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안을 따라 추자도까지-1
겨울방학이다. 선생의 꽃은 방학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나의 경우 전문직 관리직을 10년 반 동안이나 했기에 기나긴 방학을 잊은 지 오래다. 심지어 삼박 사일 의 여행도 거의 드물었다. 이번에는 정말 오랜만에 삼박 사일 동안의 여행을 하고 왔다.
처음에는 제주도에 가려고 생각했다. 한라산 돈네코 등산 코스가 15년만에 개방되었다기에 우리 학교 부장교사들과 2월 1일 첫 비행기를 타고 가서 돈내코-영실 코스를 등산하고 둘쨋날은 제주도 관광을 하고 마지막 비행기로 부산에 오기로 이미 예약되어 있어 가이드로서의 책임을 다하기 위하여 사전 답사를 다녀올 계획이었다.
그러나 연말연시에 제주행 비행기표 및 숙박 장소가 이미 매진이 되어 불가능했다. 그때 불현듯 한 곳이 떠올랐다. 바로 추자도다.
추자도는 지금까지 한 번도 간 적이 없는 새로운 곳이다. 가 본 적이 있는 곳도 좋지만 가보지 못했던 처녀지는 항상 마음을 설레게 하고 걸음을 빠르게 만든다.
비행기를 타고 단번에 갈 여정을 수정하여 부산-진해시-마창대교-고성상족암-창선삼천포대교ㅡ물건방조어부림-남해상주해수욕장-남해대교-하동ic-승주ic-낙안읍성-벌교-장흥-강진-완도-추자도-노화도-보길도-땅끝-부산으로 정하고 떠났다.
12월 25일 크리스마스 날 오후에 진해시를 거쳐 새로 난 마창대교를 건넜다. 마창대교는 이번이 두 번째다. 내가 직접 운전하고 건너기는 처음이다.
통영 방향으로 갈 때에는 복잡한 마산시내를 거쳐야만 되는데 마창대교를 건너니 곧장 진동고개로 이어진다. 통행료 이천 원만 내면 기름값도 많이 아끼고 시간도 많이 단축할 수 있다.
아직 많이 알려지지 않아서인지 지나가는 차가 별로 없다. 마창대교에서 바라보는 마산항은 아름다웠다. 아쉬움이 있다면 고층 아파트가 너무 많이 들어섰다는 점이다. 이은상 시인의 ‘가고파’의 고향 내 고향 남쪽바다와는 거리가 많이 느껴진다.
고성읍에 도착했다. 고성읍에서 우회전을 하면 요즈음 중학생들에게 인기가 있는 경남항공고등학교가 나온다. 옛날 고성농고일 때는 학생들에게 인기가 없었는데 교명을 바꾸고 교육과정을 바꾸어 새로운 명문학교가 되고 있다.
현재나 과거에 안주할 것이 아니라 시대의 흐름을 볼 수 있어야 사람이든, 학교든 거듭 나아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룡발자국
이정표를 따라 공룡발자국이 있는 쌍발마을에 닿으니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다. 내 기억 속에 쌍발마을은 아주 좋은 이미지로 남아 있다. 자연산회 맛과 자연산 굴 맛이 일품이다. 7-8년 전 왔을 때 바위에서 자연산 굴을 따는 아낙에게 자연산 굴을 한 점 얻어 먹고는 하도 맛이 좋아 더 사서 먹은 기억이 난다.
그 아낙의 말로는 ‘쌍발은 지형적으로 파도가 직접 해변을 강타하여 파도가 높고 물살이 세다. 그래서 고기들이 운동을 많이 하여 육질이 단단하고 좋다’라는 설명을 들은 것이 아직도 선명하다. 세월이 지나면 많은 기억들이 자꾸만 잊혀져 가는데 이 기억만은 아직도 또렷이 남아 있다.
한 가지 더 남아 있는 기억은 마을 앞에서 보이는 작은 두 섬의 이름이다. 섬이 아름다워 섬의 이름이 무엇인지를 물으니 아낙은 ‘브라자섬’이라고 하였다. 어감이 이상하여 다시 물어보니 가슴을 막는 젖마개인 ‘브라자’라고 말하였다.
아낙의 말을 듣고 보니 모양이 꼭 닮아 있었다. 다시 보아도 역시 그 이름이 꼭 맞다는 생각이 든다.
브라자섬
그 당시의 좋은 추억을 다시 한 번 더 맛보기 위하여 이곳 쌍발에 숙소를 정했다. 당시 맛있게 먹었던 횟집을 찾으니 그 집은 이미 사라지고 없다. 이 세상에는 영원한 것은 없다. 가만있지 않고 늘 변한다.
칠여 년 전과 비교하니 천지가 개벽을 한 듯하다. 조용한 어촌마을이 유명한 관광지가 되어 있다. 그래도 당시의 향수를 못 잊어서 부근의 횟집에 갔다.
회를 시키니 안주로 미리 나온 것 중 하나가 굴이다. 보는 순간 전에 맛있게 먹었던 종류의 굴이다. 이곳 바위에 붙어사는 자연산 굴이다.
굴맛은 여전히 일품이다. 이곳 사람들은 이 굴을 ‘꿀’이라고 부른다. 양식된 굴과는 맛에서 많은 차이가 있다. 특유의 향과 달작지근한 맛에 소주 한 잔을 걸치면 최고의 입맛이다. 이 굴을 보는 순간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평소에는 주(酒)님을 가까이 하면 안 되지만 즐거운 여행에는 소주 몇 잔이 오히려 좋은 보약이라고 스스로를 합리화시킨다.
삶의 즐거움 중 이보다 더한 것이 과연 얼마나 되겠는가! 반문을 하면서 과음만 하지 않기로 결심을 하고는 소주 한 병을 시켰다.
조금씩 천천히 음미를 했다. 소주의 쌉쌀한 맛과 자연산굴의 달작한 맛과 향이 조화를 이룬다. 이 절묘한 조화를 즐기고 있는데 회가 들어왔다.
우선 보기에도 먹음직하게 보인다. 이곳에는 자연산 회 아니고는 팔지 않는다고 주인은 강조를 한다. 자기네 집만 자연산이 아니라 옆집도 모두 다 자연산이라고 강조를 한다.
'내가 직접 잡지 않으면 자연산이 아니다'라는 말이 유행할 정도로 자연산회는 귀하디귀하다. 그러나 주인의 관상과 목소리의 음색을 들으니 자연산임을 믿어도 되겠다. 내 눈에 보이기에도 육질이 반지레한 자연산회다.
아주 정갈하게 칼질이 잘 된 도다리세꼬시(작은 도다리 물고기를 뼈째 썰어낸 회)다. 도다리세꼬시는 소주와의 궁합은 환상 그 자체다. 여행의 즐거움 중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현지의 특산물로 만든 음식과 소주 한 잔이다. 오랜만의 술 한 잔은 행복한 꿈으로 이어진다.
쌍발마을
다음 날 아침이다. 이곳 쌍발은 동해안이 아닌 남해안 마을이다. 남해안은 섬이 많아 바다에서 바로 해가 떠오르는 것을 볼 수 있는 곳은 그리 많지가 않다. 그래서 동해안에는 일출 명소가 많아도 남해안은 거의 드물다. 동해안과 같은 장엄한 일출은 아니었지만 동산에 떠오르는 햇빛에 드러난 마을의 풍경은 고요하면서도 평화롭다.
공룡발자국이 남아 있는 상족암 바닷가에는 잘 단장된 산책로가 이어져 있다. 이른 시간이기도 했지만 이곳이 겨울 관광지가 아니어서인지 사람들이 거의 없다. 번잡함을 싫어하는 나로서는 무척 다행이었다.
자연을 손상시키지 않으면서도 생태를 잘 관찰할 수 있도록 탐방로를 정비한 것을 보면 대한민국도 이젠 선진국이 되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예전의 순박한 아름다움과는 다른 느낌이다.
상족암
탐방로 주변에는 공룡에 대한 설명이 담긴 해설판이 설치되어 있다. 눈에 먼저 띈 것이 공룡이 이 지구상에 주인 노릇을 한 기간이다. 공룡이 지구상의 주인으로 행세한 기간이 자그마치 1억6천만 년이다.
인류의 역사를 보면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 지혜가 있는 사람)라 불리는 네안데르탈인이 10만 년 전이고 지금 현생인류의 조상이라고 불리는 호모사피엔스사피엔스(Homo sapiens sapiens)인 크로마뇽인은 약 4만 년 전이라고 알려져 있다.
공룡이 지구의 주인이었던 기간은 인간이 지금까지 지구상에 살았던 기간에 비하면 무려 4천 배나 된다. 살아 있는 모든 종은 멸종한다고 한다. 그러면 인류도 언젠가는 멸종할 것이다. 사람들은 영원히 살 것처럼 살고 있지만 지구의 역사와 원시 생명체의 역사에 비하면 인간이 살았던 역사는 너무나도 짧다. 그런데도 지금의 삶을 보면 경쟁에서 뒤처지면 생존의 의미가 없는 것처럼 내몰고 있다.
교육 또한 마찬가지다. 신자유주의를 표방하는 지금의 교육현실에서는 이기기 위한 경쟁만을 강조한다. 특목고, 일류대학, 교원평가, 다면평가, 다채널평가 등 교육의 질보다 계량화된 숫자를 더 중시한다. 교육은 자유, 정의, 평화, 사랑, 우정, 행복, 희망, 아름다움 등을 추구하도록 가르쳐야 하는데 경쟁을 통해 불안을 조성하고, 정의가 아닌 불의를 저질러서라도 이기는 것만을 강조하고, 더불어 사는 인간애를 심어주어야 하는데도 경쟁에서 밀리면 친구도 미워하게 만든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경쟁에서 이긴 자나 진 자나 모두 사라질 것이다. 한때 유행한 이야기가 생각난다. “사람이 오십이 넘으면 얼굴 잘 생긴 이나 못생긴 이나 똑같고, 육십이 넘으면 많이 배운 이나 적게 배운 이나 똑 같고, 칠십이 넘으면 많이 가진 자나 적게 가진 자나 똑 같고, 팔십이 넘으면 집에 누운 자나 산에 누운 자나 똑 같다”
햇살이 좋은 쌍발 바닷가에 수천 년 활보하였던 공룡들을 상상해 보면서 내 삶의 방식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였다. 나는 그동안 삶에 있어 독서가 최고의 가치이며 선생이라고 믿어왔다. 그러다보니 다른 사람들보다 책을 많이 봤다고 스스로 자부하면서 독서하지 않는 사람들을 너무 무시하면서 살았다. 백 년도 못 사는 미물이 그 자그마한 지식으로 아는 척 잘난 척한 것이다.
창선삼천포대교를 건넜다. 2003년도에 제1회 삼천포창선대교 하프마라톤에 참가했던 때의 기억이 났다. 그날 비가 제법 많이 오는 날인데도 비를 맞으면서도 기분 좋게 즐달을 했다. 창선을 지나면서 하프코스 반환점 장소를 떠올려보아도 정확한 장소가 기억나지 않는다. 인간 기억의 한계다.
창선에서 남해 본섬으로 가려면 창선대교를 지나야 한다. 이 다리에서 바다 쪽으로 보면 특이한 설치물이 있다. 멸치를 잡기 위한 우리 조상 대대로 이어져온 멸치잡이 방식인 죽방렴이다. 죽방멸치의 원조가 이곳이라고 한다.
죽방은 대나무로 만든 부채꼴 모양의 말뚝이다. 일반 멸치처럼 그물로 잡지 않고, 빠른 유속에 의해 멸치들이 죽방렴 안으로 들어가게 함으로써, 비늘이나 몸체에 손상 없이 건져 올릴 수 있다.
죽방렴 설치와 어장 면허가 제한되어 있어 소량만이 생산 가능하고, 고영양 플랑크톤이 서식하는 남해안에서 자라 육질이 단단하고 기름기가 적어 비린내가 나지 않는 고급 멸치이다. 그래서 죽방멸치는 보통멸치보다도 값이 몇 배가 비싸다. 은빛으로 빛나는 죽방멸치는 맥주안주로는 최고라고 생각된다.
창선대교는 한번 무너져 다시 세운 다리다. 무너진 이후 친구들과 차를 배에 실어서 건넌 기억이 아스라이 떠오른다. 창선 다리를 건너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으면서 이 근처에서 아침을 잘하는 집이 어디인가를 물으니 친절하게 가르쳐 준다. 그 집 메뉴 중에서 가장 위에 있는 메뉴가 갈치찌개다.
일반적으로 잘 모르는 식당에서 식사를 할 때 제일 위에 있는 음식을 시키면 된다. 사람들의 심리가 대개 가장 자신 있는 메뉴를 맨 위에 올려놓기 때문이다.
갈치찌개를 시켜 한 그릇을 다 먹고서 다시 해안선을 따라서 한 10여 분 가니 남해군 상동면 물건리 마을이 나온다.
삼십 수 년 전 남해를 처음 왔을 때 이 마을 이름이 하도 특이하여 절대로 그 이름을 잊지 못하는 마을이다.
물건방조어부림
그러나 이름보다도 더 유명한 것이 있다. 천연기념물 제150호로 지정된 물건방조어부림(勿巾防潮魚付林)이다. 방조어부림은 해안을 따라 펼쳐진 길이 1.5km, 너비 30m의 반달 모양으로 생긴 긴 수림이다. 이 수림 안에는 300년 이상 된 팽나무, 상수리나무, 느티나무, 이팝나무, 푸조나무인 낙엽수와 상록수인 후박나무 등 40여 종류의 수종이 숲을 이루고 있다.
방조어부림은 강한 바닷바람과 해일 등을 막아 농작물과 마을을 보호하는 방조림의 기능과 어부림의 역할도 겸하고 있다. 어부림은 고기들이 숲 그늘을 찾아 해안으로 오기 때문에 ‘고기를 불러들이는 숲’이라고도 한다. 일석2조다. 그리고 이 방조어부림은 2000년 생명의 숲에서 뽑은 ‘아름다운 마을 숲’에서 우수상의 영예를 차지했다. 아름다운 경치까지 더해준 일석삼조인 셈이다.
이 숲에 얽힌 이야기가 있다. 옛날에 이 숲의 나무 몇 그루를 베어내자 바로 폭풍우를 만나 마을이 상당한 피해를 입게 되었다. 이 사건 이후로 “숲을 해치면 마을이 망한다”라는 말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고 한다. 지금도 마을사람들이 숲을 잘 보호한다. 매년 음력 10월 15일에는 제사를 올려 마을의 평안을 빌고 있다고 한다.
숲길을 걷다보니 갈치찌개를 잘 먹은 덕분인지 장운동이 되어 화장실을 찾았다. 화장실 건물은 초현대식으로 아주 잘 지어졌다. 그러나 그 안에 들어서는 순간 청소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았다. 화장실은 그 지역의 문화를 나타내는 척도이다. 특히 관광지는 화장실 관리가 잘되어 있어야 한다. 화장실 때문에 물건리에 대한 좋았던 이미지가 많은 부분 손상이 갔다.
화장실에서 나와 뒷산을 바라보니 마을의 전체적인 구성이 뭔가 이상하다. 균형이 깨어진 느낌이다. 주체성이 없는 마을로 전략한 것 같다. 퓨젼마을이다. 마을 뒤편에 새로 생긴 독일마을과 바닷가 가장자리에 우뚝 서 있는 현대식호텔이 서 있기 때문이다. 이 건물들이 산세와 마을의 전체적인 윤곽이 깨뜨려 자연스러운 평화로움이 사라지는 느낌이다.
찜찜한 마음으로 물건리를 나왔다. 다시 해안도로를 부드럽게 자동차핸들을 돌리면서 천천히 드라이브를 한다. 백미러를 보니 뒤에 차가 한 대도 보이지 않는다. 앞에도 차가 오지 않는다. 비교적 이른 시간이기 때문일 것이다.
길을 따라가면서 자연스레 주변의 풍광에 빠진다. 서서히 찜찜했던 기분이 다시 좋은 기분으로 회복되었다. 이 길은 ‘물미해안도로’라 불린다. 물미는 물건의 물자와 미조의 미자를 의미한다. 물미해안도로는 아름다운 드라이브길로서 많은 사람들로부터 회자되는 곳이다.
남해금산과 보리암
어느 듯 상주 해수욕장에 다다른다. 물건리에서 해결하지 못한 화장실을 상주에서 해결했다. 역시 상주해수욕장의 화장실은 깨끗이 청소가 되어 있었다. 상주해수욕장에서 바라보는 금산은 언제보아도 일품이다.
몇 번이나 올라갔던 기억들이 뒤엉켜 겹쳐서 생각난다. 인간의 기억이란 불확실한 것이다. 언제 어느 때의 기억인지 누구와 함께 온 기억인지가 선명하지가 않다. 이러다가 세월이 더 흐르면 더욱더 희미해질 것이다.
다시 해안선을 따라 가다가 천연기념물 제276호로 지정된 ‘남해갈화리느티나무’를 만났다. 이 마을에 살던 유씨의 9대조인 유동지(劉同旨)라는 사람이 심었다고 전해 오며 새해가 되면 마을 사람들이 이 나무 앞에 모여서 마을과 가정의 행운을 바라는 제사를 지낸다. 마을의 지키는 수호목(守護木)인 당산나무이다.
1988년 태풍에 의하여 부러진 가지를 제거함과 동시에 썩은 부분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았다고 한다.
나무가 있는 자리는 풍수상 명당자리로 보인다. 주변의 산세를 보아 나무가 있는 곳에 혈이 맺힌 것 같다. 일반적으로 수백 년을 버티어온 나무가 있는 곳은 대개 명당의 조건을 다 갖춘 것 같다.
남해갈화리느티나무
날씨가 쌀쌀하다. 영하의 기온이다. 영하의 기온이기에 가시거리는 너무 좋다. 이런 날은 드리이브하기에는 최적의 날이다. 차는 남해대교에 다다랐다. 이락사에서 남해대교까지의 길은 봄날의 벚꽃길로는 최고다. 하지만 계절이 아니다.
길도 가장 뽐낼 수 있는 때가 있는 것이다. 사람만 운이 있는 게 아니고 길에도 시운이 있다.
특히 죽령옛길을 가보면 더욱더 절실함이 다가온다. 천 년 이상 주된 길이 새로운 도로가 나고 중앙선 철도가 나고서는 폐허로 변하여 지금은 그 흔적만 남아 있다.
남해대교도 어느 정도 운이 다한 것 같다. 십년 전만 해도 남해 관광의 최고 명승지가 남해대교였다. 그러나 창선삼천포대교를 보다가 남해대교를 보니 초라한 느낌마저 든다. 남해대교쪽은 상권이 많이 죽은 것 같다.
인간은 교통이 더 편리한 곳으로 모이기 때문일 것이다. 남해대교를 건너 하동방향으로 조금만 가면 남해고속도로 하동ic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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