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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

라오스여행3-방비엥(Vang Vieng)

by 황교장 2015. 2. 5.

라오스여행3-방비엥(Vang Vieng)

 

루앙프라방을 뒤로 하고 방비엥으로 향했다. 이 도로는 루앙프라방에서 비엔티안까지 가는 라오스 최고의 고속도로다. 그런데 시속 30km 정도로 달린다. 도로 상태가 엉망이다. 중앙선도 없고 곳곳에는 도로가 파이고 부서져 있다. 운전기사 또한 만만디로 운전을 한다. 앞을 볼 수 없는 곡각지대에만 경적을 울리면서 간다. 스쳐 지나가는 풍경은 꿈속에서 타임머신을 타고 가는 것처럼 느껴진다.

차가 평지를 벗어나 산악지역으로 진입을 한다. 구불구불 산악지역이다. 제법 높은 산을 넘는다. 루앙프라방이 해발이 700m인 점을 감안하면 거의 1000m는 더 올라온 것 같았다. 해발 1,700m인 셈이다. 산길을 약 두 시간정도 달리자 휴게소가 나왔다. 휴게소에서는 간단한 일상용품을 팔고 있다. 그 중 눈에띄는 것은 라오캔맥주다. 맥주맛이 최고다. 알딸딸한 기분으로 이국적인 풍광을 바라보는 맛이 신선놀음이다.

 

 

휴게소를 나와 다시 차를 탔다. 길가에는 키가 큰 억새와 대나무가 많다. 자연산 바나나나무가 지천이다. 어떤 나무는 바나나를 노랗게 달고 있다. 노란꽃을 단 뚱단지와 천사의 나팔이 자생을 하고 있다. 길가 마을에는 하와이무궁화라고도 불리는 ‘하이비스커스(Hibiscus)’로 보이는 꽃이 피어 있었다.

길가의 마을마다 사람과 닭, 개, 오리, 돼지, 소가 함께 살고 있다. 60년대 우리의 농촌과 다른 점은 돼지도 함께 하는 점이다. 돼지와 소는 우리 안에서만 키웠지 라오스처럼 다른 동물들과 같이 키우지는 않았다. 그런데 이곳에서는 개와 돼지가 아무렇지도 않게 같이 놀고 있다.

잠깐 졸다가 깨다가를 반복하자 도착한 곳은 제법 큰 고산족마을이다. 학생들이 교복을 단정히 입고 집으로 돌아가고 있다.

 

 

 

 

 

 

기분 좋게 먹은 맥주 덕분에 이곳에서 차를 세웠다. 덤으로 고산족 마을의 내부를 볼 수 있었다. 화장실은 길가에는 없고 집 안쪽에 있었다. 깨끗하게 잘 되어 있었지만 1,000킵을 달라고 한다. 몽족들이 사는 마을이라고 한다. 2년 전 재송여중 원어민 교사였던 테레사(Teresa)가 몽족이었다. 그녀의 부모는 베트남인이었다. 몽족은 베트남전쟁 때 미국을 도왔다. 이에 미군이 철수를 할 때 같이 미국으로 건너갔다. 미국에서도 위스콘신주에 몽족들이 대거 이주를 하여 산다고 한다.

 

가이드 말에 의하면 지금도 이곳 관리들은 몽족을 배척한다고 한다. 하지만 일반 사람들은 몽족을 아주 부러워한다. 미국으로 건너갔던 친척들이 많은 돈을 가지고 지금 고향으로 돌아오기 때문이라고 한다. 몽족은 베트남과 라오스의 산악지역에 걸쳐서 살고 있다. 라오스의 소수 부족 중에서 주요 부족은 몽족, 아카족, 야오족 순이다. 이 중에서도 몽족은 집단촌락을 이루고 산다. 자립성이 강하고 생활력도 강하다고 한다. 몽족은 중국에서 남하한 종족이어서 종교도 유교를 신봉한다. 지금 학교에서 돌아오는 학생들도 몽족 이다. 학교운동장에서는 축구를 열심히 하고 있다. 이 마을에서 가장 큰 건물도 학교다. 특히 몽족은 교육열이 대단하다고 한다. 아마 공자의 영향일 게다. 라오스의 학제는 5-4-34제다. , 중은 우리와 다르지만 총 년 수는 같다.

 

라오스에는 공식적으로 49개의 소수 부족이 있지만, 비공식적으로는 소수 부족이 약 160개 이상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북부의 험준한 산악에 사는 극소수 부족까지 포함하면 약 850개의 소수 부족이 외부와의 접촉을 끊고 자기들만의 전통적인 방식으로 살아간다고 한다. 이곳의 지형을 보니 충분히 이해가 간다. 산으로 첩첩이 둘러싸여 있어 서로 교류하기가 아주 힘이 들 것 같다. 따라서 주변 종족들 간에도 소통이 잘 되지 않고 독자적으로 살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다시 차는 천천히 달리기 시작하였다. 주변의 풍광들이 느릿느릿 지나간다. 웅덩이가 많이 파인 도로를 달리다보니 허리가 자꾸 아파온다. 라오스에 오기 며칠 전 요가를 하다가 그날 따라 앞으로 굴신이 너무 잘 되어 왼쪽 무릎에 이마가 저절로 닿았다. 오른쪽 다리도 될 것 같아서 당겨보니 잘 닿지가 않는다. 조금 무리를 하여 손에 힘을 주고 당기자 뚝 하는 소리가 났다. 근육이 손상이 간 것이다. 그때부터 허리가 계속 아파왔는데 어제 전신 맛사지를 받고나서는 많이 좋아졌지만 다시 허리에 통증이 왔다. 좋아하는 한 가지에 빠지면 너무 집착하는 것이 나의 병폐였다. 지금 이 나이에도 호승심을 버리지 못하고 무리를 하는 경우가 많다. 허리통증도 이러한 무리의 결과이다. 라오스의 경치를 감상하면서 메모지에 과유불급(過猶不及)’을 새겼다.

 

멀리 경치가 아주 뛰어난 곳이 보인다. 계림의 산하를 뻥튀기하여 이곳에 옮겨놓은 것 같다. 중국 계림은 해발 300m내외의 산들이 올망졸망 이어져 아기자기한데 이곳은 웅장하면서도 아기자기함을 함께 보여주고 있다. 보는 관점에 따라서는 계림보다 한 수 위다. 가이드에게 이곳에서 경치감상을 하고 가자고 하니 조금 더 가서 그곳에서 점심을 먹는다고 한다. 사람들의 생각이란 참 비슷한 것 같다. 내가 보기에도 이곳의 풍광이 뛰어나서 감상을 하고 싶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대형 휴게소가 만들어져 있었다. 음식도 제법 깔끔하게 나오고, 라오비어도 2병에 3달러다. 식사 때마다 한 잔씩 하는 라오비어의 맛에 흠뻑 빠져 들었다.

 

 

우리 일행들은 경치가 좋은 곳에서 사진촬영에 여념이 없었다. 이곳 휴게소의 이름이 푸피앙타라고 한다. ‘이고 피앙타높다라는 의미다. 앞에 보이는 멋진 산은 푸파짜오. ‘파짜오뽀쪽하다라는 의미다. 따라서 뽀쪽한 산이라는 뜻이다. 아쉬운 것은 빗방울이 한두 방울 떨어져서 주변의 경관이 구름으로 가려져 조금은 아쉬웠다. 루앙프라방을 출발한지 약 5시간이 지났다. 방비엥까지 가려면 두 시간을 더 가야 한다. 우리나라 고속도로라면 두 시간이면 충분히 가는 거리인 240Km7시간 이상 걸린다.

 

 차는 30여 분을 더 달리자 평지다. 주변의 지형이 한눈에 보아도 카르스트 지형이다. '카르스트'라는 말은 유고의 카르스트 지방에서 그 이름이 유래했다. 카르스트 지형은 석회암 지대에 생기는 특수한 지형이다. 지하수가 통과하고 있는 층에는 석회암 동굴이 생기고, 지표에는 석회암 동굴이 지하수의 작용으로 무너져 움푹 팬 지형인 돌리네가 여기저기 있는 지형을 말한다.

카르스트 지형은 기후조건에 따라 온대 및 열대 카르스트 지형으로 구분한다. 온대카르스트는 우리나라에서 보편적으로 볼 수 있는 돌리네, 카렌, 석회동굴 등으로 이루어진 지형이다. 열대 카르스트는 온대에 비해 상대적으로 강한 용식작용이 일어나 거대한 규모의 석회암 잔구(殘丘) 지형이 나타난다. 중국 계림의 탑카르스트(tower karst)는 좋은 예이다. 또한 이곳 역시 계림과 마찬가지로 열대 카르스트 지형으로 보인다. 이러한 지형이 나타났다는 자체가 방비엥에 다와 간다는 느낌이 들었다.

 차가 오랫동안 멈추어 있다. 무슨 일인지 보니 약 50여 마리의 소떼가 지나간다. 운전기사는 경적 한 번 울리지 않고 소들이 다 지나가도록 기다려 준다. 그것도 고속도로상에서. 중국 사람들을 만만디라고 하는데 라오스사람은 중국 사람보다 더 만만만디다.

해가 뉘엿뉘엿 지자 드디어 방비엥에 도착을 했다. 호텔에 짐만 놓아두고는 저녁식사를 하러 시내에 있는 한국인이 경영하는 식당으로 갔다. 그런데 식사가 별로 맛이 없다. 또한 맥주 가격이 무려 한 병에 3달러를 받는다. 이해는 되지만 현지인 식당과 비슷하게 받았으면 좋겠다.

식사를 하고는 맛사지를 했다. 이곳의 맛사지가 중국보다 약해서 별로라고 하는 분도 있지만 허리를 다친 나에게는 참 좋았다. 훨씬 가벼워진 몸으로 방비엥의 저녁거리를 활보했다. 방비엥의 온 거리와 상점에는 한국말만 들린다. 관광지인데도 물건 값이 참 싸다. 가게 주인들의 관상을 보니 을의 상이 아닌 갑의 상을 가지고 있다. 아마 이들은 라오스에서는 아주 잘 나가는 부유층일 것이다.

 

다른 분들이 쇼핑에 열심일 때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크게 음악소리가 들려서 가 보았다. 많은 사람들이 신나는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추고 있다. 노란머리 젊은이들이 반이고 우리말을 쓰는 젊은이가 반 정도로 보였다. 마침 그때 키도 크고 얼굴도 희고 잘생긴 청년들이 왔다. 한국사람? 이라고 하자. 당당하게 타일랜드라고 대답을 한다. 그들은 라오스가 아직도 태국의 식민지라고 생각하는지 갑의 상을 갖고 있었다.

우리 일행들은 다시 모여 맥주집으로 들어갔다. 이곳은 전문술집인데도 불구하고 라오맥주 두병에 3달러다. 현지인이 운영하는 가게는 이처럼 저렴하다. 안주를 안 시켜도 강요를 하지 않는다. 아마도 방비엥은 젊은 여행자가 많아서일 게다. 우리들은 오늘 있었던 일들을 도란도란 정답게 대화를 나누면서 여행의 참맛을 느꼈다.

다음날 아침 호텔에서 식사를 하고는 톡톡이를 타고 몬도가네 시장에 갔다. 시장에 들어서자마자 매우 놀라서 외치는 큰소리가 났다. 주인공은 죽은 쥐다. 쥐를 잡아서 팔고 있다. 이곳은 비단 쥐뿐만 아니라 도마뱀, 개미, 박쥐 등 다양한 곤충과 동물들을 팔고 있었다. 한마디로 징그러웠다.

 

 

 

 

다시 우리 일행은 블루라군으로 향했다. 블루라군으로 향하는 길은 어릴 적 우리 동네 모습과 너무 흡사하다. 길에는 소똥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논밭 또한 경리정리가 되어 있지 않은 순수 그 자체였다. 블루라군에 도착하니 노랑머리 외국인들이 많이 보인다. 웃통을 벗거나 비키니를 입은 젊은 사람들이 많다. 방비엥을 배낭족의 천국이라고도 하는데 정말 실감이 난다. 활기가 넘치는 곳이다.

 

우리도 수영복으로 갈아 입고 조끼를 입었다. 그런데 이곳 기온이 20도라고 한다. 추위를 많이 타는 나로서는 이 온도에 물에 들어가기에는 위험부담이 크다. 혹시 감기라도 들면 안 되기 때문이다. 나만 빠지고 나머지 분들은 이마에 랜턴을 달고 수중동굴 탐방을 하러 갔다. 20여 분 후에 나왔다. 뭔가 하나 성취했다는 표정을 짓고 있다.

 

 

현지에서 도시락으로 점심을 먹고는 쏭강으로 카약을 타러 갔다. 쏭강의 강물이 어찌나 맑은지 이곳에서 내내 놀고 싶었다. 중국 계림의 이강물보다도 훨씬 더 맑고 깨끗하다. 카약에 두 사람씩 타도록 되어 있다. 제일 뒤쪽에는 현지인이 배를 조정하여 처음 타는 사람들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내가 먼저 배에 오르자마자 균형이 무너져 그만 물에 빠지고 말았다. 우리 일행들이 석화암동굴에서 수중탐사를 하는 동안 나 혼자 라오비어를 즐긴 탓이다.

 바지도 방수고 잠바도 방수인 고어텍스라고 그동안 내가 입은 옷을 자랑했었다. 그런데 물에 빠지고 보니 비싼 고어텍스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물에 빠져도 주변 경치가 너무 좋다. 무릉도원이 아마 이곳이 아닌가 할 정도였다. 카약을 타고 물결을 헤쳐 나갔다. 젊은 시절 광안리 바다에서 익힌 노 젓는 실력이 그대로 나왔다. 기능학습이란 세월이 가도 그대로다. 신선이 된 기분으로 떠내려가고 있는데 급류가 곳곳에 있다. 앞 팀이 급류에 배가 뒤집어졌다. 그 와중에 신발이 떠내려가는데 최부장이 잽싸게 잡는 순발력을 발휘했다. 모두들 즐거워했다.

1시간 여를 타고 내려오자 중간에 휴게소가 나왔다.

 

 

다들 옷이 물에 젖어 있어 추웠다. 추위에는 주님이 최고다. 라오맥주 대신 포도주를 시켜 한 잔을 하고 나니 추위가 조금 가셨다. 따뜻한 커피도 팔고 있었다. 다른 분들은 지갑을 다 두고 왔지만 나만 방수 윗도리에 지갑을 넣어두어 젖지 않았다. 따뜻한 커피를 대접하니 다들 고마워한다. 꼭 필요할 때의 따뜻한 커피 한잔은 몸과 마음을 따뜻하게 해준다.

다시 한 30여 분을 내려가니 우리가 타고 온 톡톡이가 기다리고 있었다. 젖은 옷을 갈아입고는 주변을 다시 살펴보았다.

풍경이 평화롭고 아름답고 원시적인 모습을 자연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주변의 모든 사람들은 이곳의 자연을 닮은 듯 소박하게 웃고 있다. 모두들 행복해 하는 모습들이다.

호텔로 돌아가서 저녁을 먹고는 또 맛사지를 하고 또 쇼핑을 했다. 다들 맛사지와 쇼핑을 이렇게 좋아하는지를 미처 몰랐다. 라오스에서의 마지막 밤이라 화기애애하게 많은 담소를 나누었다.

 

 

다음날 일찍 일어나 호텔 주변을 산책하고는 비엔티엔으로 향했다. 중간에 비가 조금씩 내리기 시작한다. 지금이 건기라서 거의 비기 오지 않는다고 하는데 비가 온다. 중간에 젓갈 마을에 도착했다.

 

 

라오스는 바다가 없다. 소금에 절인 젓갈류는 모두 민물 생선 젓갈들이다. 그래서 그런지 냄새가 고약하다. 잠깐 내려 사진 한 장 찍고는 다시 출발을 했다. 한적하고 그림 같은 풍광들이 계속 이어졌다. 한쪽에는 모내기를 하고 있고 다른 쪽에는 벼가 누렇게 익어가고 있다. 이곳에서는 일년에 벼를 삼모작까지도 할 수 있다고 한다.

 

 

 

 

차는 다시 소금마을에 도착을 했다. 라오스가 과거에는 바다 밑이었다. 그래서 이곳 지하수에는 순도가 높은 소금물이 나온다. 이 소금물을 끓여서 소금을 만들고 있다. 소금마을을 나오자 동네 아이들이 손을 흔들고 있다. 환영의 뜻이다. 지나가는 외국인이 차를 세워놓고 아이들에게 사탕을 나누어 주고 있다. 참 귀엽고 순박한 얼굴이다. 라오스에서는 아이가 귀엽다고 머리를 쓰다듬으면 절대 안 된다고 한다. 발을 가장 천시하고 다음은 손이고 머리를 가장 중시한다. 머리에 불성이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가이드는 소금을 구입하여 우리 모두에게 한 봉지씩 나누어 주었다.

 

이젠 교통량이 좀 많아졌다. 비엔티엔이 가까워 졌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제법 넓은 강물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메콩강과는 달리 맑은 물이 흐르고 있다. 수량도 풍부하고 운치도 좋다. 경치가 가장 좋다고 생각되는 지점에 도착했다. 이 강이 남능강이고, 이 곳이 탕원 유원지다. 점심을 선상에서 했다. 배가 강 하류를 따라 운항을 하면서 식사를 한다. 일종의 크루즈 여행인 셈이다. 스피커에서 귀에 익은 목소리의 노래가 흘러나왔다. 이미자, 남진 싸이의 노래가 차례로 나온다. 대한민국의 위상이 느껴지는 것 같아 한편으로는 흐뭇했다. 라오비어 2병이 어김없이 나왔다. 라오비어 2병은 여섯 명이 한 잔씩 마시면 딱이다. 이 한 잔이 삶을 풍요롭게 한다. 

 

 

 

 

마침내 비안티엔에 도착했다. 라오스에서 가장 크다는 달랏사오 시장으로 갔다. 방수라고 자랑한 바지가 아직도 물에 젖어 있다. 그래서 청바지를 샀다. 20달러 달라는 것을 17달러에 샀다. 그리고 벨트도 10달러 달라는 것을 7불에 샀다. 그런데 똑 같은 것을 옆 가게에는 청바지가 15달러이고 벨트는 4달러다. 적선을 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첫날 잘 보지 못한 탓 루앙(That Luang) 사원에 갔다. 루앙프라방에서 본 것보다 한수 떨어지는 것 같았다. 저녁식사를 하고는 대한민국이 만들어 주었다는 메콩강가에 있는 야시장을 구경하고는 비엔티안 공항에 왔다.

공항검색대에서 그만 소금을 빼앗기고 말았다. 소금은 화물칸에 실어야지 손가방에 들고 들어오지는 못하게 했다. 비행기는 밤 1150분에 이룩하여 연착 없이 김해국제공항에 무사히 착륙을 했다. 이것으로 46일의 라오스 여행을 무사히 마쳤다.

 

인연은 참 소중한 것이다. 같은 학교에서 근무를 했던 인연으로 만나서 같이 여행을 떠났다. 함께 여행을 감으로써 인연은 더 깊어졌다. 국내여행도 했지만 해외여행을 같이 하니 정이 더 깊어졌다. 함께 했던 소중한 분들, 특히 여러 가지 준비에 제일 수고하신 유교장님께 감사를 드리며 이런 여행이 매년, 10년이고 20년이고 계속되기를 기원해 본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들 건강하게 일상생활을 해나가야 한다. 건강한 일상이 행복하고 즐거운 여행을 만들어 주는 밑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