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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

스페인 여행5-알함브라 궁전

by 황교장 2022. 8. 2.

스페인 여행5-알함브라 궁전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을 뒤로하고 알함브라 궁전을 보기 위해 그라나다로 향했다. 바르셀로나에서 그라나다까지는 버스로 9시간이나 걸린다. 이미 오후 3시 반이어서 중간에 발렌시아 교외에 있는 호텔에서 1박을 하기로 했다. 바르셀로나에서 발렌시아로 가는 길은 거의 대평원이다. 대부분 작물은 오렌지와 올리브나무이다. 지중해와 숨바꼭질을 계속하면서 내려왔다.

 

발렌시아는 우리에게는 제법 익숙한 도시다. 2019 FIFA U-20 월드컵에서 골든볼을 수상한 이강인 선수 때문이다. 지금은 레알 마요르카 소속이지만 발렌시아 CF에서 성장했다. 발렌시아는 그리스와 카르타고와 로마의 지배를 받았다. 로마가 멸망한 이후 서고트 왕국의 영토가 되었다. 이후 우마이야 왕조 시대에 이슬람 세력에게 정복당했고 무어인들이 이곳을 근거지로 한 발렌시아 왕국을 건설한 곳이기도 했다.

 

오렌지밭

발렌시아의 주산물은 쌀, 오렌지, 올리브 등이다. 특히 오렌지는 캘리포니아 못지않은 산지로 알려져 있다. 오늘 숙소도 발렌시아 교외라 주변에 오렌지와 레몬밭들이 많이 보인다. 스페인은 남한의 다섯 배가 넘는 국토를 갖고 있다. 그래서인지 주변에 높은 건물이 없다. 건물과 건물 사이도 넓어 평안한 느낌을 준다.

 

숙소에서 깊은 잠을 자 어제 하루의 피로를 깨끗이 풀었다. 4시에 일어나 기본운동을 하고는 숙소 주변을 산책했다. 전체적으로 우리나라 농촌과 분위기가 비슷하다. 산책길에는 아는 식물도 있고, 처음 보는 식물도 보였다. 아직도 호기심이 남아 있어 모르는 식물이 보이면 알고 싶어진다.

 

아침을 먹고는 오늘의 목적지 알함브라궁전이 있는 그라나다로 떠났다. 이번 스페인 여행에서 가장 보고 싶은 곳이 알함브라 궁전이다. 기타곡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때문이다.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3년간을 한방에서 같이 하숙한 단짝 친구가 클래식 기타를 중학교 때부터 배워 연주한 곡이 영화 금지된 장난로망스슈베르트밤과 꿈타레가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이었다. 이때부터 친구 어깨 너머로 배운 기타실력으로 지금까지도 뚱땅거리면서 즐기고 있다.

 

발렌시아에서 그라나다까지는 약 5시간이 걸린다. 차는 지중해를 따라가다가 내륙으로 들어간다. 주변에 자라나는 작물들이 바뀐다. 올리브는 그대로인데 오렌지와 레몬밭이 사라지고 간간이 대규모의 해바라기밭이 보인다. 비가 오지 않아 척박하다. 해바라기도 일부는 물이 없어 타들어가고 있다. 3시간을 달려 휴게실에서 점심을 먹었다.

 

주변의 산세가 제법 험악하다. 주로 바위산으로 형성되어 있다. 가이드가 이곳의 지형이 좀 특이한데 풍수적인 측면에서 기가 응축된 곳인가 묻는다. 풍수(風水)藏風得水(장풍득수)의 준말이다. 즉 바람을 감추고 물을 얻는다는 의미다. 장풍득수는 배산임수(背山臨水)와도 일맥상통하는 말이다. 뒤에는 산이요, 앞은 물이라는 의미다. 풍수에서 가장 중시하는 것 중 하나는 사신사(四神砂)와 명당수다.

 

사신사의 기능은 바람과 적의 침입을 막고 사람들에게 편안한 분위기를 갖게 하며, 경관의 아름다움을 제공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사신사란 좌청룡, 우백호, 남주작, 북현무를 말한다. 북쪽을 등지고 왼쪽이 좌청룡, 오른쪽이 우백호, 남쪽이 남주작, 등 뒤가 북현무이다. 좌청룡은 용이 꿈틀거리는 모습으로 보여야 하고, 우백호는 호랑이가 엎드려 있는 모습으로 보여야 하며, 남주작은 주작새가 날아갈 듯 정결히 춤을 추는 모습으로, 북현무는 거북이가 웅크리고 있는 모습을 하고는 북풍으로부터 바람을 막아주어야만 최적의 명당조건이라고 설명했다.

 

사신사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물이다. 즉 명당을 감싸고 흐르는 명당수가 있어야 한다. 이곳은 단지 바위투성이로 된 산이 험악할 뿐이지 냇가에는 물이 말라 없다. 이곳이야말로 풍수상 흉지 중의 흉지라고 설명하자, “! 그래서 이곳에는 사람들이 거의 살지를 않는군요.”라고 한다. 이곳은 해발 900m로 시에라 네바다 산맥의 한 줄기이다. 그런데도 아주 넓은 분지로 형성이 되어 있다. 이러한 지형으로 거의 두 시간을 더 달리자 내리막길로 내려가기 시작한다. 한참을 내려오자 드디어 오늘의 목적지인 알함브라 궁전이 있는 그라나다에 도착했다.

 

알함브라 궁전은 세계문화유산으로 문화재 보존을 위해 관람객의 수를 예년의 십분의 일로 줄인 상황이라 입구가 그리 번잡하지 않았다. 그런데 출입국을 할 때처럼 검색대를 통과해야 하고 여권까지 검사하고, 심지어 배낭을 앞으로 매게했다. 문화재에 조금이라도 손상을 입힐까봐 예방차원이라고 한다.

 

드디어 알함브라 궁전 입장이다. 알함브라 궁전은 총 7개의 궁으로 되어 있었는데 지금 3개의 궁만 남아 있다. 그중 최고의 하이라이트는 카사레알이다. 이슬람 왕이 거주하는 카사레알은 사자의 정원과 대사들의 방으로 구성되어 있다.

 

사자의 정원에는 무하마드 5세 때 조각된 124개의 대리석 기둥이 줄지어 서 있고 중앙에 12마리의 사자가 떠받치고 있는 분수가 있다. 12마리의 사자는 그라나다에 살던 유대인 12부족을 의미한다. 그들이 이 분수대를 왕에게 선물했다고 한다. 이 사자들은 한때는 시계의 기능을 했다. 매시간 어느 사자의 입에서 물이 뿜어져 나오는지를 보고 시간을 알 수 있었다고 한다. 이를 보고 완전히 마음을 빼앗긴 기독교인들은 이 분수를 분해하여 그 작동 원리를 이해하려고 했지만, 그 이후로 시계는 두 번 다시 작동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곳은 하렘으로 왕 이외의 남성은 출입할 수 없었다. 대사들의 방은 왕이 방문객을 만날 때 사용하는 공식 행사장으로 이슬람교에서 말하는 우주의 일곱 하늘을 재현해 놓았다.

 

8,017개에 달하는 삼나무 조각으로 완벽하게 짜 맞춘 이곳 천장은 연못과 바닥에 반사된 햇빛이 다시 천장을 밝혀 항상 은은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방을 장식하는 아치 문양, 연속적인 반원 무늬 등 기하학적인 무늬와 그 패턴의 반복으로 방안의 모든 것은 이미 이 세상을 초월해 신에게 다가가고 있는 느낌을 주기 위함이라고 한다.

 

무엇보다도 알함브라 궁전의 하이라이트는 아라야네스 정원이다. ‘천국의 꽃이란 뜻을 가진 아라야네스의 정원에서 바라보면 하늘과 연못, 건축물이 좌우 대칭을 이루고 있다. 조화와 질서, 완벽한 균형은 지상에서 꿈꿀 수 있는 천상의 세계를 알함브라에 투영했다고 한다. 아라야네스 정원은 인도의 타지마할 조성에도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다음으로 궁전 위쪽에 있는 군인들의 거주지였다는 곳을 갔다. 이곳에는 지하감옥이 있다. 몇 년 전 방영된 현빈이 주연한 드라마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에서 현빈이 지하감옥에 들어가 미션을 수행한 곳이다. 그곳 망루에서 바라보면 이곳의 풍수가 한눈에 보인다. 가장 먼저 이슬람인들과 유대인의 집단거주지인 알바이신 지구가 한눈에 들어온다.

 

알람브라 서쪽과 북쪽으로는 그라나다 시가지와 평원이 바라다보이고, 동쪽과 남쪽으로는 높이 솟은 시에라 네바다 산맥이 보인다. 이 산맥의 주봉 물라센산(3,478m)은 이베리아 반도의 최고봉이다. 아직 빙하도 남아있다고 한다. 주봉에서 내려온 혈이 이곳 알함브라궁전으로 이어진다. 궁전은 가파른 언덕 위에 있어 접근이 어렵다. 그리고 성벽은 외부인이 내부에 있는 궁전을 전혀 짐작할 수 없는 구조로 되어 있다. 천하의 명당이자 천혜의 요새다.

 

이곳은 이사벨 1세 여왕과 페르난도 2세 왕이 3년 동안이나 포위망을 구축하고 전쟁을 벌였지만 결국 무력으로는 점령하지 못하고 간계를 써 점령한 곳이다. 바보 같은 나스르 왕가의 보아브딜왕은 평화적으로 이 성을 내어주고 아프리카로 떠났다.

 

궁전 관람의 마지막 코스는 사이프러스 나무로 둘러싸인 헤네랄리페 정원이다. 헤네랄리페 정원은 14세기에 건설된 나스르 왕가의 여름별장으로 알려져 있다.

 

이곳은 아라베스크 무늬의 조각과 물 그리고 꽃이 어우러져 있다. 아라베스크 무늬란 벽면이나 공예품 등에서 볼 수 있는 식물의 줄기와 잎을 도안화하여 만든 독특한 무늬다.

 

우상을 숭배하지 않는 이슬람교의 특성상 신의 형상을 만들지 않는 대신 신을 찬미하는 의미로 매우 정교하고 정형화된 양식을 만들게 된 것이다. 이것은 이슬람 장식 문화 전통에서 빠지지 않는 요소가 된다. 문자와 식물, 기하학적인 무늬가 배합되어 독특하고 환상적인 분위기를 낸다. 알함브라궁전의 벽면과 천장은 대부분 아라베스크 무늬라고 할 수 있다.

 

헤네랄리페 정원의 건물과 구조물들은 이곳 그라나다의 뜨거운 여름 날씨 때문에 만들어졌다. 물과 바람을 이용하여 시원한 공간을 만들었다. 그늘과 바람, 물이 흐르는 크고 작은 분수를 이용하여 여름철 뜨거운 태양의 열기를 인공적으로 시원하게 만들었다. 또한 흐르는 물의 압력을 이용하여 분수를 만들어 시원한 공간도 만들어 냈다.

 

사막인들은 물에 대한 동경은 남다르다고 한다. 물은 그들에게 생명의 근원이다. 이러한 사막인들이 물이 풍부한 이곳을 만났으니 세상에서 가장 화려한 정원이 나오는 것이다.

 

그런데 이곳은 원형 그대로는 아니라고 한다. 기독교도의 손에 넘어간 뒤에 예배당으로 개조되었고, 그 후 나폴레옹 군인들에 의해 파괴되기도 했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은 원형의 모습을 완벽하게 알 수는 없지만 남아 있는 모습으로도 당시 얼마나 아름다운 공간이었는지 짐작할 수가 있다.

 

헤네랄리페 정원을 보고 내려오면서 카를 5세 궁전으로 들어갔다. 카를 5(독일어: Karl V, 라틴어: Carolus V, 프랑스어: Charles V, 이탈리아어: Carlo V, 네덜란드어: Karel V, 1500-1558)1519년부터 신성 로마 제국 황제였으며, 스페인에서는 카를로스 1(스페인어: Carlos I)라고도 불렸다. 가이드는 계속 카를로스 5세라고 부른다. 귀에 거슬린다. 신성로마제국의 카를 5세이지만 스페인에서는 카를로스 1세다. 카를 5세 궁전은 알함브라 중심에 있는 기독교 양식의 네모 건물이다. 그런데 안에 들어가면 타원형의 건물이다.

 

카를 5세는 이 건물을 이슬람보다 기독교의 우수성을 보여주기 위한 욕심으로 만들었으나 미완성의 건물이다. 이 궁전은 그 무거운 하중을 다른 건물들에 떠넘기고 있어, 유지 보수에 큰 골칫거리가 되고 있다. 그렇지만 이것도 500년이 넘은 역사적인 건물인지라 철거할 수는 없다고 한다. 이 건물은 규모가 커서 알함브라 궁전에서 진행되는 모든 문화행사를 이곳에서 치러내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한다.

 

나의 사견으로는 로마제국이 멸망한 이후 유럽 역사상 가장 영향력이 큰 인물은 나폴레옹과 카를 5세라고 생각된다. 르네상스 시대의 대 격동기에 가장 많이 활약하고 회자된 인물이다. 카를 5세는 아마 세계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를 가진 황제였다고 생각된다. 그의 직책만 열거해보자.

 

신성로마제국 황제, 스페인 국왕, 도이치 국왕, 합스부르크 왕가 오스트리아 국왕, 시칠리아 군주, 나폴리 군주, 슈티리아 군주, 카린티아 군주, 브라반트 군주, 밀라노 대공, 티롤 백작, 홀란드 백작, 바르셀로나 백작, 아스투리아스 대공, 황금양모기사단장, 페루 군주, 아메리카, 아프리카 식민지 지배자 등이다.

 

이렇게 화려한 직책을 가진 카를 5세가 만든 궁전이었지만 알함브라 궁전에 비하면 부끄러운 수준이라고 느껴졌다.

알함브라 궁전을 보고 내려오는데 귀에 익은 기타소리가 들려온다.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이다. 무명의 연주자가 버스킹을 하고 있다. 알함브라 궁전을 보고 나서인지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의 트레몰로 주법이 더 애잔하게 다가온다.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은, 기타리스트이자 작곡가인 타레가가 알함브라 궁전을 보고 느낀 감동을 이 곡으로 옮긴 것이다.

 

이 곡에는 다음과 같은 사연이 있다고 한다.

타레가는 그의 제자인 콘차 부인을 짝사랑하고 있었는데, 그녀는 타레가의 사랑을 거부했다. 실의에 빠진 타레가는 스페인을 여행하면서 알함브라 궁전에 왔다. 그는 달빛이 드리워진 알함브라 궁전의 아름다움을 따라 자신의 사랑을 떠올리며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을 작곡했다고 한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고 있는 곡이다.

 

이처럼 아름다운 명곡을 들으면서도 아름다운 추억이나 옛사랑을 떠올리지 않는 사람은 아마도 몹시 메마른 가슴을 가진 사람일 것이다!

저녁을 먹고는 해거름에 알함브라 궁전을 맞은 편에서 볼 수 있는 알바이신 지구 야간투어를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