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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

라오스 여행2-루앙프라방(Luang Prabang)

by 황교장 2015. 2. 2.

 

라오스 여행2-루앙프라방(Luang Prabang)

 

루앙프라방은 비엔티안에서 북쪽으로 426가량 떨어진 곳에 있다. 버스로 가면 12시간 이상 걸리는 거리를 비행기로 한 시간만에 도착했다. 지금까지 본 공항 중 가장 소박한 공항이었. 국내선이라서 그런지 간단하게 수속이 끝났다.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차를 타고 점심식사를 하러 갔다. 현지식인데도 항신료를 거의 사용하지 않아서인지 그리 거부반응이 없다. 라오(Lao Beer)라는 이곳의 맥주는 맛이 독특하다. 향이 좋으면서도 우리 맥주보다는 조금 도수가 높다. 식당 주인이 얼음을 가져와서 얼음 위에 맥주를 부어 마시니 시원하면도 그 맛이 일품이다. 우리나라 맥주보다는 한결 맛이 좋다. 외국 술이 우리 술보다 맛이 좋다고 생각되는 것은 라오맥주가 아마 처음인 것 같다. 맥주 값이 2병에 2달러다. 병도 예전에 있었던 큰 병이다. 우리 돈의 가치가 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맛있게 점심식사를 하고는 루앙프라방 시내로 향했다. 루앙프라방은 199512월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전설에 따르면 석가모니가 고행 중에 여기에서 하루 쉬어 갔는데, 이 도시가 언젠가는 풍요롭고 강력한 수도가 될 곳이라고 예언하며 미소지었다고 한다.

가장 먼저 간 곳은 왕궁박물관이다. 왕궁박물관 입구에 들어가면 오른쪽에 황금으로 된 사원이 눈에 확 띈다. 이 황금사원에 모신 황금불상의 이름이 프라방이다.

 

 

전설에 의하면 이 불상은 1세기경 스리랑카에서 만들어 1359년 크메르의 왕이 라오스 불교의 지도자인 파 응움(Fa Ngum)왕에게 선물한 것이라고 한다. 불상의 높이는 83cm, 무게 50kg로 금으로 만들어졌다. 무아스와 또는 씨엥통으로 불리던 이 도시의 이름이 이 황금불상의 이름을 따서 루앙프라방으로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루앙'은 '크다'는 의미이고, '프라방'은 '황금 불상'이라는 의미다. 따라서 '루앙프라방'은 '큰 황금 불상'이라는 뜻이 된다. 이처럼 불상 하나가 도시 이름을 바꿀 정도이니 이 나라 사람들의 이 불상에 대한 성스러움이 어떤지 짐작이 갈 만하다. 그래서 프라방 불상은 촬영금지다. 그래도 그곳을 감시하는 사람 몰래 카메라에 담았다. 그런데 나에게 다가와서는 방금 찍은 불상사진을 지우라고 한다. 상당히 기분이 나빴다.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이는데 이들은 너무 신성시하는 것 같다. 내 문화를 아끼려면 남의 문화부터 먼저 아껴주자(己所不欲 勿施於人)라는 생각이 들어서 이해하기로 했다.

  라오스의 2대 국보는 여기에 있는 '황금불상'과 '에머랄드 불상'이다. 그런데 태국의 식민지 시절에 둘 다 씨암족들이 빼앗아 갔다. 황금불상은 돌려주어 지금 여기에 있지만, 에머랄드 불상은 아직도 돌려주지 않고 태국의 에머랄드 사원에 있다. 약소 국가의 비애가 남의 일 같지가 않았다.

 

 

다음으로 왕궁박물관 하우 캄(Haw Kham)으로 향했다. 왕궁박물관 입구에는 지금까지 본 야자나무 중에서 가장 큰 야자나무들이 도열하고 있다. 이 박물관은 프랑스 식민지 시대인 1904~1909년 시사방 봉(Sisavang Vong) 왕에 의해서 건축되었다. 왕궁의 건물 위에는 세 마리의 코끼리와 그 위에 하얀색 파라솔이 씌워져 있다. 이는 당시의 국기였다. 세 마리 코끼리는 잔파사, 비엔티엔, 루앙프라방의 세 왕국을 뜻하고, 하얀색 파라솔은 왕의 권위는 하늘에서 내려온 것을 의미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하늘에서 내려온 왕의 권위도 라오스가 공산화된 이후 왕족이 추방되고 1975년 박물관으로 전환되어 1976년부터 일반에 개방되었다.

 

왕궁박물관은 소지품을 가지고 들어갈 수 없어 소지품 보관함에 맡겨야하며 모자도 쓸 수 없고 카메라 촬영도 금지하며 신발도 벗고 들어가야 한다. 안을 들여다 보니 왕궁이라기보다는 부잣집 정도의 수준이다. 왕가의 의상, 장식품 및 불상, 각국의 정상들이 선물한 물건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비운의 왕이 살았던 왕궁을 보고는 꽝시폭포로 향했다. 폭포로 향하는 길은 포장도로와 비포장도로가 섞여 있다. 길이 우리나라 1960년대 시골길을 연상시켰다. 상점의 물건들은 모두 먼지가 가득 머금은 채 진열되어 있다. 나무들은 잎이 넓고 쭉쭉 뻗었다. 오동나무 잎과 많이 닮았다. 운전기사에게 나무이름을 물어보니 꼭싹(?)이라고 대답한다.

도로사정이 좋지 않아서 차는 느릿느릿 움직인다. 덕분에 주민들의 생활하는 모습과 심지어 사람들의 관상까지 볼 수 있다. 모두들 순수한 관상이다. ‘먹고 놀고 즐기려면 태국을 가고, 문화유적을 보려면 미얀마를 가고, 순수한 사람을 만나려면 라오스를 가라는 말이 실감나는 부분이다. 지나가는 사람들과 거리풍광을 구경하다보니 폭포에 다 왔다. 많은 사람들이 걸어가고 있다. 그런데 우리가 타고 있는 차는 꽝시 폭포 입구를 거침없이 통과를 한다. 이유인즉 현지 가이드가 타고 있기 때문이란다. 가장 가까운 곳에 차를 내려다 준다. 후진국일수록 급행료가 통하고 조그만한 빽이라도 있으면 누리려고 한다.

폭포로 가는 길은 한적하다. 여느 시골마을 산길처럼 보였는데 조금 가자 상상을 벗어나는 풍광이 나왔다.

 

 

 몇 단이나 되는지 세지 못할 정도의 다단계의 폭포가 무협소설의 한 장면을 생각나게 한다. 많은 사람들이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다. 지금까지 내가 본 폭포 중에서는 가장 신비롭게 보이는 폭포다. 폭포를 따라 내려오자 그 곳에서 물놀이를 하고 있다. 나뭇가지 위에서 뛰어내리는 사람들이 많다. 비키니를 입고 뛰어내리는 외국 여자 도 있었다. 카메라로 담으려다가 참았다. 허락 없이 촬영하면 초상권 침해다. 제법 쌀쌀한 날씨인데도 젊은이들은 물속에서 추억 만들기가 한창이다.

석회암 지역의 코발트 빛갈을 내는 곳은 중국의 구채구, 터키의 파묵깔레, 크로아티아의 플리트비체가 대표적이라는 데 죽기전에 나머지 비취빛 물들을 다 보고 싶다. 대자연이란 참으로 신비롭고 기이한 곳이 많다.

 

 

 

 

 

 

 

 

 

한없이 걷고 싶을 만큼 좋은 길을 따라가니 곰 사육장이 나왔다. 곰들은 우리에 다 들어갔는지 보이지 않는다. 조금 더 걷자 주차장이 나왔다. 주차장에서는 기념품들을 팔고 있는데 장사하는 사람들 얼굴도 세속에 물들지 않은 순박한 관상이다.

 

호텔에 도착했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맛사지를 받으러 시내에 갔다. 발맛사지가 중국과는 조금 차이가 났다. 중국과 달리 이곳의 맛사지는 요가 이론을 비교적 충실하게 따르는 것 같다. 나에게는 이곳이 중국보다 더 좋았다. 시원하게 맛사지를 받고는 루앙프루방의 야시장으로 향했다. 많은 상품들이 진열되어 있다. 같은 물건을 가지고 가격이 천차만별이다. 심지어 배 이상 차이나는 물건도 있다. 내가 산 물건을 유교장은 반값에 구입하는 수완을 발휘한다. 나는 평소에 깎아 달라는 말을 전혀 하지 않는다. 심지어 천 원 정도 깎아주려 하는 것도 팁으로 준다. 그런데 라오스에서는 얼마 되지도 않는 돈인데도 조금이라도 비싸게 주고 사면 뭔가 사기당한 기분이 들어서 찜찜하다. 인간의 심리란 참 묘한 것이다.

10시가 되어서 호텔로 돌아왔다. 다음날 새벽에 딱빨공양 의식을 보러가기 위해서 530분에 모두들 로비에 모였다. ‘딱빨이 행해지는 곳에 다다랐다. 어제 왔던 왕궁 근처다. 우리보다 먼저 온 사람들과 새로 오는 사람들로 붐비기 시작한다. 루앙프라방의 주민들은 새벽에 집에서 음식을 준비하고 나왔다. 그런데 관광객들을 위해 세트로 파는 사람들이 많았다.

 

 

 

찰밥 한 바구니와 바나나와 과자 세트에 25,000킵이고 3달러에서 5달러까지 받고 있다. 이곳에서도 자리싸움이 심하다. 장사하는 사람들이 미리 돗자리를 깔아놓는다. 자기에게 사지 않으면 그 자리에는 앉지 못하게 한다. 스님들에게 탁발을 하는 행위를 통해 장사를 하여 자기 배를 더 많이 채우려는 사람들을 보니 기분이 씁쓸했다. 이곳은 새벽 6시면 스님들이 어김없이 탁발통을 어깨에 메고, 일렬로 거리에 나타난다고 한다.

조금 기다리고 있자, 멀리서 공양받을 둥근 그릇을 어깨에 메고 맨발의 스님들이 걸어오기 시작하였다. 제일 앞에 선 분이 주지 스님이다. 그 뒤를 이어 나이 순서대로 탁발을 하는 것 같다. 100여 개가 넘는 절에서 온다고 한다. 그런데 특이한 광경이 펼쳐졌다. 제일 앞에서 주지 스님이 불쌍하게 보이는 사람에게 지금까지 탁발했던 음식물을 거의 다 나누어 준다. 스님들은 탁발을 해서 더 불쌍한 사람에게 나누어 주는 것이다.

탁발(托鉢)은 승려들이 걸식(乞食)으로 의식(衣食)을 해결하는 방법이다. ()이란 음식을 담는 그릇인 발우를 가리킨다. 따라서 탁발이란 걸식하여 얻은 음식을 담은 발우에 목숨을 기탁한다는 의미이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비구승의 비구라는 말은 산스크리트어로 '빌어먹는 자'란 뜻이라고 한다. 이는 무소유의 정신이며, 모든 물질적 욕망에서 벗어나기 위한 하나의 수행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유마경(維摩經)》〈제자품(弟子品)에는 탁발의 방법과 그 공덕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말이 나온다.

걸식한 밥은 모든 중생에게 베풀고 부처와 성현에게 공양한 다음 먹어야 남의 보시를 헛되이 하지 않았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와 같이 먹을 수 있는 사람은 번뇌를 버리지 않고서도 해탈에 들고, 집착을 끊지 않고서도 깨달음에 다다를 수 있습니다

이에 따라 12두타행에서는 상행걸식(常行乞食), 차제걸식(次第乞食), 수일식법(受一食法) 등의 조항을 두고 있다. , 항상 걸식하여 먹을 것을 해결할 것과 걸식할 때는 가난한 집과 부잣집을 가리지 않고 차례로 할 것, 그리고 하루에 한 끼만 먹을 것 등을 규정한 것이다.

탁발의식이 끝나자 날이 완전히 밝았다. 근처에 있는 아침시장으로 향했다.

 

 

 

그 지방의 생활상을 가장 정확하게 알 수 있는 것은 전통재래 시장이라고 한다. 살아있는 물고기가 가장 눈에 띄었다. 크기가 굉장하다. 메콩강에서 잡아 올린 것이라 한다. 인근에서 생산하는 채소와 과일들이 진열되어 있다. 그리고 갖가지 옷가지와 생활용품들이 많다. 우리네 재래시장과 별반 다르지 않다. 사람 사는 모습은 다 거기서 거기다.

재래시장을 나와 왓 씨앙통(Wat Xieng Thong)사원으로 갔다. 왓 씨앙통사원은 메콩강과 칸강이 만나는 지점에 위치해 있다.

 

 

 

 

 

 

전통적인 라오스 건축기법의 걸작품으로 꼽힌다. 1560년에 건립되었으며 색유리와 금으로 장식되어 화려하고 아름답다.

거의 500년 전에 이런 사원을 지을 수 있다는 것이 신비롭다. 사원 뒷편에는 메콩강이 유유히 흐르고 있다. 지금은 건기인데도 수량이 많다. 우기일 때의 메콩강이 상상이 된다. 메콩강은 길이 4,020km이다. 동남 아시아 최대의 강이며 세계적으로도 손꼽히는 큰 강이다. 중국의 칭하이성[靑海省]에서 발원하여 티베트 지방의 여러 강이 창두[昌都] 부근에서 합류하여 란창강[瀾滄江]이 되고 윈난성[雲南省]을 남류하여 라오스와의 국경에 도달한다. 라오스에서는 1,500km에 걸쳐 흐르는데 하류는 폭이 좁아지고 깊어지다가 라오스와 캄보디아와의 국경에서 콩 폭포를 이룬다. 프놈펜 주변에서 북서쪽의 통레사프강()과 합류했다가 다시 베트남으로 들어가 220km를 흐르는데 흐름은 매우 완만하고 폭이 2km나 되며 유역에는 메콩 삼각주의 무논[水畓]지대가 펼쳐진다. 남중국해로 들어가기 전에 메콩강은 다이강()을 비롯한 9개의 강으로 갈라지는데, 이 때문에 베트남에서는 메콩강을 구룡강(九龍江)이라고도 부른다. 이 메콩강이야말로 라오스의 젓줄인 셈이다.

메콩강을 감상하고는 1821년에 건립된 와트 마이 사원으로 갔다. 이 사원은 과거 라오스의 큰스님 프라 쌍카라즈(Phra Sangkharaj)가 머물던 곳으로 유명하다.

아직 시간이 일러 본 사원에는 들어가지를 못하고 주변을 관람하고는 바로 앞에 있는 푸시(Phusi)산으로 향했다. 푸시산은 해발이 800m라고 한다. 부산의 금정산 높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런데 100m밖에 안 되는 야산이다. 이유인즉 이곳이 해발 700m인 분지다. 따라서330개의 계단을 올라 가는 전망대다. 

밑에서 보면 금으로 장식된 첨탑이 보인다. 첨답을 보면서 올라갔다. 약간 호흡이 거칠어지자 정상에 도달했다. 정상에는 1804년에 건립된 타트 촘 푸시(That Chom Phusi)사원이 있다. 이 사원도 꽤나 인기가 있어 보인다. 기돗발이 엄청 세게 느껴진다.

구름이 좀 많이 가리웠지만 루앙프라방 시가지를 조망하는 데는 별 지장이 없다. 주변은 산으로 첩첩 둘러싸여 있다. 그리고 도시 전체가 분지다. 특이한 것은 메콩강과 사잇강인 칸강의 두 물이 만나는 합수머리다. 풍수상 합수머리는 기가 응축되어 있다고 하여 명당으로 친다. 이곳이야말로 천하의 대명당으로 보인다. 앞의 메콩강과 칸 강은 천연 해자인 셈이다. 외적을 방어하기에는 최적이다. 합수머리에 왕궁과 사원이 함께 한 것이다.

 

이곳 푸씨산이 왜 신성한 산인 줄 비로소 알 것 같다. ‘는 산을 의미하고, ‘는 신성하다는 의미다. 따라서 이곳이 신성한 산이다. 우리 일행들에게 이곳의 풍수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이곳은 사신사(좌청룡, 우백호, 남주작, 북현무)가 분명하고 배산임수가 교과서적인 풍수라고 했다. 특히 푸씨산은 외적의 동태를 살피는 데에는 더없이 좋은 곳이다. 불교국가인 몽고가 신라의 황룡사 9층탑을 불태운 가장 큰 이유는 탑이 높아서 전망대의 역할을 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 이와 같은 원리다. 그러나 푸시산은 황룡사9층탑과는 달리 불태울 수도 없고 파서 옮기기에도 힘든 바위산이다. 오랫동안 외적을 방어하기에는 안성맞춤인 셈이다.

 

 

 

 

푸씨산 정상에는 기가 응축된 바위가 있다. 내 몸에도 기가 느껴지는 것 같다. 그런데 기에 민감한 사람에게는 엄청난 기가 느껴질 것 같다. 이곳에 앉아서 단전호흡을 한 번 하고 가고 싶었지만 일정상 어쩔 수 없이 내려올 수밖에 없었다. 정상에서 조금 내려오니 아니나 다를까 포대가 놓여있다. 이곳이야말로 외적을 방어하는데 있어 최적지인 셈이다.

루앙프라방의 여정을 마치고 호텔로 돌아와 아침식사를 하고는 블루라군이 있는 방비엥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