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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리학

사주의 역사 1-삼황에서 당나라까지

by 황교장 2007. 10. 20.
 

사주의 역사 1-삼황에서 당나라까지

 

 

사주의 역사는 인류의 역사와 같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인간은 미래가 불확실한 존재다. 언제 어떻게 살다가 죽는가에 대한 의문과 살아가는 동안 길흉화복(吉凶禍福)에 대한 궁금증은 원시사회에서도 지금과 마찬가지로 존재했을 것이다.


사주의 근원은 동양역사와 같은 뿌리를 갖고 있다. 중국의 고대 신화 상의 제왕들인 삼황오제 시대부터 명리학은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럼 먼저 삼황 오제부터 알아보자.

삼황오제에 관한 설은 여러 가지의 전설이 있으나, 우리가 일반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다음과 같다.


1, 삼황(三皇)

사마천은 사기(史記)에서 천황(天皇), 지황(地皇), 인황(人皇)으로 나누었지만 황보밀이 찬한 제왕세기(帝王世紀)에서는 복희(伏羲), 신농(神農), 황제(黃帝)를 삼황이라고 했다.

하지만 여기에서는 삼황을 태호 복희씨, 염제 신농씨,황제 헌원씨로 보고자 한다.


가. 복희씨는 동양철학의 근본인 팔괘를 창조하고, 동쪽을 다스리는 신이다. 봄을 주관하는 신인 구망의 보조를 받고 있다.

나, 염제 신농씨는 농업의 창조하고 남쪽을 다스리는 신이다. 여름을 주관하는 신인 축융의 보좌를 받고 있다.

다, 황제 헌원씨는 중앙을 다스리는 신이다. 토지를 주관하는 신인 후토의 보좌를 받고 있다.


2. 오제(五帝)

  오제는 여러 문헌에서 조금씩 다르게 표현하고 있는데 대체로 소호(少昊) 금천씨, 전욱(顓頊), 제곡(帝嚳), 요(堯)임금, 순(舜)임금으로 전해진다.


가. 소호 금천씨는 황제의 아들로서 서쪽을 다스리는 신이다. 가을을 주관하는 신인 욕수를 거느리고 있다.

나. 전욱은 황제의 손자이고 금천씨의 아들이다. 북쪽을 다스리는 신이다. 겨울을 주관하는 현명을 거느리고 있다. 여기에서 오행이 나왔다. 동쪽을 다스리는 복희씨, 남쪽을 다스리는 신농씨, 중앙을 다스리는 황제, 서쪽을 다스리는 금천씨, 북쪽을 다스리는 전욱이다.

     또한 사계절도 같이 포함시키고 있다. 동쪽은 봄, 남쪽은 여름, 서쪽은 가을, 북쪽은 겨울을 나타낸다. 동서남북 가운데 있는 것이 중앙이다. 오행사상은 중앙을 가장 중시하고 있다. 황제는 중국 역사상 최고의 신이다. 황제가 등장하기 이전에는 최고의 신은 염제 신농씨였다. 그러나 황제에게 패하여 남방으로 쫓겨나 남방을 다스리는 신으로 전락하는 수모를 겪었다. 

     이 당시에 최대 반란 세력인 전쟁의 신 치우(蚩尤)와의 결전에서 승리하여 황제는 천상과 지상에 대한 확실한 지배권을 확보했다. 따라서 동서남북의 중앙에서 천하 사방을 다스린 것이다. 여기에서 중국 한(漢)족들의 천하관(天下觀)이 잘 나타내고 있다. 가운데에 있는 자신들은 가운데에서 화려하게 빛난다는 의미인 중화(中華)라고 하고, 동서남북 변방에 있는 민족은 오랑캐라고 생각하는 그들의 선민의식(選民意識)을 엿볼 수 있다. 그들은 황제가 문자, 의복, 집, 수레, 악기 등 인간이 살 수 있는 기본적인 문명과 문화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또한 한자와 12간지도 황제가 만들었다고 한다. 우리가 단군임금을 배달민족의 시조라고 생각하듯이, 중국 한족들의 시조는 황제라고 생각한다. 중화민국(中華民國)도 중앙에서 화려하게 빛나는 나라라는 의미다. 오행 중에 가운데에 중국 한족의 시조인 황제를 배당한 것이다. 앞글의 지장간에서도 다른 오행들은 360 중에서 각각 65를 배당하는데 오직 토만이 오(午)화의 지장간에 기(己)토 9를 포함하면 109가 된다. 오행이론에서 왜 토가 중요한지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다.


그럼 나머지 삼제들을 알아보자


다. 제곡은 황제의 증손자이고 전욱의 아들이다.

라. 요임금은 황제의 고손자이고 제곡의 아들이다. 요임금까지는 황제의 자손들이다. 이처럼 황제를 중시하고 있다.

마. 오제의 마지막 분은 순임금이다. 요임금은 아들 단주가 있었으나 임금감이 되지 못함을 알고 순임금에게 나라를 물러 주고 두 딸인 아황과 여영을 순임금의 아내로 주었다.


3. 하(夏)나라

순임금도 아들인 상균에게 나라를 물러준 게 아니라 신하 가운데 가장 어질고 현명한 우(禹)임금에게 나라를 물러 주었다. 이 우(禹)임금이 바로 중국 최초의 고대왕조인 하(夏)나라의 시조(始祖)가 된다.

하나라는 17대 걸왕(桀王) 때 은나라를 세운 탕(湯)왕에게 멸망된다. 고사성어에 나오는 주지육림(酒池肉林)이 바로 이때의 이야기다. 걸왕은 사치와 향략에 빠져 정사를 게을리 하고 주지육림(酒池肉林)의 놀이를 즐기는 등 악행을 일삼았다고 한다.


4. 은(殷)나라

 탕왕은 주지육림의 걸왕을 물리치고 새로이 은(殷, BC 1751-BC1111, 초기 국명은 商)나라를 세웠다. 이는 중국 역사상 최초의 역성혁명(易姓革命)이다. 역성혁명의 명분은 천명(天命)과 민심(民心)이다. 즉 하늘의 뜻과 백성의 마음을 좆아 폭군 걸왕을 주살했다고 정당화한 것이다. 탕왕이 세운 은(殷)나라 때에 갑골문자가 만들어 졌다. 또한 1년을 12달로 나누고 60갑자를 사용했다.

은나라는 제 30대 임금인 주(紂)왕때 주(周)나라 무왕에게 멸망된다. 주(紂)왕은 바른말을 하는 숙부인 비간의 심장을 꺼내는 등 만행을 일삼은 폭군의 대명사이다.


5, 주(周)나라

은(殷)나라를 멸하고 주(周,BC1111- BC221)나라를 세운 것이 중국 왕조 역사상 두 번째의 역성혁명이다.

주나라의 초대왕인 무왕의 아버지인 문왕(文王)이 후천팔괘(後天八卦)를 만들었다는 설이 지금까지는 가장 유력한 설이다. 즉 선천팔괘(先天八卦)는 복희씨가 만들고 후천팔괘는 문왕의 작품이다.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주역은 무왕의 아들인 주공이 384효(爻)에 사(辭)를 붙여서 완성하였다고 한다.

이 주나라도 초기 성왕과 강왕 때는 태평성대인 성강지치(成康之治)를 이루다가, 10대 여왕(厲王)이 즉위하면서 포악한 정치를 하여 반란이 일어난다. 이에 여왕은 난리를 피해 체(彘)라는 지방으로 도망을 가게 된다. 천자가 사라져 버리자 분란과 혼란 끝에 제후들 중 소공(召公)과 주공(周公)이 천자를 대신하여 나라를 다스리게 된다. 이것이 중국사에 나타나는 최초의 공화정인 셈이다. 마침내 여왕이 죽고 여왕의 아들 11대 선왕이 즉위하지만 이미 왕권을 회복하기는 너무 늦었다. 점점 국력이 약해지면서 주변의 유목민들에게 침입을 받게 된다. 하는 수 없이 수도를 동쪽인 낙읍으로 옮기게 된다. 이때부터 동경과 서경이 생긴 것이다.


여기에서 동경과 서경을 한번 짚고 넘어가자.

서경은 처음부터 주나라의 수도가 있던 곳인 호경(鎬京)이다. 장안(長安)이라고도 불린 지금의 서안(西安)이다. 이곳 서안은 주(周), 한(漢), 위진남북조 시대의 후진(後秦), 서위(西魏), 후주(後周), 수(隋), 당(唐)의 수도이기도 하다.

동경은 유목민인 견융족에게 호경이 함락됨으로 동쪽으로 옮긴 곳이다. 동경은 낙읍 또는 낙양으로 불린다. 동경은 동주시대, 후한, 위진남북조 시대의 위, 진, 후조, 후위 등의 수도다.


6. 춘추전국시대

기원 전 770년, 주(周)나라 13대 천자인 평왕(平王)이 유목민인 견융족에 의해 쫓겨나 낙읍(洛邑)으로 천도하면서 동주(東周) 시대가 시작되었다.

동주는 춘추(春秋)와 전국(戰國) 두 시기로 나뉜다. 동주의 전기를 춘추시대라 칭하고, 후기는 전국시대라 칭한다. 춘추시대(春秋時代, BC770-BC403)라는 명칭은 공자(孔子)의 저서 춘추(春秋)에서 유래했다. 전국시대(戰國時代, BC403-BC221)의 명칭은 劉向(유향)의 전국책이라는 저서에서 유래되었다.

춘추시대에는 초기에 1백여 국이나 되던 제후의 수가 마침내는 10여 개국으로 압축되었다. 이 가운데 패권을 잡은 제후를 춘추오패(春秋五覇)라 하는데 이 오패는 제의 환공(齊. 桓公), 진의 문공(晋, 文公), 초의 장왕(楚, 莊王), 오왕 합려, 월왕 구천이라는 설과 오왕 합려, 월왕 구천 대신 송의 양공(宋, 襄公)과 진의 목공(秦, 穆公)이라는 설이 있다.

전국시대(戰國時代)는 춘추시대 제후국 중에서 가장 넓은 영토와 강한 국력을 가진 진(晉)나라 최대가문인 지씨가문의 수장인 지백이 살해되어 이때 반란을 일으킨 진(晋)나라의 대부 조(趙), 위(魏), 한(韓)의 세 가문이 주(周)나라 왕실로부터 정식 제후로 공인받으면서 시작된다. 반란을 일으킨 대부들을 주 왕실에서 제후로 공인함으로써 봉건제도의 명분과 의리가 사라졌다. 이때부터  약육강식(弱肉强食)의 시대가 된 것이 전국시대다.

전국시대에는 전국칠웅이 있다. 진(晋)이 분리되면서 생긴 한(韓), 위(魏), 조(趙)의 세 나라와 진(秦), 초(楚), 연(燕), 제(齊)의 7국이다.


이처럼 춘추전국시대에는 이들 나라들의 군주들은 패권을 차지하기 위해 경쟁은 벌였다. 이러한 역사적인 배경이 사상의 발달을 촉진시켰다, 그 결과 중국 사상사에서 가장 빛나는 시대를 열었다. 일반적으로 춘추전국 시대를 사상의 황금시대인 '제자백가' 시대로 부른다. 이때 형성된 사상들은 공자를 중심으로 한 유가사상과 묵자를 중심으로 한 묵가사상, 노자 장자를 중심으로 한 노장사상, 한비자와 이사를 중심으로 한 법가사상 등 이다.

위의 사상들과 더불어 제나라의 학자 추연은 오행설을 주창하며 제왕의 운명과 인간의 길흉화복을 설명하였다.

전국시대에는 천문학도 발달되어 황도 부근 120개의 항성의 위치와 북극의 각도 등이 정밀하게 기록되어 있다. 태양력인 절기력이 이때에 완성된 것으로 본다.

또한 지금도 활용되고 있는 한의학의 고전인 황제내경(黃帝內徑)이 전국시대 초기에 쓰였다. 한의학은 음양오행을 바탕으로 발전된 학문이므로 이 당시에 음양오행 이론이 상당한 수준으로 발전되었다고 볼 수 있다.


결국 전국시대도 BC 221년에 진(秦)의 시황제(始皇帝)가 중국 최초의 통일 국가를 이루게 됨으로써 막을 내리게 된다.

전국시대가 진(秦, BC 221-BC 207)나라로 통일된 후 다시 한(漢, BC 206-220)→ 삼국시대(三國時代, 220-265, 위, 촉한, 오) → 진(晋, 265-420) → 5호16국(五胡十六國, 304-439) → 남북조(南北朝, 439-589) → 수(隋, 581-618) → 당(唐, 618-907)으로 이어지면서 사주이론은 조금씩 발전되었다.

현재까지 전해지고 있는 당사주(唐四柱)는 바로 당(唐)나라 때 만들어진 사주라서 당사주라고 한다. 이 당사주는 지금도 공원이나 유원지에서 할아버지들이 그림이 들어 있는 당사주를 봐 주고 있다.

따라서 다음 글에서는 당사주 보는 법을 설명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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