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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리학

주역의 이해 4 – 주역점

by 황교장 2026. 2. 11.

주역의 이해 4 – 주역점

 

1972년부터 2년 동안 중국 후난(湖南)성 창사(長沙)시의 마왕퇴(馬王堆)에서 2,100여 년 전에 조성된 3기의 고분이 발굴되었다.

마왕퇴 제3호 고분에서 옻칠한 상자 속에서 약 12만 자가 기록된 30개 종류의 백서(帛書)가 발견되었다. 이 백서는 기록된 시기가 모두 달랐고 글씨체도 달랐지만, 주역과 관련된 2만여 자는 한 사람의 필체였다. 마왕퇴에서 발굴된 주역을 백서주역(帛書周易)이라고 한다.

이 백서주역에는 지금의 주역에는 없는 내용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 그중 주역점을 즐겨 치는 공자와 이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제자인 자공의 모습이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성인으로 추앙받는 공자도 말년에는 삶의 실패가 두려워 길흉을 점치는 나약한 인간임을 보여준다.

 

주역점에 대한 또 다른 이야기는 북송(960~1127)의 제3대 황제인 진종(眞宗, 968~1022, 재위 997~1022년)과 제4대 황제인 인종(仁宗, 1010~1063, 재위 1022~1063) 시대까지 차례로 재상(宰相)을 지낸 장사손(張士遜), 구준(寇準), 장제현(張齊賢), 왕수(王隨)라는 인물들의 젊은 시절의 일화이다.

수도인 카이펑(開封)에 있는 상국사(相國寺)로 놀러 간 그들은 우연히 같은 역자의 집에서 차례로 장래를 점치게 되었다.

 

먼저 장사손과 구준이 함께 점을 쳤다. ‘당신 두 사람 모두 나중에 재상이 됩니다.’라는 말을 역자에게 들었다. 밖으로 나온 두 사람은 마침 장제현을 만나 점괘를 예기해 주었다. 그 말을 듣고는 장재현도 그 집으로 가서 점을 쳤다. 역자는 ‘당신도 재상이 된다’라고 했다. 나오는 길에 왕수를 만났다. 왕수도 그 역자에게 점을 쳐 보니 ‘당신도 재상이 될 거라’고 했다.

하루 동안에 재상을 네 명이나 만들어 낸 역자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점괘에 역자 자신이 실망하여 자신감을 잃었다. 세간의 평판도 나빠져 전혀 손님이 안 오자, 마침내 그는 굶어 죽었다. 그러나 점의 예언대로 이들은 그 후 차례로 재상이 되었다. 이들 네 사람은 그 역자를 동정하여 전기를 써서 남겼다고 한다.

주역점에 관한 일화는 이 외에도 수없이 많다.

그러면 주역점은 어떤 것인가를 주자에게 한번 들어보자.

“대저 ‘역’이라는 것은 단지 복서 책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蓋易只是箇卜筮書(개역지시개복서서). 그것은 궁정의 사관이나 점을 치는 예관들이 비밀리에 소장하면서 나라의 대사의 길흉을 점치는 데 사용하였던 것이기 때문에 그 문자가 지극히 간락하여 보통 사람들은 이해하기 어렵다.”

이는 주자어류(朱子語類)에 나오는 말로 역은 ‘점(占)서’라는 의미다.

 

고대 중국은 매년 황하가 범람하여 홍수가 일어났다. 중국인들은 이러한 자연재해와 질병, 전쟁 등 삶에서 마주치는 모든 문제는 ‘상제(上帝)’라 불리는 인격을 가진 신이 지배한다고 생각하였다. 따라서 상제의 뜻을 알지 않으면 안 되었다.

상제의 뜻을 아는 방법이 바로 점이다. 점을 쳐서 상제의 뜻을 인간에게 알려주는 것인, 거북의 껍질이니 짐승의 뼈에 새긴 점사를 복사(卜辭), 즉 갑골복사(甲骨卜辭)인 갑골문이다.

그러나 인간의 지혜가 점점 발달하게 되자 자연의 변화에는 일정한 질서가 있음을 깨닫게 된다. 그 대표적인 것이 바로 사계절의 변화다. 자연계가 일정한 질서에 따라 변화한다는 자각은 농경 사회에서 획기적인 사건이다. 이들은 자연에서 알아낸 질서를 수로 나타낼 수 있었다. 바로 달력이다. 달력에 표시된 입춘을 시작으로 우수, 경칩, 춘분으로 이어지는 24절기는 자연의 변화 과정을 예측하여 농사의 파종이나 수확 시기 등 그 절기에 해야 할 농경을 알 수 있었다.

이는 자연의 질서를 파악함으로써 미래에 발생할 사태를 예측하고 그에 가장 합당한 행동 양식을 규정하는 일이 가능하게 된 것이다.

이에 따라 역(易)도 미래에 대한 예측은 자연의 질서를 알아내는 방향으로 전개된다. 자연에 대한 합리적 인식에 발맞추어 괘사와 효사에 대한 해석도 보다 합리적이고 윤리적인 측면에서 이루어짐으로써, ‘주역’은 단순한 ‘점서’가 아니라 ‘철학서’이며 ‘도덕적인 수양서’로 발전하게 된 것이다.

따라서 역도 점으로서의 역과 철학으로서의 역으로 나뉜다. 전자를 占易(점역)이라 하고, 후자를 학역(學易)이라 한다.

주자는 역의 본질에 관하여 점역의 우위를 인정하면서도 학역의 가치를 낮게 보지 않았다. 학역의 뒷받침 없이는 점역이 불가능하고, 점역의 뒷받침 없이 학역이 불가능 한 것이다. 학역이 곧 점역이요, 점역이 곧 학역인 셈이다.

비슷한 성격으로 주역은 상수역(象數易)과 의리역(義理易)으로 나눈다.

상수역은 역의 이치를 모두 상과 수에 의하여 풀어내는 것을 말하고, 의리역은 상수의 계산을 뛰어넘어 그 궁극적 의미를 언어로 표현하는 철학적인 해석이다.

상수역은 한(漢)나라에서 성행했기 때문에 한역(漢易)이라고도 하고, 의리역은 송(宋)나라에서 크게 발전했기 때문에 송역(宋易)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역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상수와 의리도 궁극적으로 함께 가는 것이다. 상수의 원리가 없으면 도상의 관련성에 대한 체계를 잡기 어렵고, 의리가 없으면 상수는 공허해지고 만다는 것이 일반적인 중론이다.

결론적으로 주역점은 점역, 상수역, 한역으로 불리는 주역의 몸체인 셈이다.

 

주역점에 관한 도올 선생의 식견이 가슴에 와 닿아 그대로 옮기고자 한다.

‘도올주역강해’에서

“점이란 본시 자기 스스로 칠 수 있을 때만이 가장 참다운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근원적으로 인간의 운명이나 운세라는 것은 나 존재의 실존의 문제이지, 점으로 해결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점을 치게 되는 것은, 나의 지력이나 노력으로 선택의 기로가 열리지 않는 극한 상황에서 하느님의 소리는 오직 ‘나’만이 들을 수 있다. 점을 대행하는 자가 있을 수 있으나, 대행자는 나와 더불어 하느님의 소리를 같이 들을 수 있는 인격과 인품을 지녀야만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