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찾은 학봉 종택
학봉종택을 근 11개월만에 다시 찾았다.
부산에서 청주와 조치원 사이에 있는 교원대학교에서 교장자격연수를 6월 16일부터 8월 8일까지 받고 있다. 작년까지는 180시간만 하면 되었는데 올해부터는 시도연수 60시간을 포함하여 두 배로 늘려 364시간이나 한다.
연수는 좋았다. 역시 사람은 나이가 들어도 공부를 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동안 몰랐던 것을 많이 배웠다. 부산연수생들은 버스를 전세내어 대부분 함께 올라가고 내려오고 있다. 이들과 함께 내려오는 길에 문화체험 연수 겸 안동의 선비문화를 답사하였다.
답사처는 학봉종택-봉정사-제비원 석불-신세동 7층전탑-임청각-헛제삿밥-안동댐-부산이다.
교원대학교에서 출발하여 청주 IC로 들어가 새로 난 청원-상주간 고속도로를 탔다. 상주 낙동분기점에서 중앙고속도로 여주 방향으로 합류하였다. 그 다음은 함평IC로 나와서 예천을 거쳐 안동으로 향했다.
봉정사로 가는 들머리에 있는 학봉종택이 첫 방문지다. 학봉종택에는 미리 전화로 연락을 해 두었다. 나는 내 차로 조금 일찍 출발했다. 사직고 이재국 교감과 함께 이런저런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면서 학봉종택에 도착을 했다. 종택 대문을 들어서는 순간 분위기가 이상했다. 느낌으로 종손님이 세상을 뜨셨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작년 여름에 뵈었을 때에는 비교적 정정하신 모습으로 내 글을 읽고 계셨는데 그만 작고하신 것이다. 지난 2월 3일 타계했다고 한다. 향년 92세의 일기다. 이 교감과 나는 종손님의 빈소에 절을 올렸다.
빈소는 할머니 상을 치를 때 보고는 보지를 못한 것이다. 삼년상을 치른다고 한다. 요즘은 많은 사람들이 화장막에서 화장 후 납골당에 안치만 하면 바로 탈상을 하는데 삼년상을 한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양반의 장례법이 아직도 남아 있어 정말 다행이라 생각된다. 우리 전통의 장례문화가 살아 있음을 알 수 있다. 진작 알았으면 한 번 올 수도 있었는데, 관리를 하시는 분에게 물어보니 7일장을 했다고 한다. 지방지 신문에는 기사가 났는데 중앙지에는 나지 않았다고 한다.
이집 소장 개인 박물관인 운장각(56종 261 점을 보물 905호로, 17종 242점은 보물 제906호로 지정)을 둘러보면서 이집 후손인 김용수님의 설명을 우리 연수팀들이 너무 열심히 진지하게 듣고 있다. 특히 여자 교감들은 너무 좋아한다. 이유인즉 이렇게 잘 꾸며놓은 정원이 있는 집에서 한 번 살아보는 것이 소원이라고 한다. 아마 모든 사람들이 이런 종가집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일 것이다. 우리나라 종가집은 안동지방에 가장 많이 분포되어 있다고 한다. 퇴계선생의 영향과 지리적인 조건도 한 몫 했다고 생각된다.
종가의 성립 조건은 우선 불천위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불천위 위패를 모시는 사당이 있어야 하며, 그 사당이 자리하는 종택이 있어야 한다. 종택에는 종손이 살아야 하고, 그 종손을 중심으로 지손(支孫)이 있어 문중을 이루어야 종가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종가가 성립하기 위한 필수 조건이 불천위다. 그럼 불천위의 요건은 무엇인가? 대개 조상 중에서 나라에서 시호(諡號)를 받은 조상이 불천위가 된다.
시호를 받지 못했더라도 명망 있는 재야 학자, 유림의 추대를 받은 학자, 문중에서 추대한 조상도 불천위로 인정한다.
학봉종택의 차종손은 3년상이 끝나고 길제(吉祭)를 치르고 난 후 종손으로 정식으로 인증을 받게 된다. 길제는 일종의 종손 취임식이다. 길제는 제사를 받들던 종손이 죽고 그 아들이 제사를 이어받게 될 때 5대조의 위패를 매안(埋安, 대게 불천위 묘소 근처의 산에 오대조의 위패를 묻음)하고 새로이 아버지의 위패를 사당에 모시는 제사의 한 종류이다.
이곳 학봉종택은 안동 유림을 이해하는 데 있어 중요한 병호시비의 진원지이기도 하다.
병호시비(屛虎是非)란 무엇인가?
병(屛)은 병산서원(屛山書院)이고 호(虎)는 호계서원(虎溪書院)을 지칭하는 말이다. 병산서원과 호계서원의 싸움이란 뜻이다. 병산서원은 서애 유성룡선생을 지칭하고 호계서원은 학봉 김성일선생을 지칭하는 말이다. 이 두 분은 살아 생전에는 퇴계선생에게 함께 동문수학한 수제자들로서 매우 사이가 좋았다. 서애의 장손인 류원지의 처는 학봉의 증손녀이자 퇴계의 둘째 손자인 이순도의 외손녀이다. 즉 퇴계 학봉 서애가문이 혈연관계로 맺어진 것이다. 이러한 관계가 훗날 병호시비에 휘말린 것이다. 이것을 다루기에는 분량이 많아서 따로 장을 내어서 병호시비와 퇴계정맥에 대하여 글을 쓰고자 한다.
학봉종택을 나와 봉정사로 향했다. 봉정사에 오면 늘 마음이 푸근하다. 봉정사를 오르는 길은 항상 운치가 있고 호젓하다. 봉정사의 국보와 보물을 천천히 둘러보고 마지막으로 영산전으로 안내를 하니 영화나 연속극에서 많이 본 건물이라고 한다. 같이 간 분들 중에는 독실한 불자가 몇 분이 있어 절을 하느라 시간이 많이 지체되었다.
봉정사 우화루
다시 제비원석불은 시간 관계상 차 안에서 감상을 하고 바로 임청각으로 향했다. 임청각 입구에 신세동 칠층전탑이 있다. 이곳은 현재 행정상의 지명은 법흥동이다. 법흥동 칠층전탑이라고 불러야 정확한 명칭인데 옆 동네인 신세동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따라서 이 이름 때문에 말도 많고 탈도 많다. 사실은 이 탑의 이름이 붙여질 그 당시에는 신세동이었다고 한다. 한번 이름이 붙여진 후에는 다시 바꾸기는 쉽지가 않은 모양이다. 이어 임청각을 향했다.
대부분 안동은 여러 번이나 왔지만 이곳은 처음이라고 한다. 일제가 이곳의 혈을 끊기 위해서 중앙선을 이쪽으로 내었다고 설명을 했다. 오늘 이 역사의 현장을 보고는 비분강개(悲憤慷慨)하는 모습이 역력한 것으로 보아 연수의 효과가 클 것으로 기대된다. 이분들이 아마 내년이면 거의 다 교장선생님으로 발령을 받을 것이다. 관리자의 역사의식이 학교전체의 역사의식을 바꿀 수도 있다는 점에서 임청각은 역사교육의 현장이며 살아있는 역사의 산 교육장인 셈이다. 중앙선을 다른 곳으로 옮겨 틈이 갈라진 전탑도 복원하고 임청각도 다시 99칸 집으로 복원하여야 한다고 주장을 한다. 이러한 여론이 계속 일어나면 언젠가는 복원이 될 것이다.
우리 중앙중학교는 7월 18일날 직원연수를 이곳 임청각에서 한다고 하자 모두들 부러워 하였다.
전탑과 임청각을 뒤로하고 저녁으로 안동댐 근처에 있는 50년 전통의 헛제사밥을 먹었다. 안동을 대표하는 먹거리가 바로 헛제사밥과 안동 간고등어다. 이집은 이 두 가지가 다 나왔다. 비교적 맛있게 잘 먹었다고 인사를 한다. 식사 후 가볍게 산책을 했다. 이곳 조정댐 근처에는 공원을 아름답게 조성해 놓았다. 무척이나 풍광이 좋다. 같이 간 이들이 모두 연수가 좋았다고 고마워 한다. 다음 주에도 잘 부탁을 한다는 인사말을 들으니 연수 가이드로서의 보람도 느꼈다.
유익종 - 들꽃
나 그대만을 위해서 피어난
저 바위틈에 한송이 들꽃이여
돌틈사이 이름도 없는 들꽃처럼 핀다 해도
내 진정 그대를 위해서 살아 가리라
언제나 잔잔한 호수처럼
그대는 내 가슴에 항상 머물고
그 많은 꽃중에 들꽃이 되어도 행복하리...
돌틈사이 이름도 없는 들꽃처럼 산다 해도
내 진정 그대를 위해서 살아 가리라
오색이 영롱한 무지개여
그대는 내 가슴에 항상 머물고
수 많은 꽃중에 들꽃이 되어도 행복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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