크가 그대로 남아 있다. 내부의 그림, 목조 조각 등이 하나하나 아주 섬세하다. 대성당은 고딕, 르네상스, 바로크, 플라테레스크 건축 양식이 혼합되어 있다. 플라테레스크란 ‘은세공’을 뜻하며 주로 스페인과 그 식민 영토에서 사용한 양식으로 15세기 후반 후기 고딕 양식에서 초기 르네상스로 넘어가는 사이에 나타난 양식이다.
많은 유물과 장식품 중에서 가장 화려하게 보이는 것이 황금 제단이다. 황금 제단은 예수의 탄생에서부터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음에 이르기까지 예수의 생애를 44장면으로 세밀하게 표현하고 있다.
황금제단
1480년부터 1560년까지 80여 년에 걸쳐 목재로 만들었다. 제단 가운데 위치한 1.5톤의 황금 예수상은 가장 돋보인다. 세비야 대성당 내부에는 많은 유물들과 미술 작품들이 있어 하나의 박물관이라고 봐도 손색이 없어 보인다.
화려하고 정교한 성가대석과 7,000여 개의 파이프로 연결된 거대한 오르간이 대성당의 웅장함을 더해준다.
고야 성 후스타와 루피나
특히 프란시스코 고야(1746~1828)의 작품 ‘성 후스타와 루피나’가 성당의 무게를 더하는 것 같다. 후스타와 루피나는 자매이다. 로마시대에 이곳 세비야 출신으로 질그릇을 만들며 주위의 어려운 이웃에게 도움을 주면서 살았다고 한다. 독실한 기독교인인 그들은 로마 시대에 순교했다. 순교 후에 로마 가톨릭교회에서 성인으로 추앙하여 히랄다탑과 세비아 대성당의 수호신이 되었다. 이들이 1755년 리스본 대지진에도 무너지지 않게 잘 지켜주었다고 믿는다. 고야의 그림을 보면 두 자매가 질그릇을 들고 있는 배경으로 세비야 대성당이 보인다.
안쪽으로 들어가자 네 명의 왕이 떠받들고 있는 콜럼버스의 관이 있다. 콜럼버스(1451~1506)는 자신의 항해를 지원해준 이사벨라 여왕의 사후 스페인으로부터 철저히 외면당해 ‘다시는 스페인 땅을 밟지 않겠다’라는 유언을 남겼다. 그의 유언에 따라 땅에 묻히지 않고 관을 그 당시 스페인을 지배했던 네 명의 왕에 의해 들려 있는 모양으로 안치했다. 관을 들고 있는 앞의 두 사람은 그의 항해를 지지한 두 왕이고, 뒤에서 고개 숙여 관을 짊어지고 있는 두 왕은 항해 지원을 거절한 두 왕이다. 이 왕들은 당시의 카스티아, 아라곤, 네온, 나바라 왕국의 왕들이라고 한다.
콜럼버스는 스페인 바야돌리드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곳에 묻혔던 콜럼버스의 유해는 1542년 대서양을 건너 산토도밍고로 이장되었다. 1795년 프랑스가 히스파뇰라 섬(지금의 아이티와 도미니카가 있는 섬)을 점령하자 쿠바의 아바나로 이장했다. 쿠바가 1898년 미국-스페인 전쟁으로 독립하자 다시 이곳 세비야 대성당에 안장되었다. 스페인 국가가 이와 같은 무리수를 두면서까지 그의 시신을 운구한 이유는 그의 행적에 대한 찬반 논란에도 불구하고, 콜럼버스가 스페인의 황금기를 개척한 공로자로 인정했기 때문이다.
콜럼버스의 관을 보고는 성물실의 황금 전시물을 보았다. 화려한 황금의 보물들이 잘 진열되어 있다. 이 모든 보물이 아메리카 대륙에서 약탈해온 금으로 만들었다고 생각하니 그리 좋게 보이지는 않았다. 대성당의 내부를 제대로 보려면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아쉬움이 남지만 세비야의 상징인 히랄다탑 안으로 올라갔다.
히랄다탑은 성당 내부에서 올라갈 수 있다. 탑의 마지막 부분을 제외하고 계단이 없다. 올라가는 경사길이 매우 넓고 완만하다. 이슬람의 최고 실권자인 칼리프가 말을 타고 올라갈 수 있도록 만들어졌기 때문이라고 한다. 종탑을 걸어 올라가는 것은 무더운 날씨에 조금 힘이 들었지만 올라가 세비아 시내를 조망하는 것에 비하면 수고로움은 아무것도 아니다.
탑 위에서는 대성당뿐 아니라 맞은편에 있는 알함브라 궁전의 축소판이라 불리는 이슬람의 성채 알카사르도 잘 보인다. 카를로스 1세가 1525년 알카사르에서 결혼식을 올렸다고 한다. 그리고 세비야 시내가 한눈에 다 보였다. 날이 맑아서 저 멀리 투우 경기장까지 선명하게 보였다. 무려 세 번이나 동서남북을 돌면서 세비아 시내의 전경들을 눈에 담았다. 그래도 아쉬운 발걸음으로 탑을 내려와 처음 모스크의 모습으로 남아 있다는 ‘파티오 데 로스 나란호스(오렌지 나무 안뜰)’로 나왔다. 이곳은 오렌지 나무로 숲을 이루고 있다. 이슬람교도들이 예배를 드리기 전 손과 발을 씻었던 곳이었다. 곳곳에 있는 분수대들도 아기자기 예쁘다. 오늘 최고 기온은 43도라고 한다. 이곳 분수대에 흐르는 샘물에 손을 담그고 고양이 세수만으로도 더위가 가셨다.
세비아 대성당을 나와 성당 앞에 있는 면세점으로 갔다. 많은 물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프랑스나 이탈리아에 비해 물건값은 조금 싼 편이라고 가이드는 설명을 한다. 그런데 생각보다는 비싸 면세점을 나와 카페에 갔다. 최고 기온 43도를 피하는 방법으로는 무 알콜 맥주가 최고다. 알콜은 없지만 시원한 맥주 맛은 그대로다. 무려 세 병이나 마셨다.
이젠 마차 투어를 할 시간이다. 대성당 근처에서 4륜 마차를 탔다. 4륜 마차는 귀족들이 타는 마차다. 따각거리는 말발굽 소리를 들으면서 마차를 타니 마치 중세의 귀족이라도 된 기분이었다. 시내를 가로질러 과달키비르강을 따라 올라간다. 버스에서 보았던 ‘황금의 탑’을 지난다. 황금의 탑을 좀 더 자세히 볼 수 있었다. 마차는 마리아 루이스 공원 입구로 향한다. 공원 입구에 있는 건물은 로시니의 오페라 ‘세비야의 이발사’의 무대였다고 알려져 있다. 마차는 공원 안으로 들어갔다. 우거진 가로수길과 꽃밭, 정원, 연못, 폭포와 분수 등 다양하게 잘 조성되어 있다.
원래는 산텔모 궁전의 정원이었으나 궁전 소유주였던 마리아 루이사 페르난다 공작부인이 1893년 세비야시에 기증하면서 시 소유가 되었다. 세비야시는 1929년 이베로 아메리칸 박람회 개최를 앞두고 공원을 재단장하여 현재의 모습이 되었다. 마리아 루이스 공원은 세비야를 대표하는 공원이자 에스파냐에서 가장 아름다운 공원 중 하나로 손꼽힌다.
마리아 루이사 공원을 지나면 마차투어의 마지막 종점인 스페인 광장이다. 스페인의 대도시에는 스페인 광장이 있다. 마드리드의 스페인 광장은 1916년에 작가 세르반테스의 사후 300주년을 기념하여 만들어졌고, 바르셀로나의 스페인 광장은 야간 분수 쇼로 유명하다. 세비야의 스페인 광장은 규모가 크고 스페인에서 가장 아름다운 광장이라고 한다. 오늘같이 더운 날씨에 눈에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노점상이 파는 얼린 생수이다. 가장 빠른 동작으로 생수를 사 마셨다. 시원한 얼음 생수를 마시며 회랑에 앉아 있자 천국이 따로 없는 것 같았다.
세비아의 스페인 광장은 반원형으로 감싸고 있는 거대한 회랑 건물과 광장 가운데 분수를 감싸고 도는 운하, 아기자기한 정원 그리고 정교한 세라믹 장식과 모자이크들로 이루어져 있다. 바로크와 신고전주의, 신르네상스 등 다양한 건축양식이 혼합되어 있다고 한다. 광장은 7월의 햇살 탓에 무척 더웠지만, 건물의 회랑은 시원했다. 광장에서 충분한 휴식을 취하고 나서 플라멩코 공연을 보러 갔다.
플라멩코는 세비야의 대표적 문화유산 중 하나이다. 우리가 간 곳은 타블라오(Tablao)라는 이름의 극장식 레스토랑으로 플라멩코를 공연하는 곳이다. 세비아에서도 가장 알아주는 플라멩코 공연장이라고 가이드는 몇 번을 강조하면서 자랑한다. 국가에서 인정하는 마에스트로의 자격을 가진 사람이 세 분이나 출연한다고 한다. 약 200여 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극장이다.
들어갈 때 각자 원하는 음료를 한 잔씩 주문하면 가져다 준다. 자리에 앉자 공연이 시작되었다. 기타연주자의 연주에 맞추어 몸에 잘 맞는 조끼와 바지를 입은 남자 무용수와 화려한 색상에 주름이 많은 긴 치마를 입은 여자 무용수가 나와서 손과 발을 이용한 다양한 동작으로 공연을 시작하였다.
플라멩코는 바일레(춤), 토케(기타 연주), 칸테(노래)를 3대 요소로 한다. 그리고 여기에 플라멩코 고유의 박수 소리인 팔마스와 타악기 등이 등장한다. 특히 사파테아도(Zapateado)로 불리는 발동작은 구두로 무대 바닥을 치며 기묘한 흥분을 자아내게 한다. 구두의 앞코로 치는 발동작인 푼타(Punta), 뒤굽으로 치는 발동작인 타콘(Tacon) 등의 세부 동작으로 나누어진다. 또 다른 감상 포인트인 팔동작은 브라세오(Braceo), 손동작은 마노(Mano)라고 부른다. 격렬함과 우아함, 빠른 동작과 정지된 포즈가 교차하는 이 독특한 춤은 플라멩코라는 예술에 다채로움과 개성을 부여한다.
짧은 휴게시간 후 이부 공연에는 남자 마에스트로가 나와 춤을 추는데 포스가 장난이 아니다. 현란한 발동작과 섬세한 손동작에 우아함과 카리스마가 넘쳐 관객들을 숨 죽이게 하고 완전히 압도한다. 한 시간 반이라는 시간이 쏜살같이 지나갔다.
그동안 관광지에서 보는 민속공연은 대부분이 그게 그거였다. 그런데 파리의 물랭루즈의 캉캉과 중국 장예모 감독이 만든 계림 양삭을 배경으로 한 인상유삼저, 운남 여강 옥룡설산을 배경으로 한 인상여강가무, 서안 화청지를 배경으로 한 장한가는 다시 보고 싶은 명공연이었다. 세비야의 플라멩코 역시 다시 보고 싶은 공연에 추가되었다.
인도 북부의 라자스탄에서 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집시들의 기나긴 방랑이 페르시아와 콘스탄티노플을 거쳐 발칸반도 일대와 러시아, 그리고 서유럽 곳곳으로 이어졌다. 그중 이베리아 반도의 남쪽까지 먼 길을 갔던 집시들이 플라멩코의 주인공들이라고 한다. 집시들이 안달루시아 지역에 들어 온 때는 15세기경으로 추정되고 있다. 플라멩코는 집시들과 무어인, 그리고 유대계 스페인 사람들에 의해 시작되었다. 기독교 왕국으로 통일된 스페인에서 박해받았던 이들의 한이 담겨 있어 전통 플라멩코에는 죽음, 번뇌, 절망 등을 정서적 근원으로 하고 있어 장엄하다. 어디에서도 환영받지 못한 삶을 살아 온 우수와 한이 표현되어 있다
플라멩코에는 두엔데(Duende)라고 하는 고유한 표현이 있다. 두엔데를 한 마디로 정의하기는 힘들다. 우리나라의 아리랑이 지니는 한의 정서나 포르투갈 파두가 지니는 사우다드(Saudade)라는 정서처럼 스페인 집시들의 피맺힌 한과 무어인들의 숙명, 그리고 안달루시아 사람들의 열정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것으로, 플라멩코의 예술혼이 극한에 다다른 경지라고 할 수 있다.
세비아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 중 하나는 돈 후안이다. 돈 후안은 ‘카사노바’와 함께 바람둥이의 대명사로 불린다. 1630년 작품인 티르소 데 몰리나의 희곡 ‘세비야의 난봉꾼과 석상의 초대’에 처음 등장한다. 그런데 돈 후안은 실제 세비야의 귀족이었던 돈 미겔 마냐라를 모델로 했다고 한다. 돈 후안이 많은 작품에 나온 만큼, 그의 성격도 작품마다 다양하다. 몰리에르의 ‘돈 후안’, 모차르트의 ‘돈 조반니’, 바이런의 ‘돈 주앙’, 슈트라우스의 ‘돈 후앙’ 등이 있다.
특히 모차르트는 자신의 오페라에서 존 조반니의 하인 레포렐로의 입을 빌어 그를 이렇게 설명한다. “저희 주인님이 ‘작업’한 미인들의 기록은 이렇습니다. 이탈리아에서 640명, 독일 230명,프랑스 100명,터키에서 91명이고 스페인에서는 무려 1,003명입니다. 이 중에는 시골처녀,하녀,창부,백작부인,공작부인 등 지위 계급 스타일 연령에 관계없이 모든 부류의 여인들이 있지요.”
당시에 돈 후안이 귀부인을 유혹했던 장소로 알려진 ‘호스텔 델 로렐’은 산타크루즈 거리에 있는 작은 호텔로, 1년간의 예약이 꽉 차 있을 만큼 지금도 인기를 누리고 있다고 한다. 19세기의 극작가인 호세 소릴로가 돈 후안의 이야기를 다시 쓰면서 무대로 삼았던 이 호텔이 결국 돈 후안의 밀회처로 소문나게 된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세비아는 조르부 비제가 작곡한 오페라 ‘카르멘’의 무대가 된 곳이다. 또한 세비야는 ‘세비야의 이발사’,‘피가로의 결혼’등 25개의 오페라의 배경이 되는 도시이기도 하다. 언젠가 세비아에 다시 와 여유 있게 힐링하면서 천천히 음미하면서 즐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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