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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

드디어 소원풀이한 여서도

by 황교장 2025. 8. 13.

드디어 소원풀이한 여서도

 

백두산을 다녀온 여독이 조금 풀리자 역마살이 다시 살아났다. 이번에는 섬 여행 여서도이다. 여서도를 처음 알게 된 것은 1995년에 웅진출판에서 펴낸 최성민의 자연주의 여행-우리땅 우리삶1 ‘섬 오메 환장허겄네’를 읽고나서다.

여서도를 ‘그 섬에 가면 애 배 나온다, 여서도’라는 자극적인 문구로 소개하여 호기심을 자아내었다. 그동안 무려 다섯 번이나 계획했지만 인연이 닿지 않아 가보지 못한 섬이었다.

완도항에서 여서도로 가는 배는 오후 3시에 출발한다. 일찍 도착하여 시간이 조금 남아 지난번 겨울에 친구들과 함께 간 정도리 구계등을 보러 갔다.

구계등은 완도항에서 서쪽으로 4㎞쯤 떨어진 완도읍 정도리에 있는 길이 800m, 폭 200m의 갯돌해변이다. 이 갯돌을 주민들은 ‘용돌’ 또는 ‘청환석’이라 부른다. 구계등의 뜻은 9개의 계단을 이룬 비탈이라는 의미이다. 구계등은 1972년 7월 26일 ‘국가유산기본법’에 의해 명승으로 지정된 곳이다. 명승 1호는 ‘명주 청학동 소금강’, 명승 2호가 ‘거제 해금강’이고 이곳 ‘완도 정도리 구계등’이 3호다.

황근

구계등 명승지 입구에는 쉽게 보기 힘든 노랑무궁화인 황근(黃槿)이 피어있다. 더운 여름이라 사람들이 거의 없고 파도에 돌 구르는 소리만 청량감을 더한다.

정도리 구계등 갯돌들은 몇만 년 동안 파도에 씻기고 깎여 아주 매끄럽고 모난 데 없이 동글동글하다.

이 돌을 보는 순간 선생 첫 발령지 학교의 교감선생님이 나를 불러 “모난 데 없는 갯돌이 되어야만 앞으로의 학교생활에 적응을 잘할 수 있다”고 한 말씀이 기억났다. 당시 내가 모난 돌인 셈이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니 맞는 말이기도 하지만 타고난 천성은 어쩔 수 없다. 타고난 천성대로 살아야만 삶이 행복할 수가 있다.

해변의 뒤쪽에는 덱 길이 잘 나 있다. 해송을 비롯하여 감탕나무, 가시나무 등 섬 특유의 상록수와 태산목, 단풍나무 등이 해안선을 따라 안정감 있게 펼쳐져 있다. 이곳의 자랑인 생달나무는 여기서 처음 본 나무다. 명승으로 지정되고도 50년이 넘어 나무 관리가 아주 잘되어 있다. 34도 가까운 날씨에도 울창한 숲이 그늘을 만들고 산들바람이 불어와 더위를 느낄 수 없을 정도로 시원하다.

숲속 덱 길을 한 바퀴 돌고는 구계등 횟집에서 점심으로 전복 미역국을 먹었다. 후박나무 그늘 아래 놓은 평상에서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면서 맛있게 잘 먹었다.

아무도 없는 구계등 해안에 부는 바람을 만끽하고는 완도항으로 되돌아와 여서도로 가는 섬사랑 7호를 탔다.

여서도까지 가는 승객들은 별로 없고 더운 날씨라 밖의 자리에 앉은 사람이 거의 없어 이곳 또한 전세낸 듯 차지했다. 날은 덥지만 가시거리는 좋고 물빛이 에머랄드빛이다. 바람을 맞으면서 하염없이 초록 물빛만 바라보았다. 나의 사주에는 물과 나무가 부족하다. 그래서 그런지 싱싱한 푸른 나무들과 맑은 물만 보면 자연스럽게 입이 벌어져 마냥 기분이 좋다.

섬사랑 7호는 완도에서 출발하여 중간에 장도에 닿았다. 장도에 주민 한 분이 내렸다. 장도는 섬이 일자형으로 길다고 장도(長島)다. 이곳에서는 속칭 ‘진섬’으로 부른다. 장도는 청산면에 딸린 섬으로, 면적 1.1km², 해안선 길이 5km, 해발 최고점은 48m로 10여가구 30여 명이 옹기종기 살고 있다. 손님이 있을 때만 여객선이 들른다.

장도

이곳 주민들은 청산도 지리와 장도 사이에서 전복 양식을 한다. 장도는 멸치어장의 최적지로도 알려져 있다. 멸치어장이 호황일 때는 이 작은 섬에 먹는 물이 부족할 정도로 많은 배들이 북적인다. 주변에는 삼치와 농어, 도미 등 고급 어종을 많이 잡힌다. 하지만 겨울 북서풍이 불면 산의 높이가 낮아 바람을 피할 수 없는 단점도 있다고 한다.

장도를 나와 조금만 가면 청산도다. 청산도와는 약 200m 정도 떨어져 있다. 헤엄쳐서 갈 수 있는 거리다. 섬사랑 7호는 청산도에 들러 손님을 태우고는 여서도로 향했다. 여서도는 청산도에서 남동쪽으로 약 25km 떨어져 있다. 청산도 앞바다까지는 배가 흔들림 없이 잘 왔지만 이젠 배가 울렁이기 시작한다. 속이 조금 불편할 정도다. 바다 색깔도 초록색에서 짙푸른 색으로 변했다. 바람과 파도를 막아주는 작은 섬들이 주변에 없어서다. 그동안 다섯 번이나 실패한 주된 원인을 알았다.

거문도

가까이 여서도가 보이고 멀리 거문도가 제법 뚜렷하게 보인다. 거문도 옆에 희미하게 있는 섬은 초도일 것이다. 초도는 이십여 년 전 여수에서 거문도를 갈 때 중간 경유지였지만 들르지 못한 섬으로 남아 있다. 날이 맑아 여서도 전체가 한눈에 다 들어왔다.

여서도

여서도에 내리는 승객이 불과 일곱 명밖에 안 될 정도로 여서도는 관광지와는 거리가 먼 섬이다. 덕분에 자연 풍광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여서도는 전라남도 완도군 청산면에 속한 섬으로 면적 2.1km², 해안선 길이 10km이다. 인구는 44가구 71명(2016년)이다. ‘여서도(麗瑞島)’라는 이름은 1945년 이후에 붙었다. 한때는 ‘태랑도(太郞島)’라 불렀다고 한다.

여서도

『완도군지』에 따르면 고려 때인 1077년(목종, 10) 탐라 근해에 일주일간 대지진이 지속된 뒤 바닷속에서 큰 산이 솟았다고 한다. 2005년 목포대학교에서 여서도 패총 학술조사를 한 결과 신석기시대 전기에 속하는 유적으로 토기와 석기, 골각기가 436점이나 출토됐다.

여서도 폐총

이곳의 유적도 대표적인 해안 유적지인 함경북도 웅기 굴포리, 강원도 양양 오산리, 부산 영도 동삼동, 제주도 고산리, 통영 욕지도, 연대도 유적과 그 궤를 같이한다. 배에서 내려 예약한 숙소에 짐을 놓고는 바로 마을 산책을 나섰다.

마을길을 따라 올라가다보니 내 눈을 압도하는 것이 있다. 바로 돌담이다. 지금까지 이렇게 기술적으로 쌓은 돌담을 본 적이 없다.

섬마을은 바람이 세서 담을 대부분 높게 쌓지만 이곳은 유난히도 담이 높다. 담벼락에 붙어 있는 식물이 있어 자세히 보니 다육이다. 다육이가 이렇게까지 크게 자란다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다육이

온 마을이 돌담길로 연결이 되어 있다. 지금까지 본 돌담 중 만재도와 가거도가 인상적이었는데 여서도의 돌담은 몇 수 위인 것 같다. 이곳이 그만큼 바람이 세다는 의미일 것이다.

바람이 셀 수밖에 없는 것은 섬의 풍수와 관련이 있다. 여서도 집들은 섬의 서쪽에 분포되어 있다. 지형적으로 서쪽이 비교적 평지다. 집을 이곳에 지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북풍을 막아주는 언덕이 없는 셈이다.

섬의 반대편으로 걸어가니 마침 해넘이가 시작된다. 섬마을의 노을이 화려하다.

숙소에 들어와서 저녁식사를 하면서 이곳 주인아주머니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여서도에 온 사연을 말했다. 내가 읽은 책에 ‘여서도에 가면 애 배 나온다’는 내용이 나와 실제로 그런 일이 있었는지를 묻자 그런 일들이 있었다고 한다.

여서도는 완도와 추자도의 중간쯤에 있다.

그래서 예로부터 제주도의 해녀들이 해산물이 풍부한 여서도에 물질을 하러 많이 왔다. 여서도에 왔던 제주 해녀들이 풍랑으로 뱃길이 막히면 보름이건 한 달이건 여서도에 갇힌다. 그러면 먹고살기 위해 하는 수 없이 여서도 남자와 한 이불을 덮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그래서 제주 사람들 사이에선 '여서도에 가면 애 배야 나온다'는 말이 전해진 것이다. 식당 주인아주머니도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그런 이야기들을 많이 듣고 자랐다고 한다.

그녀는 여서도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커서는 소안도로 시집을 갔다. 결혼 후 남편을 따라 목포에서 식당일을 하다가 몇 년 전에 고향으로 돌아와서 민박집과 식당을 한다. 고향에 돌아오니 그동안 앓아왔던 불면증이 사라졌다고 한다. 몸도 건강해지고 마음도 편안해져 사람 사는 맛을 느낀다고 했다. 자신이 태어난 땅과 기후에 적응하고 살아왔던 곳이 소중한 것이다. 나의 경우 낙동강 선상지의 평야 마을에 태어나고 자라서인지 비탈진 곳을 싫어한다. 수구초심이라는 말도 그래서 생긴 것이리라.

주인아주머니의 음식솜씨가 좋고, 손님이 우리밖에 없어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다. 나에게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를 묻기에 풍수를 보는 사람이라고 했다. 그러자 남편이 집 뒤에 원룸을 지으려 한다면서 풍수를 한번 봐 달라고 한다. 내일 밝은 시간에 봐주기로 하고는 숙소로 돌아갔다.

 

피곤한 몸이어서 쉽게 잠이 들어 다음날 일찍 일어나 여호산(352m) 등산에 나섰다. 어제 왔던 돌담길을 따라 올라가자 오래된 동백나무 군락지가 나온다. 여서도의 동백꽃은 꽃송이가 크기로 유명하다. 여서도의 특산물 중 하나가 동백기름이다.

동백군락을 지나 조금 힘들게 오르면 전망대가 나온다. 날이 맑아 청산도와 소안도, 노화도, 보길도가 다 보인다.

전망대 옆에는 등대가 있다. 등대 그늘에 누워 한적하고 고요함을 즐기고 있는데 서서히 물안개가 여호산 정상을 덮기 시작한다. 내친김에 정상까지 다녀오려고 하다가 해무 속에 들어가면 초행에 길을 잃어버릴 가능성이 많아 아침식사 후에 날씨가 좋아지면 다시 올라가려고 내려왔다. 길가에는 원추리와 참나리가 정감을 더해준다.

내려오는 길에 폐교가 된 여서초등학교에 들렀다. '처녀가 시집갈 때까지 쌀 서말을 못 먹는 곳'이 청산도라면, 여서도는 '평생을 살아도 쌀 한 가마니를 못 먹는다'는 말이 전해질 정도로 먹을거리가 궁했던 곳이다. 그런데도 교육열은 높아서 섬에서 가장 넓은 명당자리에 학교를 세웠다. 여서도는 1950년대 최대 240여 가구에 1,200명이나 살던 마을이었다. 1973년도만 해도 151가구 894명의 주민과, 초등학교의 학생수가 205명이나 됐다.

 

잡풀로 우거진 운동장 가에는 참나리가 반겨주는 듯 활짝 피어 있다. 교실 건물은 천장 일부가 무너져 내려 있다. 그러나 타고난 호기심은 어쩔 수가 없어 교실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교실

아직 교실에는 교훈과 급훈이 그대로 남아 있다. 교훈은 ‘꿈과 슬기를 지닌 들섬 어린이’, 급훈은 ‘참되고 바른 어린이’다. 흑판에 그 시절을 회상하는 추억의 낙서들이 가득히 메우고 있다.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언젠가는 모두가 사라지고 없어질 것이다.

우물

쓸쓸한 마음을 안고 폐교를 나와 마을 한 가운데로 나오자 지금도 식수로 사용하는 맑은 우물이 나왔다. 물을 한 모금 마시보니 물맛이 차고 시원하다. 비록 섬이지만 뒤에 높은 산이 있어 수원이 풍부한 것이다. 마을 한 바퀴를 돌고나니 어느 새 숙소 앞이다.

마을 방송이 흘러나온다. 어제 타고 온 섬 나들이 7호가 오늘은 결항이라고 한다. 오후에 배가 들어와야 그 배로 다음 날 아침 10시에 나가는데 나갈 배가 없어지는 셈이다. 언제 또 뱃길이 열릴지는 기약을 할 수가 없다. 오늘 10시 배로 갈 수밖에 없다. 식사를 하기 전에 어제 부탁받은 풍수를 보았다. 주인아저씨가 원룸을 만들고자 하는 터가 집 뒤 작은 공터다.

풍수는 아주 좋게 보인다. 이곳은 정남향이다. 좌청룡, 남주작, 북현무는 잘 나오는데 우백호가 약하다. 다행인 것은 우백호 자리에 마을회관을 새로 지어 바람은 피할 수가 있고, 겨울에는 햇빛이 정면으로 들어오는 곳이다.

주인아주머니에게 마을회관이 들어서고는 겨울에 집이 많이 따뜻해졌는지를 물었다. 바람이 거의 안 들어온다고 했다. 회관이 들어서서 경관은 막혔지만 풍수상으로는 오히려 좋아져 돈이 들어온다고 하니 회관이 들어서고 난 후에 장사가 더 잘되었다고 한다. 그동안 자기들이 힘이 없어 회관 들어서는 것을 막지 못해 지금도 분한 마음이 남았는데 마음이 깔끔하게 정리되었다고 했다.

이 집 남자주인은 이론적인 풍수는 몰라도 이곳에 살면서 좋은 땅은 느낌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이곳은 섬의 특성상 땅이 여유가 없고 경사가 심하다. 집을 지으면 좋은데 문제는 가파른 계단을 설치해야만 이곳에 오를 수가 있다. 반드시 계단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전문가에게 설계를 의뢰하라고 몇 번이나 강조해 주었다. 주인아주머니는 고맙다고 맛 좋은 생선구이를 내어놓았다.

 

여서도에서도 복채를 받은 셈이다. 주인아주머니는 3월 말이면 그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꽃송이가 큰 동백이 핀다면서 꼭 다시 와서 사주도 한번 봐 달라고 한다.

아주머니와 작별 인사를 하고는 청산도로 가는 배를 기다리다 시간이 남아 물에 들어갔다.

여서도는 30~40m 깊이의 바닷속도 훤히 보일 만큼 물이 맑다. 그래서 “여서도에 시집온 새색시가 앞섶이 풀어져 옷고름이 바닷물에 빠져 황급히 들어 보았더니 옥색으로 물들어 있더라”라는 이야기가 전해질 정도로 옥색 빛이다. 언젠가 동백이 한창일 때 동백도 보고 여호산 정상도 밟아볼 것을 다짐하면서 여서도를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