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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중국여행

재송여중 부장연수5-중국 상해

by 황교장 2014. 8. 31.

 

재송여중 부장연수5-중국 상해

 

비행기는 예정대로 출발했다. 마침 자리가 창가여서 풍수를 볼 수 있을까 은근히 기대를 했지만 날씨가 도와주지 않았다. 상해에서 계림으로 갈 때는 구름 사이로 산천을 간헐적으로 볼 수 있었는데 계림에서 상해로 갈 때는 온통 구름이어서 전혀 볼 수가 없었다. 20분 정도 연착한 후 상해 푸동공항에 무사히 도착을 했다. 상해 가이드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상해 가이드 역시 교포 3세로 연변 출신이다. 그런데 계림 가이드와는 관상이 다르다. 계림 가이드는 순수함이 있었는데 상해 가이드는 우리말만 사용했지 관상은 완전 중국사람 그 자체다. 그런데 상해 가이드가 잘하는 점도 있다. 중국역사와 상해에 관해서는 비교적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다.

상해는 어촌으로 출발하여 원나라 때(1291) 상해현이 설치된 이후 명나라 때 항구로 발전했다. 1843년 아편전쟁 이후에 5개 통상항구 중의 하나가 되면서 급속히 발전했다. 일본군의 침략 등 많은 역사적인 아픔을 겪은 후 1978년 개혁개방정책을 통해 지금은 중국에서 경제의 중심지가 된 도시다. 인구는 거의 삼천만 명에 육박한다고 한다.

7년 전에 상해에 왔을 때는 푸동공항에서 상해시내까지 자기부상열차로 이동을 했는데 최고속도가 시속 400킬로가 넘었다. 오늘은 버스로 이동을 했다. 그런데 푸동공항에서 시내중심지까지 왕복 8차선 도로를 완공하여 30여분 만에 시내에 도착을 했다.

저녁식사를 하고 난 후 황포강 유람선을 탔다. 높은 빌딩에서 화려한 빛과 그 빛이 황포강에 반영된 풍경이 어우러져 황홀함 그 자체다. 우리 선생님들은 그 야경에 감탄하여 입을 다물지 못한다. 시종일관 사진촬영에 여념이 없다.

 

 

 

유람선 제일 윗층에 맥주를 파는 식당이 있었다. 맥주를 5병을 시키자 인원이 몇 명인지를 묻는다. 13명이라고 하자 13병을 시켜야만 이곳에서 맥주를 마실 수 있다고 한다. 말도 안 되는 상술이다. 그런데 이곳에서는 당연하다고 한다. 맥주를 마시든 안 마시든 상관없이 일종의 자릿세라고 한다. 중국은 정치적으로만 사회주의 국가지 경제적으로는 철저한 자본주의 국가라고 느껴졌다.

황포강 유람을 한 시간 정도 하고는 동방명주를 보러 갔다. 동방명주에 입장하기 위해 서 있는 줄이 차안에서 보아도 끝이 없었다. 가이드가 일본기업이 운영하는 상해에서 가장 높은 100층짜리 빌딩인 상해국제금융센터(SWFC)의 스카이라운지를 보면 어떻겠는가를 타진을 한다. 좋다고 했다.

그러나 이곳 역시 많은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어 뒤편에 있는 87층 하얏트호텔 카페로 갔다. 여기서 칵테일 한 잔을 하고는 호텔로 돌아왔다. 내 방에 모여서 상해에서의 첫날밤을 웃음과 담소로서 마무리 했다.

 

817일 일요일 아침을 호텔식당에서 맛있게 먹었다. 호텔 조식은 상해가 계림보다 한 수 위인 것 같다. 상해가 자랑하는 예원으로 갔다. 예원에 도착하자 비가 많이 왔다. 지금까지 비가 오지 않아서 여행하기에는 참 좋았는데 상해에서 비를 만난 것이다. 그래도 비오는 날의 예원도 운치가 있었다.

예원은 소주의 4대 원림인 창랑정, 사자림, 유원, 졸정원과 함께 강남명원으로 불린다고 한다. 중국의 4대 정원은 북경의 이화원, 열하의 피서산장, 소주의 졸정원과 유원이라고 한다. 그러나 예원은 규모면에서는 이 4대 정원에는 뒤지지만 내용면에서는 크게 밀리지 않는다고 한다.

 

 

 예원은 상하이의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정원으로 옛 정취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이 방문하는 곳이다. 1559년에 착공하여 18년만에 완공했다. 명나라 시대의 사천포정사였던 반윤단(潘允端)이 자신의 아버지를 기쁘게 하기 위해 지은 원림이다.

 

 

예원(豫園)이란 명칭은 부모를 기쁘게 한다는 뜻인 유열노친(愉悅老親)이라는 말에서 자는 자와 뜻이 서로 통하기 때문에 예자로 바뀌게 된 것이라고 한다. 예원의 특징 중 하나는 담장에 용의 문양을 했다는 것이다.

용은 황제를 상징하는 상상의 동물인데 누각의 용마루와 담장을 황제와 버금가도록 해놓았다. 용은 입 안에는 야명주를 물고, 입은 말의 입, 콧구멍은 소의 콧구멍, 눈과 수염은 새우 눈과 수염, 뿔은 사슴뿔, 몸은 뱀의 몸, 비늘은 고기비늘, 꼬리는 사자꼬리, 팔뚝은 범의 팔뚝, 발가락은 독수리의 발가락 등 여러 동물들의 특징을 종합하여 만들었다.

그런데 보통 용의 발톱은 다섯 개인데 이곳의 용은 발톱이 3개밖에 없다. 만약에 황제가 역심을 품었다고 잡아갈 경우를 대비해서 3개만 만들었다고 한다. 중국에서 용의 발톱을 다섯 개로 만들어놓은 곳은 황제 외에는 공자를 모신 대성전밖에 없다고 한다.

 

 

예원에서 눈여겨 볼 것이 있다. 6백 년 전에 만들었다는 철사자 중 암놈사자다. 새끼를 발로 눌리고 있다. 사자는 어릴 때는 이처럼 발로 눌러서 키워야 중간에 죽지 않고 어른 사자로 성장한다고 한다. 이러한 철사자가 시사하는 바는 자녀교육에 있어 어릴 때는 사회화하기 위해 강압적으로 키우다가 성장하면서 서서히 자율과 자유를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현재의 독일식 교육과 일맥상통하는 점이다.

예원 정원수 가운데 전에는 미처 보지 못했던 다매(茶梅)라는 매화나무가 있었다. 국가 1급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다. 우리나라 천연기념물과 같은 의미라고 한다. 매화나무의 일종인데 2월말에 장미꽃보다 작은 흰 꽃이 만발한다고 한다.

 

전에 왔을 때 인상적으로 보았던 쾌루(快樓)라는 누각이 보이지 않았다. 이상하다고 생각하면서 내원이라고 쓰인 대문을 들어서자 쾌루가 나왔다. 예원은 여러 차례 주인이 바뀌었다. 지금까지 본 것은 명나라 때 만든 영역이고 내원은 청나라 건륭 25(1760)에 새 주인이 대대적으로 수리하고 다시 확장한 곳이라고 한다. 쾌루는 이층으로 된 누각인데 여기가 바로 이 집 주인이 거처하는 곳이다. 이곳은 어느 누구도 주인의 허락을 받지 않고는 들어가지 못한다. 제일 부인이라도 허락 없이는 들어가지 못한다.

 

 

쾌루의 앞 건물은 공연장이다. 공연장에서 하는 공연을 가장 잘 감상할 수 있는 곳이 쾌루다. 공연 중에 마음에 드는 미인이 있다면 주인은 이층 쾌루로 불러들인다고 한다. 이곳은 오직 이 집 주인만의 공간이다. 전에 왔을 때 쾌루를 보면서 인간 욕망의 한계는 과연 어디까지인가 하고 생각했던 기억이 났다.

예원을 나와 상해임시정부 옛터로 갔다. 상해 임시정부가 있는 동네가 많이 바뀌었다. 임시정부청사 앞에 고급 아파트가 들어서 있다. 복덕방에 가격표를 붙여 놓았는데 40평짜리가 우리 돈 26억 원이다. 엄청난 가격이다. 상해 변두리조차도 30평이 5억원 정도라고 한다.

상해는 학군에 따라 아파트 가격이 같은 평수인데도 다섯 배 차이가 난다고 한다. 따라서 돈이 있는 사람은 5년 전에 좋은 학군으로 이사를 가 있다고 한다. 그 학군에 거주한 것으로 인정을 받으려면 5년은 살아야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고급 아파트가 들어선 덕분인지 7년 전에 왔을 때보다는 초라함이 많이 없어졌다.

삼일독립운동 실패 후 애국지사들이 국외로 망명했다. 이들은 1919410일 상해에 모여 대한민국임시정부를 결성하여 13일 정부 수립을 세계만방에 선포했다. 임시정부 청사는 여러 차례 옮겼다. 1932년 상해를 떠나 가흥, 남경, 항주, 광주, 유주 중경 등으로 옮겼다. 그중 1919년부터 1932년까지 13년간 상해에서 활동한 임시정부 청사가 바로 이곳이다.

 

 

건물 내부는 초라하다. 비록 망명정부이지만 명색이 정부청사인데 말이다. 그래도 이곳에서 한국독립당, 한국애국단, 독립군 등을 만들고 이봉창, 윤봉길 등의 의사들을 배출한 곳이다. 전에 눈여겨 봐 두었던 도산 안창호 선생이 쓴 愛己 愛他(애기 애타)를 찾으려고 이곳저곳 기웃거렸다.

 

 

애기 애타는 자기를 사랑하고, 남도 사랑하라는 의미다. 또한 자기를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은, 남도 사랑하지 못한다는 의미도 되리라. 아마 싫고 미운 사람조차 사랑하라는 의미까지도 포함하는 것이리라. 임시정부청사를 나올 때는 전과 똑 같은 느낌이 들었다. 슬픈 역사의 쓸쓸함이다.

 

점심식사를 하고는 쇼핑갈 분은 쇼핑을 하고 발맛사지할 분들은 발맛사지를 하기로 정하여 희망에 따라 선택하기로 했다. 남성분들은 모두 다 발맛사지를 하였다. 계림과 달리 제대로 된 발맛사지를 받았다. 기분이 쾌적해 예원의 주인도 부럽지가 않았다.

오늘 저녁식사는 북한식당에서 한다. 기대감에 부푼 마음으로 찾았다. 식당에 도착하자마자 우리들을 반갑게 맞이한 것은 한복을 곱게 차려 입은 젊고 아름다운 아가씨들이다. 이 아름다운 여인들이 직접 요리도 하고, 춤도 추고, 노래도 한다. 그야말로 팔방미인들이다.

이들은 평양상과대학 관광과 2학년 학생들이다. 3년간 실습을 나왔다고 한다. 지금까지 중국 음식만 먹다가 우리 음식을 먹으니 맛이 더 좋다. 특히 김치가 일품이다. 평양에서 직접 공급을 한다고 한다. 내가 들쭉술을 쏘았다. 이어서 교감선생님이 제일 비싼 송이술을 쏘고 3학년 부장이 산삼주를 쏘았다. 그리고 자연산 송이버섯 3접시를 교무, 연구, 내가 쏘았다. 중국사람보다 더 정감이 가는 것을 보니 피는 물보다 찐하다는 것을 한 번 더 느꼈다.

 

마지막 일정인 상해 서커스 관람을 했다. 계림에서 하는 몽환이강쇼와 대동소이했다. 내일 아침 5시에 기상해 6시에 호텔을 출발해야만 비행기 시간에 맞출 수가 있다. 그래서 따로 모임 없이 상해에서 마지막 밤을 보냈다.

다음날 상해 공항에 무사히 모두 다 도착했다. 910분에 출발할 예정인 비행기가 10시가 넘어서야 출발을 했다. 기분이 영 찝찝하다. 그런데도 방송은 곧 김해공항에 도착을 한다고 한다. 그런데 비행기가 요동을 치고 있다. 비행기 창으로 보니 많은 비가 내리고 있다. 보통 방송이 나오고 나면 가덕대교가 보이는데 밑에 아무것도 보이지가 않는다. 그런데 비행기는 자꾸 덜컹대고 있다. 그러자 중국어로 방송이 나왔다. 내 어설픈 중국어 실력에도 기상악화로 돌아간다는 말이 들렸다. 옆에 앉은 손부장에게 상해로 되돌아간다라고 하면서 손부장이 믿는 하느님에게 기도를 하라고 했다.

곧 이어 우리말로 방송이 나왔다. 기상악화로 인천공항으로 돌아간다고 한다. 한 시간 후에 인천공항에 무사히 착륙을 했다. 그런데 비행기에서 내리지 못하게 한다. 이유인즉 김해공항 관제탑과 다시 교신을 해 보기 위해서라고 한다. 한 시간을 비행기 안에서 더 기다렸다가 인천공항에 무사히 내렸다. 그런데 이 와중에서도 복 받은 분이 세 분이나 있었다. 부산에 내려도 서울로 와야 될 세 분이 인천공항에서 내렸다. 나머지 일행은 동방항공사에서 제공하는 버스를 타고 부산에 무사히 도착을 했다. 원래 도착예정 시간이 12시 반이었는데 버스를 타고 도착한 시간은 밤 10시가 넘었다. 중국에서 아무 일 없이 잘 지내고 돌아왔는데 우리 나라에 와서 기상악화로 늦어진 것이다. 일정이 이렇게 늦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여행의 즐거움이 여운으로 남아 있어 일행들의 표정은 밝고 계속 호호깔깔하였다.

이것으로 56일 중국 계림 상해 연수를 무사히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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