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갈 여행1-리스본과 영화 ‘리스본행 야간열차’
2022년 7월 13일 아침 일찍 일어났다. 숙소 주변을 돌아보니 수영장이 잘 정비되어 있다. 아침부터 날씨가 더워 수영을 한번 하고 아침식사를 하려고 했지만 9시부터 수영장이 개장된다. 아쉬움을 남기고 호텔에서 아침식사 후 포르투갈 리스본으로 향했다.
주변 풍경은 농촌 그 자체다. 스페인이 농업국가임을 알겠다. 농작물을 수확하고 난 후의 그루터기와 올리브 나무, 포도밭들을 스쳐 지나간다. 한 시간 조금 더 달리자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국경이 나왔다. 가이드의 설명이 없었다면 전혀 모르고 지나갈 뿐이었다. 작은 개울을 건너니 국경이다.
영화 ‘리스본행 야간열차’에서 아마데우와 연인 스테파니아가 스페인으로 도주할 때 리스본의 도살자로 불린 비밀경찰 멘데즈의 도움으로 국경을 통과하여 목숨을 건지는 장면과는 너무나도 다르다. 영화 속 배경인 1973년의 국경의 모습과는 다를 수밖에 없겠지만 적어도 당시의 국경 초소의 흔적 정도는 남아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가입국 간 국경 검문을 철폐하는 솅겐조약 덕분으로 사람과 물자의 이동이 너무 자유로워 한 나라처럼 느껴진다.
30여 분을 더 달리자 휴게소가 나타났다. 휴게소에는 포르투갈에서 유명하다는 에스프레소 커피를 마셨다. 지금까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커피는 믹스커피였다. 단맛이 많이 나는 커피를 좋아하다보니 커피 애호가들에게 늘 촌사람이라고 놀림을 받았다. 그들이 좋아하는 커피를 마셔보면 쓴맛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곳에서 먹어본 에스프레소 맛은 고소하면서도 기분 좋은 쓴맛이다. 커피 애호가가 되려면, 일단은 우유가 들어간 커피를 끊고, 소스나 설탕을 멀리하면서, 커피 본연의 맛을 느낄 수 있도록 혀를 길들여야 한다고 하는데, 포르투갈의 에스프레소와 같은 커피 맛이면 충분히 즐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휴게실을 나와 한참을 달리자 바다처럼 보이는 광활한 강이 나왔다. 대서양으로 흐르는 타구스강이다. 타구스강을 건너는 멋진 다리가 ‘4월 25일’ 다리다. 다리를 건너자 포르투갈의 수도인 리스본의 중심지인 로시오광장에 도착했다. 리스본은 포르투갈의 수도이며 인구는 55만 명 정도다. 포르투갈 사람들은 리스보아(Lisboa)라고 부른다. 리스본은 ‘매혹적인 항구’라는 뜻이라고 한다. 이름에 걸맞게 4월 25일 다리를 건너는 순간부터 풍경이 매혹적이다.
리스본은 풍수적으로 타구스강과 일곱 개의 높은 언덕으로 이루어진 전형적인 배산임수의 도시다. 타구스강을 따라 30㎞에 걸쳐 있는 리스본 시가지는 세 개 지구로 나뉜다. 중앙부는 바이샤라고 부르는 저지대로 거의 전 지역이 지진 후에 재건돼 상업과 행정기관이 밀집돼 있다. 바이샤를 중심으로 동부는 페니키아인과 로마인의 거리였던 옛 시가지이고 서부는 신시가지다. 최근에는 시가지가 북쪽으로도 확장되고 있다.
로시우 광장에서 오토바이를 개조한, 바퀴가 3개 달린 툭툭이를 타고 시내 파노라믹 투어에 나섰다. 툭툭이를 타고 신시가지와 구시가지를 다 돌아보는 여정이다. 로시우광장은 여행의 시작점이 되는 곳이다. 오늘 리스본 날씨가 장난이 아니다. 최고기온 43도라고 한다. 심지어 산불이 나서 방화작업을 하는 장면을 뉴스에서 보았다. 그런데 이처럼 더운 날씨를 시원하게 하는 행운을 만났다. 툭툭이 기사님이 21살의 미모의 아가씨다. 상큼한 미소로 인사를 한다.
툭툭이는 서서히 출발해 갈수록 속도를 올려 주마간산 격으로 리스본 시내를 지나간다. 나의 기억 속에 있는 리스본은 영화 ‘리스본행 야간열차’의 배경이었다. 영화 속의 배경을 찾아본다는 일념으로 주변 변해가는 풍경들을 자세히 살피려고 애를 쓰고 있다. 영화 속 배경과 비슷한 듯 다른 모습들이 이어져 지나간다.
리스본은 1994년 유럽 문화 수도로 선정되었을 만큼 풍부한 문화자원을 보유하고 있다. 리스본에는 로마네스크, 고딕, 마누엘, 바로크, 모던 및 포스트모던 형식까지의 다양한 건축물들이 있다. 이처럼 다양한 양식의 건물들이 주마등같이 지나간다.
툭툭이와 자주 마주치는 노란색 전차 트램은 이국적이다. 트램은 리스본의 전통적인 대중교통수단으로 1901년에 도입되었다고 한다. 미국에서 수입되어 ‘아메리카노’라고 불리기도 한다. 대부분 20세기 초반부터 제작된 소형 트램을 지금도 사용하고 있다. 이 노란색 전차는 리스본의 관광 아이콘 중 하나로 가파른 언덕과 좁은 거리에 잘 어울린다.
툭툭이가 가장 높은 언덕까지 올라와서 멈춘다. 리스본 전역이 다 보이는 곳이다. 사진에서 본 제로니모스 수도원과 벨렘탑도 잘 보인다. 가시거리 좋은 날씨 덕분에 50만 명이 사는 시내 전부가 다 보인다. 고풍스럽고 아기자기하면서 높은 건물이 없어 평화스럽게 보인다.
동서남북을 다 둘러보았다.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타구스강이다. 타구스강은 이베리아 반도에서 가장 긴 강으로 타호강 또는 테주강으로도 불린다. 가장 넓은 강폭은 약 10km로 가이드의 설명이 없었다면 바다로 알았을 것이다. 영화 리스본행 야간열차에서 주인공 레이먼드와 안과의사인 마리아나가 그녀의 삼촌인 주앙을 만나러 양로원을 찾아가면서 배를 타고 사이좋게 가는 장면이 있는데 그곳이 바다인가 했는데 이곳에 와보니 타구스강 어귀의 어느 선착장일 것 같다.
나의 사주를 보면 나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물이다. 그래서 그런지 물만 보면 그저 좋다. 물을 건너는 다리도 매우 좋아한다. 이곳에서 가장 인상적인 곳은 올 때 보았던 ‘4월 25일 다리’이다. 1966년에 완공된 이 다리는 당시 독재자의 이름을 붙여 ‘살라자교’라고 불렀다. 그러나 1974년 4월 25일은 독재자를 몰아낸 날을 기념해 ‘4월 25일 다리’라고 명명했다. 그래서 매년 4월 25일은 포르투갈혁명 기념일이다.
살라지르 독재 시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가 ‘리스본행 야간열차’이다. 리스본에 꼭 오고 싶은 이유가 바로 이 영화 때문이었다. 같은 영화를 세 번 이상 본 영화는 기억에 없을 정도인데 ‘리스본행 야간열차’는 세 번이나 보았다. 원작 자체가 삶에 대한 심오한 철학적 주제를 담고 있는 만큼 영화 또한 생각할 거리가 많았다.
‘리스본행 야간열차’는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두 번이나 수상한 거장 빌어거스트가 감독한 영화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받은 연기파 배우 제레미 아이언스가 주인공 레이먼드 역할을 맡았다. 그리고 프랑스 국민 여배우 멜라니 로랑이 노년의 스테파니아를 연기했다. 전설의 감독 존 휴스턴의 손자이자 ‘오만과 편견’등에서 열연했던 잭 휴스턴이 아마데우의 역할을 맡아 호흡을 맞춘 영화이다. 이 영화는 2013년도에 제작하여 이듬해인 2014년에 발표되었다. 원작의 영화화가 결정되면서 빌 어거스트 감독은 제레미 아이언스만이 주인공 ‘레이먼드’역을 해낼 수 있다면서 그에게 러브콜을 보냈다. 제레미 아이언스는 단 이틀만에 수락했다.
그는 원작 소설의 팬이었기에 망설임 없이 빌 어거스트 감독의 출연 제안을 즉각 받아들였다고 인터뷰에서 말한 바가 있다.
원작은 파스칼 메르시어(Pascal Mercier, 1944~)가 2004년에 ‘리스본행 야간열차’를 출판하여 독일을 비롯 세계 30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되었다. 한국에서도 2007년 최초 출간 후 스테디셀러 자리를 굳건히 지킴으로써 현대고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파스칼 메르시어는 스위스 베른에서 출생하여 베른에서 고등학교까지 마친 후 독일 하이델베르크와 영국 런던에서 철학을 공부했다. 1993년부터 베를린자유대학교에서 고전문헌학, 언어철학 교수로 재직한 학자다.
이 영화에는 바톨로메오 신부역의 ‘크리스토퍼 리’도 특별 출연했다. 그는 ‘반지의 제왕’ 시리즈에서 마법의 지팡이를 가지고, 기다란 흰 수염을 휘날리며 나타났던 호빗 역을 맡았다. 촬영 당시 92세의 노장 배우로 노익장을 과시했다. ‘크리스토퍼 리’는 2016년 95세의 일기로 타계했다. 그는 키가 196cm인 장신으로서 영국이 자랑하는 전설적인 배우다. 이처럼 화려한 출연진들이 있어 영화는 더욱 묵직하게 다가온다.
영화 ‘리스본행 야간열차’는 철학적 주제들을 많이 담고 있다. 무엇보다도 삶의 의미를 규정하는 철학적 개념으로 ‘우연’이 주요한 모티프로 등장한다. 무미건조한 레이먼드의 일상을 송두리째 뒤바꾸어 놓은 그의 리스본행도 출근길 다리 위에의 우연한 만남이다.
그에게 새로운 삶의 변화를 가져다준 마리아나와의 만남도 예기치 않게 일어난 자전거 충돌사고 때문이다. 영화는 온통 우연투성이다. 아마데우와 스테파니아의 만남도, 아마데우와 멘데즈의 악연도 우연에서 비롯된다. 특히 멘데즈와의 우연은 아마데우의 삶을 바꾸고, 스테파니아의 목숨을 구해줌으로써 결과적으로 혁명을 성공시키는 요인으로까지 연결된다.
우연의 사전적 의미는 “아무런 인과관계가 없이 뜻하지 아니하게 일어나는 것”이다. 철학의 영역에서 결정론과 비결정론은 오랫동안 대립해 왔다. 근대 자연과학이 등장한 이래 물질적인 영역에서는 인과 필연의 법칙이, 인간의 정신적 영역에서는 의지의 자유가 지배하는 것으로 상호 양립을 인정하는 추세이다. 그러나 최근에 분자생물학과 유전자공학의 발달에 따라 행위를 결정하는 인간의 의지나 성격은 유전자에 의해 결정된다는 유전자 결정론이 제기되면서 인간의 자유의지와 관련된 논쟁은 또다시 부상하고 있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이 논쟁들이 모두 인간의 생각과 행위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라는 세계관의 문제라는 것이다. 세계관은 과학의 성과와 상호 영향을 주지만 종국적으로는 증명을 넘어선 형이상학의 영역이다. 그러므로 결정론과 비결정론은 인간과 세계를 바라보는 인간의 태도와 관점에 따라 대립하거나 양립할 수 있다. 따라서 인간사는 어떤 일이든 우연으로 이해될 수 있고 필연으로 이해될 수도 있다. 사주명리 이론에서도 인간의 운명은 결정론이 약 70%이고, 비결정론 즉 운명 개척론이 약 30%로 보는 것이 다수다.
레이먼드는 마리아나와의 만남을 계기로 자신에게 일어나는 놀라운 변화들을 경험하면서 새로운 안경, 새로운 눈으로 자신의 삶을 되돌아 본다. 이러한 경험과 자각은 서서히 마리아나에 대한 사랑의 감정으로 이어진다. 자신의 삶에 대한 치열한 반성은 자신의 잠재된 욕망과 능력을 일깨워 놓는다.
레이먼드의 이러한 행위들을 사주 명리에서는 30년 또는 10년마다 바뀌는 긍정적인 대운이 온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대운이 왔다고 가만히 있으면 안 된다. 적극적인 참여와 용기가 필요하다. 용기는 ‘두려움이 없는 것이 아니라 보다 소중한 것이 있음을 아는 것’이다. 즉 소중한 것에 대한 깨달음은 타성적 삶을 진취적인 자성적 삶으로 바꾸어 놓는다.
영화 ‘리스본행 야간열차’에는 다양한 군상이 펼치는 다양한 형태의 사랑이 그려지고 있다.
우선 아마데우와 스테파니아의 사랑이다. 이는 마치 활화산 같은 사랑이다. 그들은 첫눈에 서로에게 빠져든다. 그런데도 아마데우는 조지와의 오랜 우정 때문에 조지의 애인인 스테파니아에게 고백하지 못하지만 이미 그녀가 자기의 모든 것이 되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에 비해 스테파니아는 조지가 옆에 있는데도 처음 만난 순간부터 조지의 손길을 물리친 채 아마데우의 볼을 어루만진다. 결국 아마데우는 스테파니아에 이끌려 의사로서의 소임도, 여동생 아드리아의 간절한 호소도 물리치고, 조지의 마지막 절규도 뒤로한 채, 스페인으로 도피를 감행한다. 그러나 그토록 뜨겁게 불타올랐던 사랑도 그들만의 세계에 도착한 첫날 떠오르는 아침의 태양과 함께 종말을 맞는다.
아마데우는 뜨거운 열정과 격정에 찬 언어로 자신의 사랑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스테파니아는 그것에 자신의 존재가 숨 막힐 정도로 압도당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번민 끝에 아마데우에게 달려들었던 불같은 충동의 크기만큼 냉정함으로 아마데우의 사랑을 거부한다. 그리고 그들은 이별 후 그 잠깐의 사랑을 평생의 기쁨과 고뇌로 끌어안고 자기만의 세계에 스스로를 가둬 놓고 고독한 삶을 살아간다.
조지와 스테파니아의 사랑은 서로의 필요에 이루어진 사랑이다. 조지는 스테파니아의 미모에 온 정신을 빼앗겼고 스테파니아는 아버지를 여윈 후 자신을 보호해 줄 강인한 남자가 필요했기 때문에 조지의 품에 안겼다. 그러나 조지는 아마데우와 스테파니아가 사랑에 빠진 것을 안 순간부터 질투로 스테파니아를 죽이고 싶어 한다. 그러나 조지는 아마데우와의 진정한 우정을 선택한다.
한편 레이먼드와 마리아나의 사랑은 중년의 사랑답게 차분하고 은근하다. 마치 짚불 속 불덩이처럼 숨겨져 있다. 이들의 사랑은 대화와 기다림, 말과 느낌 모두를 통해 서서히 익어간다. 아마데우와 스테파니아의 사랑처럼 고뇌에 찬 파국으로 치닫는 사랑이 아니라 이해와 소통으로 승화되는 따뜻한 사랑이다.
이들 남녀의 사랑을 사주 명리로 풀어보면 아마데우와 스테파니아의 관계는 천간과 지지가 합과 충과 형이 다 있으면서 일간은 서로가 상극의 양일 것이다. 이 둘은 천재다. 아마데우는 재성, 관성, 인성이 상생이 되어 뭐 하나 부족한 점이 없는 사주일 가능성이 높다. 단지 대운이 20대 후반부터 나쁘게 흘렀을 것 같다. 그런데 스테파니아는 암기력이 상상을 초월한다. 그리고 대학교수가 되었다. 이는 인성도 강하고 일간도 강하고 상관도 강한 사주이지만 재성이 없는 사주일 것이다. 상관은 정관인 남편을 죽인다. 그래서 평생 혼자 독신으로 살 수밖에 없는 사주라고 생각된다.
또한 조지와 스테파니아의 사주를 비교했을 때 형충파해 원진살까지 다 있는 사주라고 생각된다. 단지 일지는 합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일지는 성적 궁합을 말한다. 그래서 그들의 속 궁합은 맞기 때문에 잠자리를 같이하고 있었다. 그리고 둘 다 독신으로 사는 걸 보면 상관이 강한 사주이다. 이들은 둘 다 레지스탕스의 핵심 인물이다. 상관은 법이나 규칙을 의미하는 정관을 공격한다. 특히 여자 사주에 정관은 남편이기도 하다. 혁명가들은 현재의 법을 뛰어 넘어야 혁명이 가능하기 때문에 상관이 강하다.
레이먼드와 마리아나의 사주 궁합은 상생관계에 합인 사주로 볼 수 있겠다. 둘 사이에는 의견 충돌이 없다. 레이먼드는 재미없고 배려성이 없다는 이유로 전 부인에게 5년 반 전에 이혼당했다. 그런데 마리아나에게는 재미있는 사람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리고 마리아나는 미모의 안경사이지만 독신으로 늙어가고 있다. 이러한 사람은 오행이 편중되어있는 사주에서 많이 볼 수 있다. 따라서 마리아나와 레이먼드는 서로에게 필요한 오행이 상대에게는 있는 경우일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경우에는 헤어지지 않는다. 특히 일간 오행이 상생되고 지지가 합이 될 경우는 그렇다.
영화에서 마지막 대사인 “여기 그냥 머무시면 안 돼요?”라는 마리아나의 물음에 뒤돌아보며 “뭐라고요?”라고 레이먼드의 되묻는 장면은 각자 나름으로 판단하라는 작자의 의도겠지만 결국 레이먼드는 베른에서 자기의 짐을 챙겨와서 마리아나와 리스본에서 남은 인생을 알콩달콩 잘 살 것 같다. 사주 명리에서 상생관계와 합 되는 사주는 헤어질 가능성이 거의 없다.
마지막으로 아마데우가족의 사랑이다. 이들은 애증의 관계이다. 즉 사랑과 미움의 관계이다. 아마데우의 아버지는 귀족 가문 출신의 고위직 판사로 아들에게 따뜻한 한마디 말조차 건네지 않을 정도로 매우 엄격하다. 아마데우는 그러한 아버지를 무서워하고 특히 독재정권을 위해 일하는 것을 수치스러워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아버지의 사랑과 관심, 인정에 목말라한다.
아버지도 아들이 자신을 수치스러워하는 줄 알고 있지만 마음속 깊이 아들에 대한 사랑과 긍지를 간직하고 있다. 영화 속에서 아버지에게 아들이 졸업 연설이 어땠냐는 물음에 아버지는 ‘라틴어로 했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대답한다. 이 말은 아버지가 아들의 생각을 존중한다는 의미다. 아버지는 아들이 죽고 나서야 처음으로 아마데우의 관 위에 카네이션을 올리며 ‘언제나 너를 자랑스럽게 여겼다’고 고백한다.
이 말을 들은 아드리아는 왜 오빠가 살아 있을 때 말하지 않았느냐고 묻는다. 그리고 아드리아나의 오빠에 대한 사랑은 집착에 가깝긴 하지만 그것은 그녀의 삶을 지탱하는 근간이 된다. 오빠는 그녀의 목숨을 구해준 생명의 은인이다.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오빠에게 긍지를 느끼면서 그로부터 오는 충만된 자존감으로 늘 오빠의 곁을 지킨다. 비록 그녀의 오빠에 대한 사랑과 자존감은 스테파니아의 출현으로 깨어지지만, 오빠에 대한 그리움으로 평생을 혼자 우울하게 살아간다.
이들 가족 간의 사랑은 격동의 혁명기를 보내면서 정치적 신념과 가족애 사이에서 서로 긴장하며 번민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정치적 혼란기를 사는 사람들은 정치에 냉소적이거나 무관심하고 가족끼리는 정치 이야기를 꺼린다. 이는 정치를 잘못하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작금의 대한민국도 마찬가지라고 생각된다.
영화 ‘리스본행 야간열차’는 이 밖에도 영혼과 죽음, 종교와 죄의식의 문제 등 철학적인 생각거리를 담고 있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이러한 것들은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게 하고, 앞으로의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대한 화두도 던져주고 있다.
영화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스위스 베른의 한 고등학교에서 고전 문헌학을 가르치며 평범하게 살고 있던 레이먼드 그레고리우스는 집과 학교를 오가며 무미건조한 삶을 이어가는 초로의 남자이다. 그는 비 오는 날 출근길에서 다리 난간 위에서 강으로 뛰어내리려는 빨간 코트를 입은 한 여인을 구한다.
비에 젖은 그녀를 학생들이 수업하는 교실로 데려가 옆쪽 빈자리에 잠시 있도록 했는데, 그녀는 교실 밖으로 나가 홀연히 사라진다. 레이먼드는 그녀의 빨간 코트에서 책 한 권과 15분 후에 출발하는 리스본행 열차티켓을 발견하고는 그녀를 찾아 베른역으로 달려간다. 그러나 그녀를 만나지 못한다. 레이먼드가 당황해 하는 동안 리스본행 열차가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 순간, 그는 자신도 알지 못하는 강렬한 느낌에 휩싸여 기차에 올라탄다.
그는 기차 안에서 그녀가 두고 간 책을 읽으며 그 책의 내용에 흠뻑 빠져든다. 책은 포르투갈의 의사이자 레지스탕스였던 아마데우 프라두가 쓴 ‘언어의 연금술사’이다. 아마데우가 레지스탕스로 활동했던 자신의 삶을 기록해 놓은 책이었다.
리스본에 도착한 후 레이먼드는 책의 저자인 아마데우의 삶을 탐문하기 시작한다. 그의 삶을 알아갈수록 그의 삶을 동경하게 된다. 늘 변함없는 일상을 유지해온 자신의 삶에 대한 생각이 조금씩 달라지고 있음에 놀라워하면서 그의 행적을 좇는 데 온 정신을 쏟는다. 영화는 아마데우와 그를 둘러싼 사람들의 행적을 좇는 레이몬드를 화자로 삼아 1973년과 2013년이라는 과거와 현재의 시간을 오가며 액자식 구조로 전개된다.
레이먼드는 먼저 아마데우의 집을 찾아간다. 그곳에는 아마데우의 여동생인 아드리아나가 살고 있었다. 아드리아나는 오빠가 여전히 살아있는 것처럼 말하지만, 가정부로부터 아마데우가 이미 세상을 떠났다는 얘기를 듣는다. 카네이션 혁명이 일어난 날 병으로 사망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레이먼드는 아드리아나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자전거와 부딪치는 사고를 당해 안경이 깨졌다. 안경 때문에 안과의사 마리아나를 만나 이야기를 하던 중 그녀의 삼촌이 아마데우와 함께 반독재 투쟁을 한 주앙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는 마리아나와 함께 요양원에 있는 주앙을 찾아간다. 그리고 주앙에게 과거의 얘기를 듣는다. 모든 일이 1960년대와 1970년대에 포르투갈을 지배했던 정치적 억압과 탄압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게 된다.
레이먼드는 아마데우의 학창 시절 스승인 바톨로메오 신부를 만나 이야기를 나눈다. 아마데우와 조지는 사회적 출신성분은 달랐지만 절친한 친구였다. 조지는 야채상의 아들이고, 아마데우의 귀족 출신의 부유한 고등 판사의 아들이다. 누구보다 우정이 돈독했던 이 둘은 시대 와 교회에 대한 비판의식을 공유하고 있었다. 이런 그들의 생각은 졸업식 날 고등 판사인 아마데우의 아버지를 비롯한 여러 하객 앞에서, 아마데우의 고별연설을 통해 극명하게 표출되었다.
졸업 후 아마데우는 존경받는 훌륭한 의사로 활동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아마데우의 병원에 실려 온 리스본의 도살자 비밀경찰 멘데즈의 목숨을 구해 준다. 이 일로 아마데우는 사람들로부터 배신자로 비난을 받게 되고. 그 죄책감으로 레지스탕스에 가입한다. 아마데우는 그곳에서 조지의 소개로 조지의 애인 스테파니아와 동지인 주앙을 만난다. 스테파니아는 아마데우를 보는 순간 한눈에 반한다. 아마데우도 스테파니아를 보는 순간 마음은 있지만 친구인 조지와의 우정 때문에 주저한다. 스테파니아는 200명에 이르는 반정부 군인의 신상정보를 암기하고 있는 유일한 인물로 늘 비밀경찰의 표적이 되어 왔다.
그러던 어느 날 비밀경찰이 그들의 아지트를 급습하자 아마데우는 스테파니아와 골목길로 피신한 후 그곳에서 서로 격렬하게 키스를 한다. 의심 어린 눈초리로 그들을 쫓아간 조지는 그 광경을 목격하고 절망에 빠진다. 질투의 화신으로 변한 조지는 주앙을 찾아가 스테파니아를 죽이지 않으면 모두가 위험하다는 이유로 주앙에게서 권총을 건네받아 스테파니아와 아마데우가 함께 있는 아마데우의 집으로 달려간다.
아마데우는 여동생 아드리아나의 간절한 호소를 뿌리치고 스테파니아와 스페인으로 도피하기 위해 차를 타고 출발하는그들을 찾아 달려온 조지와 마주친다. 조지는 스테파니아를 향해 권총을 겨누지만 아마데우의 설득으로 결국 그들을 그냥 떠나보낸다. 스페인으로 도주하던 아마에우와 스테파니아는 국경에 이르러 위험에 처한다. 하지만 리스본의 도살자 멘데즈의 도움으로 탈출에 성공한다.
다음 날 새벽 스페인의 해안가 언덕 위에서 아마데우는 벅찬 가슴을 안고 앞으로 스테파니아와 함께할 자신의 희망과 계획을 격정적으로 토로한다. 그러나 스테파니아는 아마데우의 희망이 자신이 감당할 수도 공유할 수도 없을 정도의 무게를 가지고 있음을 깨닫는다. 고민 끝에 그녀는 아마데우의 애절한 호소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이별을 고한다.
레이먼드는 다시 담배를 가지고 요양원에 있는 마리아나의 삼촌 주앙을 찾아간다. 주앙이 담배를 피우고 싶어했기 때문이다. 레이먼드는 주앙에게 일어난 일을 자세하게 듣게 된다.
아마데우가 살려준 비밀경찰 멘데즈가 다른 경찰들과 함께 주앙의 집을 찾아왔다. 멘데즈는 주앙에게 “피아노를 잘 친다지?”라고 묻는다. 그런 다음 한번 쳐보라고 한다. 이때 그가 친 곡이 모차르트의 ‘피아노 소나타 12번’의 2악장이다. 하지만 아름다운 울림은 오래가지 않는다. 멘데즈가 연주하고 있는 주앙의 손 위로 피아노 뚜껑을 덮어 버렸기 때문이다. 그들은 주앙의 손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게 하고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는 스테파니아가 지금 어디 있느냐?’고 묻는다. 주앙은 대답하지 않는다. 그러자 테이블 위에 놓여 있는 주앙의 손을 둔기로 마구 내리찍는다. 모차르트를 치던 주앙의 손은 만신창이가 되어 버린다. 레지스탕스에 가담하기 전 주앙은 모차르트 음악을 즐겨 연주하던 낭만적인 젊은이였다. 주앙은 더 이상 모차르트의 음악을 즐길 수 없게 되었다. 혁명 이후에도 조지에게 권총을 줌으로써 아마데우와 스테파니아를 죽음의 위험에 빠뜨렸다는 죄책감으로 혼자 양로원에서 괴로워하며 살고 있었다.
레이먼드는 아마데우의 절친 조지가 여전히 약국을 하고 있음을 알고 그를 찾아가 마지막 퍼즐을 맞추게 된다.
아마데우는 리스본으로 돌아와 의사로서 환자들을 돌보고 옥에 갇힌 주앙과 동지들을 뒷바라지하며 지내다가 1974년 4월 25일 혁명이 일어나던 날 자신만 알고 있던 오랜 질병인 동맥류로 급작스럽게 죽고 만다. 가족과 동지들이 그의 관 위에 혁명의 상징인 붉은 카네이션을 올려놓는다. 이 소식을 들은 스테파니아는 아무도 모르게 장례식장에 참석하여, 조지와 잠깐 조우한 후 다시 스페인으로 돌아갔다. 지금은 살라망카 대학에서 역사를 가르치며 살고 있다는 것이다.
레이먼드는 리스본을 떠나 스테파니아가 살고 있는 스페인 살라망카를 경유하여 다시 고향인 스위스 베른으로 돌아가기로 작정한다. 그런데 그날 호텔에 빨간 코트의 주인 카타리나가 수소문 끝에 그를 찾아온다. 놀랍게도 그녀는 리스본의 도살자 멘데즈의 손녀였다. 우연히 아마데우의 책을 보고, 할아버지 멘데즈의 행적을 접한 후 충격을 받아 자살을 감행하려 했음이 밝혀진다. 레이먼드는 그녀에게 빨간 코트를 돌려주면서, 할아버지 때문에 자신을 자학해서는 안 된다고 위로의 말을 건넨다.
레이먼드는 호텔을 나와 마리아나와 함께 스페인 살라망카로 스테파니아를 찾아간다. 그곳에서 그는 아마데우가 그녀 때문이 아니라 동맥류의 오래된 지병으로 죽었다는 것을 알려주고 아마데우의 책을 그녀에게 건네준다. 그녀는 자기 때문에 아마데우가 죽은 것으로 생각하며 평생 독신으로 살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는 아마데우의 사진을 어루만지며 그제서야 아마데우를 이해할 준비가 되었다고 말한다.
레이먼드는 베른행 열차가 서 있는 플랫폼에서 배웅하는 마리아나에게 작별의 인사를 건넨다. “여기 그냥 머무시면 안 돼요?”라는 마리아나의 물음에 뒤돌아보며 “뭐라고요?”라고 레이먼드가 되묻는 것으로 영화는 끝난다.
리스본행 야간열차의 명대사는 다음과 같다.
“인생의 진정한 감독은 우연이다. 잔인함, 연민, 매력이 가득한 감독. 우연이라면 운명을 말하는 건가요? 아니요 가능성 같아요 무작위적인 가능성이요”
“영생이 없다는 것은 축복입니다. 끝이 없는 영생은 분명 지옥일 것입니다. 죽음이야말로 매 순간을 아름답게 두렵게 하는 존재입니다. 죽음을 통해서만 삶의 의미를 알 수 있습니다. 또한 모든 잔혹함에 맛서 대항할 자유도 필요합니다.”
“우리가 지나온 생의 특정한 장소로 갈 때 우리 자신을 향한 여행도 시작된다. 그리고 자신을 알아간다. 그 여정의 길이는 중요하지 않다. 하지만 그 여행에서 외로움과 직면해야 한다. 어차피 우리가 하는 모든 것들은 외로움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버리기 위한 것이 아니던가? 꼭 요란한 사건만 인생의 방향을 바꾸는 결정적인 순간이 되는 건 아니다. 실제로 운명이 결정되는 드라마틱한 순간은 믿을 수 없을 만큼 사소할 수 있다.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하고 삶에 완전히 새로운 빛을 부여하는 경험은 소리 없이 일어난다. 그 놀라운 고요함 속에는 고결함이 있다.”
“우리가 어느 곳을 떠날 때 우리 스스로의 무언가를 뒤에 남기고 간다. 우리가 가버린다고 해도 우리는 거기서 머문다. 거기에 다시 가야만 우리가 찾을 수 있는 우리 안의 물건들이 거기에 있다. 어느 장소에 간다는 것은 우리 스스로에게 여행을 간다는 것이다. 하지만 스스로에게 여행한다는 것은 스스로의 고독을 마주해야만 한다.”
'여행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포르투갈 여행3-호카곶과 파티마 (4) | 2023.03.01 |
---|---|
포르투갈 여행2-리스본과 지도자들의 리더십 (0) | 2023.02.24 |
스페인 역사 3-3 합스부르크 왕조가 통치한 시기 – 3 (0) | 2023.02.11 |
스페인 여행11-세비아 (2) | 2023.01.29 |
모로코 여행5-쉐프샤우엔(Chefchaouen) (1) | 2023.01.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