멍때리기 좋은 섬 생일도 그러나 옥에 티
2026년 3월 24일 화요일 아침 생일도를 가기 위해 집을 나섰다. 생일도가 자랑하는 문구는 ‘가고 싶은 섬 생일도’와 ‘멍때리기 좋은 곳’이다. 멍 때리는 방법은 ‘아무것도 하지 않기’다. 이러한 문구가 좋아서 생일도를 답사하고 싶은 마음이 든 것이다.


뇌과학에서는 뇌가 아무런 활동을 하지 않을 때 작동하는 특정 부위를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default mode network ; DMN)’라고 한다. 마치 컴퓨터를 리셋하게 되면 초기 설정(default)으로 돌아가는 것처럼, 멍때리기는 뇌에 휴식을 줄 뿐 아니라 평소에는 미처 생각하지 못한 영감이나 문제 해결 능력을 주기도 한다고 한다.

생일도는 완도군 약산면 약산여객터미널에서 배를 타고 가는 것이 가장 쉬운 방법이다. 가는 길에 선암사와 낙안읍성, 영랑생가를 들러 주작산 자연휴양림에서 1박을 하고는 진달래로 이름난 주작산을 등산하고 생일도로 가는 계획을 세웠다.
그동안 살아오면서 가장 많이 왔던 산사 중 하나가 선암사이다.

승선교

삼인당


육조고사




선암매
아무리 좋은 곳이라도 여러 번 오면 그 감동은 떨어지는데 선암사만은 예외인 것 같다. 선암사에 오면 눈여겨보는 것이 있다. 아름드리

고청량산해천사
졸참나무, 승선교, 삼인당(三印塘)과 ‘육조고사’와 일주문 뒤편에 ‘고청량산해천사(古淸凉山海川寺)’ 편액이다.
선암사의 풍광은 매화가 만발할 때가 최고다. 매화가 풍기는 은은한 듯 짙은 향기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선암사 매화는 크기는 작지만 고고한 기품과 짙은 향기가 단연 으뜸이다. 이곳의 매화나무는 천연기념물 제488호로 지정되어 있다. 무우전매 또는 선암매라고 불린다.

무우전매
선암사 무우전 앞에 있어 무우전매(無憂殿梅)로 불리고, 선암사 절집 이름을 따서 ‘선암매(仙巖梅)’라고도 부른다.

와룡송
고려 대각국사 의천(1055~1101)이 중창한 선암사의 상량문에 무우전매는 와룡송(臥龍松)과 함께 심어졌다고 한다.

선암매의 향기를 육당 최남선은 “이럭저럭 ‘굴목이’ 넘어온 피곤을 잊어버리고, 무엇인지 코가 에어져 나가는 듯한 향기를 맏으면서 청량(淸凉)한 꿈을 찾아들었다. 이튿날 일뜨며 창을 밀치니 맑고도 진한 향기가 와짝을 들이밀어 코로부터 온몸, 온 방안을 둘러싸 버린다. 새빨간 꽃을 퍼다 부은 춘매(春梅)가 지대 밑에 있는 것을 몰랐었다.”라고 읊었다. 선암매의 향을 바람결에 느끼니 육당의 글이 무엇을 뜻하는지 후각으로 느껴졌다.


봄의 선암사에는 매화뿐 아니라 산수유, 살구, 개나리, 진달래, 복사꽃이 더불어 피어 있다. 이어서 자두, 벚꽃, 배, 사과, 겹벚꽃, 영산홍, 자산홍, 철쭉이 시차를 두고 연이어 피어난다.

산수유와 삼지닥나무
이러한 선암사의 꽃 구경을 다하려면 매주에 한 번씩 와야 제대로 감상할 수 있다고 한다. 매주 새로운 꽃으로 몸단장을 달리하기 때문이다.
선암사를 나와 낙안읍성으로 향했다.




낙안읍성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동안 잊고 살았던 어린 시절의 기억들이 되살아나기 때문이다. 낙안읍성의 성곽에 앉아서 성안을 내려다보니 초가집과 돌담, 마당에 핀 매화와 도화, 싸리문이 소담스레 옹기종기 모여 있다. 그 풍경을 보니 마음과 기억은 시간을 거슬러 어린 시절로 되돌아갔다. 같이 놀던 동무들과 가족들이 하나둘씩 아련하게 떠올라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젖어든다.

낙안읍성을 한 바퀴 돌고는 강진에 있는 한정식당을 예약하고 강진으로 향했다. 예약 시간이 남아 식당 근처에 있는 영랑생가와 모란공원에 들렀다.

영랑생가의 오래된 은행나무, 살구나무. 동백나무는 예전 그대로다. 고목의 살구나무는 아직 피지 못하고 봉오리만 솟아 있다. 생가 뒤로 올라가면 모란공원이다. 모란공원 온실에는 모란이 한창이다. 특히 백 년을 산 모란은 두 송이가 피어 있다.


내려오는 길에 영랑생가 옆에 있는 시문학파기념관에 들렀다. 영랑 김윤식 선생은 1903년생으로 1931년 박용철, 정지용, 이하윤, 정인보선생 등과 ‘시문학’ 동인으로 시작 활동에 참여하여 창간호에 ‘모란이 피기까지’ 등을 발표하였고, 1935년에 ‘영랑시집’을 발간하였다. 비교적 여유 있는 삶을 살다가 1950년 9·28수복 때 유탄에 맞아 생을 마감했다. 시인의 나이 47세였다. 묘지는 서울 망우리에 있다.

선생의 생애 중에서 눈길이 제일 먼저 가는 것은 첫 번째의 결혼이다. 1903년생인 시인은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만 13세에 결혼하였다. 결혼 1년 반 후에 아내를 잃었다. 어린 나이에 아내를 잃은 슬픔을 노래한 ‘쓸쓸한 뫼 앞에’를 ‘시문학’에 발표했다.

쓸쓸한 뫼 앞에 –김영랑(金永郞)
쓸쓸한 뫼 앞에 호젓이 앉으면
마음은 갈앉은 양금줄 같이
무덤의 잔디에 얼굴을 비비면
넋이는 향맑은 구슬손 같이
산골로 가노라 산골로 가노라
무덤이 그리워 산골로 가노라
‘무덤의 잔디에 얼굴을 비비면’이란 구절이 짠하게 닿아온다.

기념관을 나와 5시 예약 시간에 맞추어 ‘모란식당’으로 향했다. 모란식당 한정식의 식사비는 1인당 오만 원이다. 그런데 걱정할 필요가 없다.

강진군에서 추진하는 ‘강진 누구나 반값여행’이 있기 때문이다. 강진에 오면 음식비와 숙박비를 반값으로 즐길 수 있다. 군에서 반을 지원해주는 ‘강진반값여행’ 덕분이다. 반값 여행을 하려면 여행 전에 강진군청에 여행계획을 제출하여 승인받고 숙박지나 식당, 카페 등을 이용한 영수증을 첨부하여 제출하면 지역상품권으로 경비의 반을 지원해 준다.

맛과 멋의 한정식을 반값으로 잘 먹고는 숙박지인 주작산자연휴양림으로 향했다. 일반적으로 자연휴양림에 근무하는 직원들은 불친절하다. 특히 국립자연휴양림은 좀 더 심하다. 그런데 이곳 직원들은 아주 친절하게 설명을 잘해준다. 내일 일찍 일어나 가고 싶은 주작산 진달래 산행에 대하여 귀찮을 정도로 질문을 했는데도 자세히 답변해 준다. 이곳 자연휴양림 역시 반값에 잘 수 있다.
명당터에서 잠을 자서 그런지 중간에 깨지 않고 7시간을 푹 잤다. 5시에 일어나 두 시간 동안 요가와 체조를 하고는 주작산 진달래 산행을 나서려 하자, 밤새 내린 비가 계속 온다. 산행을 포기하고 생일도 가는 길에 있는 강진만생태공원으로 향했다.




강진만생태공원
강진만 생태공원은 아주 잘 정비되어 순천만에 뒤지지 않을 정도다. 날 좋은 날 생태공원을 한 바퀴를 달리고 싶을 정도였다.
생태공원을 나와 마량항에 있는 ‘가우도 수라상’에서 아침으로 장어주물럭을 시켰다.

이 집은 맛집으로 알려진 곳인데 주문하자마자 밑반찬이 먼저 나왔다. 맛집의 특징 중 하나는 밑반찬이 좋다는 점이다. 역시나 밑반찬이 맛이 있어 주메뉴가 나오기 전에 밥을 반 이상을 먹었다. 장어주물럭이 나오자 이미 배가 불러 맛은 있어도 많이 먹을 수가 없어, 따로 포장을 시켜서 가지고 왔다.
마량항에서 생일도를 가려면 고금도를 지나 약산도의 약산여객터미널까지 30여 분을 더 가야 한다. 약산여객터미널에 도착하여 매표하고는 차를 배에 싣고 가기 위해 대기하였다. 그런데 내가 잘 모르고 금일도로 가는 장소에 대기하고 있었다. 다행히 안내원이 생일도는 옆에 있는 배를 타야 한다면서 친절히 안내해 주어 별문제가 없이 생일도 가는 배를 탈 수 있었다.
갑판 위에서 주변의 경관을 보니 섬들이 올망졸망 흩어져 있다. 오늘 바다는 파도가 거의 없고 조용한 편이다. 그런데 바다 한가운데에 이르자 제법 파도가 있어 속이 조금 불편해지려고 한다. 바다는 두 얼굴을 가지고 있다. 바닷물이 잔잔하면 아름답고 낭만적이지만 바람이 불고 파도가 심하면 두렵게 느껴진다.

백운산
“바다 물결 고운 것하고 계집 눈매 고운 것 믿지 말라”는 우리 속담을 실감 나게 경험한 적이 있어 배를 타면 늘 조심한다. 그래서 섬에 갈 때는 일기예보를 보고 하루 전이나 당일 예약을 한다. 갑판에서 바라보는 생일도의 백운산은 섬에 있는 산 같지 않게 웅장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나에게 정상까지 올라오라고 손짓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생일도에 도착하자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생일 케이크다.

생일도는 주민들의 본성이 착하고 어질어 갓 태어난 아기와 같다고 하여 날 생(生)과 날 일(日) 자를 붙여 생일도(生日島)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생일날에 오면 뱃삯이 무료라고 한다. 생일도는 전라남도 완도군 생일면에 속하는 섬으로, 인구는 2020년 기준 826명이다.

내일 갈 예정인 금일도의 배편을 알아보기 위해 생일도 서성선착장 매표소에 들어갔다. 직원이 있어 물어보니 아주 퉁명한 목소리로 오전 배는 없고, 오후 4시 배만 있다고 한다. 가격이 얼마며 시간이 얼마나 걸리는지 묻자 손사래를 치면서 나가 버린다. 기분 같아서는 한 대 때려주고 싶을 정도로 불친절하다.
찜찜한 기분으로 매표소를 나와 길을 따라가자 새로운 경관에 기분이 조금 나아졌다. 길가에는 아름드리 후박나무들과 구실잣밤나무숲이 나왔다. 지나가는 차 한 대도 없다. 이 섬을 혼자 전세를 낸 기분이다. 언덕길을 내려가자 용출리 갯돌해안이 나왔다. 용출리 갯돌해안은 갯돌로 뒤덮인 해변이다.

용출리갯돌해안
작은 조약돌에서 제법 큰 돌 등 다양한 크기의 갯돌이 길이 약 500m, 넓이 50m의 해안가에 펼쳐져 있다. 파도가 일렁이자 갯돌들이 맑고 경쾌한 해조음을 낸다.
길이 용출리에서 끝이 났다. 아직 일주도로가 조성되지 않았다. 마을 한 바퀴를 돌고는 왔던 길을 되돌아서 나왔다. 그때까지도 차 한 대를 마주하지 않을 정도로 한적한 섬마을이다.

초등학교와 면사무소를 지나 처음 도착한 서성선착장에서 반대편의 길을 따라가자 금일중학교 생일분교가 나왔다. 학교를 지나 해안도로를 따라가니 가로수인 벚나무들이 꽃망울을 한껏 머금고 있다. 몇 그루에는 꽃이 활짝 피어 있다. 모퉁이를 돌자 마을이 나타났다. 금곡마을이다. 금곡마을에서 고개를 넘자 금곡해수욕장과 오늘 숙박 장소인 골드밸리 리조트가 나왔다. 아직 체크인할 시간이 되지를 않아 금곡해변으로 갔다.

금곡해수욕장은 폭 100m, 길이 1.2Km로 주변에 상록수림이 울창하다. 해변의 모래는 조개껍데기가 부서져 쌓인 백사장으로 금빛 모래다. 완만한 수심과 해송들의 그늘은 여름 피서지로는 최적의 조건을 가지고 있는 셈이다. 덤으로 공룡알 같은 몽돌이 해변 양 끝에 있어 전체적인 조화를 이루고 있다.


무엇보다도 조용하고 깨끗해 멍때리기로는 최고의 곳으로 느껴졌다. 해변을 한 바퀴 거닐고는 학서암으로 향했다. 금일중학교 생일분교 옆으로 길이 나와 있다. 그런데 출신성분인 직업은 어쩔 수가 없는 모양이다. 저절로 학교 주차장에 주차하고는 학교 주위를 살펴보았다. 교사들의 숙소가 아주 잘 마련되어 있어 근무조건이 좋아 보인다. 이런 환경에서 근무를 한번 해 보았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학교를 나와 학서암가는 길로 접어들었다. 산길이지만 길이 아주 잘 나 있다.

학서암은 조선 숙종 때(1719) 장흥 천관사의 승려 화식이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암자다. 힘들게 살아가는 섬사람들에게 부처는 절실한 믿음의 대상이었을 것이다. 학서암은 생일도 사람뿐만 아니라 근처에 있는 약산도나 금일도 주민들도 이곳에서 안녕을 기원했다고 한다.

학서암
학서암이 자리한 곳의 풍수를 보면 암자 뒤에 바위가 강하게 응집되어 있다. 풍수에서는 바위가 있는 곳이 기가 센 명당터로 본다. 학서암 뒤편에는 걷기 좋은 길이 있어 따라가 보니 아랫마을에서 올라오는 옛길로 지금도 사람들이 많이 다닌 흔적으로 길이 잘 나와 있다. 길가에는 이제 막 올라온 머위가 많아 오늘 저녁 반찬용으로 조금 뜯었다.

학서암을 나오자 반대편에도 찻길이 잘 나와 있어 길 따라 올라가 보니 제법 넓은 공터에 현대식 화장실이 있다. 앞에는 제법 큰 주차 공간도 있다. 이정표에는 백운산 정상으로 가는 등산로 방향이 표시되어 있다.
등산화로 갈아신고 물과 갈아입을 옷을 챙겨 백운산 등산을 시작하였다. 조금 오르자 전망대가 잘 마련되어 있어, 주변의 섬들을 잘 조망할 수 있었다.

오전까지 비가 적당하게 온 뒤라 흙먼지가 일지 않고 걷기에 아주 적당했다. 길가에는 진달래가 활짝 피어 보란 듯이 피어 있다. 내가 아는 봄꽃인데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 꽃의 잎만 뽀족하니 올라와 있다. ‘자’자가 들어가는 것까지는 기억을 해 내었지만 결국 휴대폰의 도움으로 ‘산자고’라는 꽃이름을 떠올렸다. 우정과 진정한 사랑을 상징한다는 산자고가 몰래 숨어 수줍은 듯 피어 있다.

섬에 있는 산이라 급경사가 많아 힘들게 능선에 올랐다. 전망대가 있어 주변의 섬들을 조망할 수 있게 되어 있다. 능선 전망대에서 조금만 더 가면 백운산 정상이다. 정상까지는 능선길이라 조망이 일품이다. 드디어 백운산 정상에 도달했다

. 구름도 백운산의 아름다움에 취해 산에 머물러 백운산이라 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빼어나다. 생일도 자체가 바로 백운산이다. 해발 483m로 완도군에서는 완도의 진산인 상왕봉(644m)과 이어지는 백운봉(600m), 심봉(598m), 업진봉(544m) 다음으로 높다. 보길도가 자랑하는 격자봉(433m)보다는 무려 50m가 더 높은 산이다.

백운산 정상에서는 생일도에 있는 모든 것을 다 조망할 수 있다. 골짜기마다 마을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모습을 보면서 한참을 멍때리기를 하다 내려왔다. 내려오면서 올라갈 때 못 본 산자고의 군락지를 여러 곳에서 만날 수 있었다.
나도 모르게,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못 본
그 꽃”을 흥얼거리며 내려왔다.
주차장에서 반대편으로 내려오자 바로 숙소가 나왔다.

골든배리리조트
골든배리 리조트에 도착하자 사장님이 반갑게 맞이한다. 숙소는 아주 깨끗하게 잘 관리되어 있다. 가우도 수라상에서 가져온 장어주물럭과 학서암에서 따온 머위나물을 함께 조리하여 저녁상을 차리니 꿀맛 그 자체였다. 식사 후 가볍게 산책하고는 잠자리에 들었다. 해조음을 들으면서 잠을 청하자 중간에 깨지 않고 7시간을 푹 잤다.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 맨발로 해변을 거닐다가 달렸다. 지금까지 걸어본 백사장 중에서 발에 닿는 모래의 촉감이 최고였다. 왕복으로 달리고는 한 바퀴 더 달리려고 하다가 오늘 할 트래킹 거리가 제법 힘든 코스라 아쉽지만 참았다. 아침밥을 먹고는 숙소를 나오니 사장 부부가 불편한 점이 없느냐고 다정하게 물어보았다. 숙소도 깨끗하고 숙소의 풍수를 보니 천하 대명당으로도 손색이 없다고 말했다. 백운산 정상에서 흘러 내려온 맥이 이곳에 혈처로 맺혀 있다. 사신사가 뚜렷하여 섬에서는 보기 힘든 명당 풍수라고 말해 주니 주인 내외분이 아주 기뻐한다. 다음에 친구들과 같이 꼭 오고 싶은 곳이라 말하고는 리조트를 나왔다.

골드밸리 리조트를 나와 길을 따라 끝까지 가면 이엘 리조트가 나온다. 이엘 리조트에서부터 어제 갔던 용출리의 갯돌해안까지 걸어가는 코스가 생일도 최고의 트래킹코스라고 한다. 이엘 리조트에서 조금만 걸어 들어가면 수백 년 된 동백나무 군락지가 이어진다. 지심도 동백, 백련사 동백, 선운사 동백을 능가한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동백숲을 지나면 너덜겅이 나타난다. 너덜겅이 있는 곳을 ‘멍때리기 좋은 곳’으로 소개해 놓았다. 너덜겅은 지형학 용어로 암괴류(巖塊流, block stream)라고 한다.

주로 동결과 융해가 반복되며 풍화된 암괴가 쌓여 형성된 것으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암괴류 분포지역은 밀양 만어산, 대구 비슬산, 광주 무등산, 부산 금정산과 장산, 강원도 고성 운봉산 등인데 이곳 생일도의 너덜겅도 대단하다.



너덜겅
길을 가다가 자세히 보면 돌로 쌓은 축대가 보인다. 이는 밭이었다는 증거이다. 즉 계단식 밭이다. 인간의 생존에 대한 갈망이 얼마나 대단한가를 알 수 있다. 이 길은 새롭게 만든 길이 아니라 예부터 힘들게 밭농사를 위해 만들어진 비렁길이다. 그러나 지금은 멍때리기 좋은 곳으로 활용되어 아름다운 바다를 조망하면서 온갖 잡념을 떨쳐버릴 수 있는 힐링의 길로 재탄생한 셈이다.

다시 용출리 입구까지 갔다가 왔던 길을 되돌아 나왔다. 길은 역시 가는 길과 오는 길로 반복해서 보아야 한다. 갈 때 보지 못한 것들을 되돌아 올 때 보이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특히 동백꽃 군락지가 이처럼 예뻐 보였던 적은 그동안 없었다.
이엘 리조트에서 나와 생일도 맛집으로 알려진 생돈가에서 자연산 생선구이를 시켰다. 이 집 역시 맛집답게 밑반찬이 정갈하고 맛깔스럽게 나왔다. 식당 사장님은 서울에서 식당을 하다가 이곳으로 왔다고 한다. 내가 금일도에 있는 코로나 펜션에다가 전화로 예약하는 것을 듣고는, 금일도에는 제대로 된 숙소가 없고, 신지도에서 주무시고 내일 아침에 금일도로 가는 것이 좋다고 한다. 금일도는 다시마 외는 볼거리가 없다고 한다. 그래도 금일도에서 1박을 하고 싶다고 하자, 아마 실망할 것이라고 한다.
식당을 나와 금일도를 가려고 선착장 매표소에 들어갔다. 어제 불친절한 그 직원이 매표를 하고 있다. 신분증과 카드를 주면서 금일도라고만 말하고 매표했다. 좀 더 자세히 물어보려다 어제 생각이 나서 그만두었다. 차량 대기장소에서 기다렸다. 거의 정시에 배가 들어왔다. 그런데 내 앞에 있던 차가 조금 나가다가 그대로 멈추어 섰다. 그리고는 한참을 기다려도 차량을 실으라고 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런데 배가 떠나갔다.

그때서야 매표원이 나에게 와서 왜 배를 타지 않았느냐고 따지듯이 말한다. 순간적으로 화가 나서 ‘당신은 뭘 하는 사람이냐!, 정상적으로 표를 구입했으면 안내를 하는 것이 당신의 임무가 아닌가!’라고 했다. 그런데 이 친구 답변이 가관이다. ‘생긴 것을 보고 금일도 사람인 줄 알았다’는 것이다.

매표할 때 신분증을 제출하는데 건성으로 보고 자세히 보지 않았다는 것이다. 자기가 직무태만으로 생긴 일인데 적반하장으로 오히려 알아서 타지 못한 우리를 탓한다. 내가 ‘당신 고발 조치를 할 것’이라고 하자, ‘하고 싶으면 해라’고 하면서 매표소로 들어가 버린다. 반성이라고는 일도 없는 태도다.

그동안 수많은 섬을 여행하면서 가장 먼저 한달살이를 하고픈 섬은 관매도였는데 이곳 생일도가 더 먼저 살고 싶은 곳으로 여겨졌다. 그런데 이런 일을 당하고나니 한사람으로 인해 생일도의 좋았던 이미지가 다 망쳐져 버렸다. 그래서 제목에서 옥에 티를 넣은 것이다.

이글을 본 분 중에 회사를 운영하는 분이나, 완도군청의 관계자를 잘 알고 있는 분이 있으면 이런 점을 고쳐, 진정으로 ‘가고 싶은 섬 생일도’, ‘멍때리기 좋은 섬 생일도’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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