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여행7-론다(Ronda)
연일 강행군인데도 어김없이 4시 반만 되면 잠이 깬다. 기본운동을 하고 숙소 근처 산책을 나갔다. 큰 도로 옆이라 산책하기가 불편했다. 숙소에는 어제 미국 대학생들이 단체 여행을 와서 새벽부터 소란하다. 아침식사를 하고는 투우의 본고장인 론다로 향했다.
론다로 가는 길가는 대부분이 올리브나무다. 간간이 풍력발전소가 눈에 들어온다. 해발이 높아 바람이 센 모양이다. 높은 산들이 이어지고 가운데에는 넓은 분지가 있다. 산에 나무가 적어 조금은 삭막하지만 나름의 특색있는 풍경은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
계속 이어지는 산악과 구릉이 교차하면서 차창을 스쳐 지나간다. 스쳐 지나가는 풍경을 무념무상으로 보는 것 또한 여행의 참맛이 아닌가 생각되기도 한다. 고향같이 정겨운 풍경이 다가왔다가는 이국적인 풍광이 교차하면서 지나간다. 2시간여를 달리자 직감적으로 론다라고 느껴지는 아주 큰 마을이 나타났다.
론다는 스페인 안달루시아 자치지역 남부 말라가주에 속한다. 론다 산맥에 자리한 해발 780m 고지대로 인구 37,000명의 작은 도시다. 아찔한 협곡 위에 제법 높은 흰 집들이 많이 보인다. 버스는 나선형으로 올라 광장에 우리를 내려다 놓는다. 광장에서 조금만 걷자 스페인에서 최초로 세웠다는 투우장이 나왔다.
1779년에 건설을 시작해, 1785년에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완성된 원형 투우장은, 최대 수용 인원은 약 6,000명으로, 현재 사용 중인 투우장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곳이라고 한다. 투우장을 지나니 협곡을 따라 산책로가 잘 나와 있다. 산책로에서 바라보는 건너편의 풍광들이 눈과 마음을 즐겁게 한다.
들뜬 기분으로 산책로를 계속 따라가니 론다의 상징인 누에보 다리가 나타났다. 누에보 다리(Puente Nuevo)는 론다의 엘 타호 협곡에 놓인 다리로 론다의 신시가지와 구시가지를 연결해 주는 아치형 다리다. 42년에 걸쳐 벽돌을 한 장 한 장 쌓아 올린 끝에 1793년에 완성됐다고 한다.
120m 깊이의 협곡 사이에 과달레빈강이 흐르고 있다. 처음 지어진 다리가 무너져 마을 사람 90여 명이 사망한 이후 다시 새롭게 지은 다리라는 의미에서 누에보 다리라고 한다. ‘누에보(Nuevo)’는 스페인말로 ‘새로운’의 뜻이다.
누에보 다리를 이편저편으로 두 번이나 왔다 갔다 하면서 양쪽의 풍광들을 감상했다. 지금도 누에보 다리만이 갖는 독특한 풍광으로 전 세계의 사진작가들이 애호하는 장소라고 한다. 참 특이한 지형이다. 인간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외적의 침입을 방어해야 한다. 론다는 방어하기에는 최적의 장소다. 어제 본 알함브라 궁전이 있는 지형과 비슷한 느낌이다. 결국 우리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는 생존인 셈이다.
누에보 다리를 보고는 광장 옆을 지나자 오래된 건물이 나온다. 론산타 마리아 라 마요르 성당이다. 1485년 기독교가 론다를 재정복한 후 이슬람의 모스크가 있던 곳에 세운 성당이다. 가톨릭 국왕 부부로 불리는 이사벨 1세와 페르난도 2세의 명령에 따라 1485년부터 건축을 시작했으나, 재정적 어려움과 1,580년의 지진 등 문제가 연달아 발생하면서 공사가 지연되어, 200년 이상이 지난 17세기 말엽에 완성됐다. 고딕 양식이 적용된 부분과 르네상스 양식이 적용된 부분이 확연하게 구분되는, 보기 드문 예로 주목받는 건축물이라고 한다.
론다 주변을 한 바퀴 돌고는 처음 갈 때 인상 깊게 보아두었건 절벽 위의 카페로 갔다. 이곳은 서향이라 뜨거운 햇살을 피할 수 있어 이 시간을 즐길 수 있는 최상의 명당자리였다. 야외 카페에서 오렌지 주스를 마시며 주변의 풍광을 자세히 감상했다. 먼 곳에 있는 산세와 바로 앞 맞은편에 보이는 농작물들이 눈에 들어왔다. 평화로운 시골 풍경이다.
인가라고는 거의 없다. 사람들은 모두 이곳 론다 시내에만 살고 있다. 저 넓고 풍광 좋은 곳을 두고는 좁은 시내에 옹기종기 모여 산다. 결국 우리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더불어 같이 살아야만 인간인 셈이다.
더운 날씨에 얼음이 든 오렌지 주스가 이렇게 시원하고 달콤한 오렌지 향기의 맛이 있을 줄은 미처 몰랐다. 시원한 맥주 맛에 뒤지지 않는다.
휴식을 취하고는 다시 산책길을 걸었다. 갈 때는 미처 보지 못한 헤밍웨이(1899-1961)의 동상이 이곳에 있다.
그것도 론다 투우장 앞에 세워져 있다. 미국 사람인 헤밍웨이는 이곳에서 투우 경기를 매우 즐겼다고 한다. 헤밍웨이는 스페인과 론다를 매우 사랑했다. 그는 37세 때 스페인 내전에 공화파 의용군 기자로 참전했다.
그의 소설 중 스페인의 투우를 다룬 ‘오후의 죽음(1932)’과 스페인 내전을 소재로 한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1940)’의 배경으로 삼은 곳도 론다요, 집필을 시작한 곳 역시 론다라고 한다.
게리 쿠퍼와 잉그리드 버그만이 연기했던 영화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의 유명한 대사가 생각났다. “키스할 때 고개를 왼쪽으로 돌리나요? 아니면 오른쪽으로 돌리나요? 키스할 때 코는 어디에 두어야 하죠?”,
“난 이 세상에서 내가 가장 사랑하는 것을 사랑하듯 당신을 사랑하고 있어”, “이 세상에 너 하나뿐이라서 널 사랑한 게 아니라, 널 사랑하다 보니 이 세상에 너 하나뿐이다.”,
“어떤 이의 죽음도 나 자신의 소모려니, 그건 나도 또한 인류의 일부이기에 그러니 묻지 마라!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느냐고? 종은 바로 그대를 위하여 울리는 것이다!”
투우장 앞에는 18세기 근대 투우의 창시자 프란치스코 로메로(Francisco Romero)의 동상이 서 있었다. 론다 출신인 그는 ‘물레타(muleta)’를 고안하며 투우를 예술로 승화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투우사가 황소를 자극해 체력을 소비시킨 뒤 최후의 일격을 가할 순간을 노리는 결정적 도구가 바로 막대에 단 붉은 천 물레타이다. 황소를 몰 때 무용수처럼 절도 있는 몸동작 또한 로메로가 확립시켰다.
이후 대대로 투우사를 배출하여 로메로 가문은 투우 명문가로 등극했다. 본래 투우 경기는 투우사가 말을 타고 소를 창으로 찌르는 형식이었는데, 한번은 프란치스코 로메로의 손자 페드로 로메로(Pedro Romero)가 경기 중 말에서 떨어져 위기를 당했다. 그런데 그가 입고 입던 옷을 활용해 달려드는 소를 피하였는데 그때부터 투우 방식이 달라졌다고 한다. 그는 5,000마리가 넘는 황소와의 대결에서 모두 승리를 거둔 전설의 투우사가 됐다.
스페인 사람들은 핏줄과 지역 간 차이에도 불구하고 한결같이 자존심이 강하고, 조국 스페인과 자신의 고향에 대한 긍지가 높다고 한다. 남에게 지기 싫어하며 자존심이 대단히 강하다. ‘스페인 거지는 빌어는 먹어도 자존심 때문에 도둑질은 하지 않는다’ 는 말이 있을 정도로 자존심이 너무나도 강하다.
이러한 그들의 인생철학을 엿볼 수 있는 것이 바로 투우다. 그들에게 투우란 단순한 놀이나 구경거리가 아니라 하나의 의식(儀式)에 가깝다. 투우는 인간과 수소의 생명을 건 싸움이고 대결이다. 즉 삶과 죽음이 엇갈리는 투쟁과 대결이다. 투우장은 모든 생명체가 맞이하지 아니할 수 없는 죽음에 대항하여 결연히 맞서 싸워 이겨야 하는 자존심이 걸린 무대다. 투우란 한마디로 가장 남성적인 인간과 가장 남성적인 동물의 대결이다.
수소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부딪힐 수 있는 모든 불행과 난관을 상징한다. 즉 아무리 많은 관중이 들어차 있어도 투우장에 서 있는 투우사는 혼자이며 죽음과 불행, 재난과 맞서 당당히 싸워 이겨나가야 할 인생, 그 자체이다.
스페인 사람들은 투우를 통해 삶의 현장에서 외롭게 죽음과 적을 맞는 자신을 본다. 당당하게 맞서라! 피할 수 없다면 싸워서 이겨야 한다! 자신을 향해 돌진하는 수소를 마주한 투우사는 절대 두 발을 땅에서 떼지 않고, 소와 가까운 곳에서 아슬아슬하게 피해야 한다. 발을 땅에서 떼는 것은 소가 두려워 겁에 질려 도망치는 것으로 비치기 때문이다. 몸에 닿을 듯 말 듯 소를 피하는 투우사에게 관중은 뜨거운 갈채를 보낸다. 이는 죽음과 위험에 맞서 피하지 않고 당당히 극복해내는 용기와 기술에 찬양하는 것이다.
투우의 마지막 순서는 소의 등에 묶어둔 리본을 찌르는 것이다. 그곳은 소의 숨골이 있는 곳으로 꼭 우표 크기만 한 그 급소에 정확하게 장검을 꽂아 넣지 못하면 칼이 등뼈에 튕겨 꽂히지 않는다. 이런 실수가 반복되면 관중은 야유를 보낸다. 단번에 장검을 꽂아 넣어야만 소가 최소의 고통만을 느끼고 죽음을 맞을 수 있다. 이런 자비를 베푸는 투우사야말로 진정한 투우사다. 삶과 적을 사랑하지 않으면 진정한 투우사가 될 수 없다고 여긴다. ‘삶과 적을 사랑하라!’가 투우의 철학이다.
투우가 지닌 의미를 모르는 사람에겐 투우가 잔인하기 그지없는 동물 학대지만, 투우를 사랑하는 스페인사람에게는 투우란 곧 ‘삶과 죽음’ 그 자체이며 인생에서 끊임없이 찾아오는 시련과 난관을 피하지 아니하고, 당당하게 마주해 마침내 승리하는 인간의 자존심을 투우를 보면서 되새김하는 것이다. 자존심이란 죽음과도 바꿀 수 없는 인간의 가장 소중한 가치이다. 스페인사람은 뜨거운 모래밭인 아레나에서 벌어지는 투우를 보며 ‘내 목에 칼이 들어와도 네 앞에 무릎을 꿇을 수 없다! 생명을 걸고 싸우되 적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가장 적은 고통을 주고 적을 쓰러뜨려야 한다’는 철학을 되새김하는 것이다. 즉 투우는 스페인 사람들에게는 하나의 문화이며 종교와도 같은 의미를 지닌다.
론다는 작은 도시지만 인근 동굴에서 동굴 벽화가 발견되어 신석기 시대부터 사람이 살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기원전 6세기에 켈트족의 마을에 이어 페니키아인들도 마을을 세웠다. 기원전 3세기에는 제2차 포에니 전투에서 한니발을 물리친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 장군에 의해 요새화되었고, 율리우스 카이사르 시대에 도시 칭호를 받았을 정도로 론다는 유서 깊은 도시다.
유럽의 역사와 스페인의 역사에 대해 기본적인 것을 알고 스페인을 여행하면 여행지가 갖는 의미가 달리 보인다. 즉 ‘아는 것만큼 느끼는 것’은 여행에서는 만고의 진리인 것 같다. 다음 편에는 스페인의 역사를 간략하게 정리하고 여정을 이어가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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