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역의 이해-5. 카를 융과 주역1
카를 구스타프 융(Carl Gustav Jung, 1875~1961)은 스위스의 정신과 의사이자 분석 심리학의 창시자이다. 융은 주역을 “무의식을 의식화 시키는 도구요, 수천 년 동안 사용되어 온 유일무이한 지혜의 서”라고 평가했다.

카를 융
카를 융은 1875년에 스위스 보덴 호숫가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친은 스위스 개혁 교회의 시골 목사로 평생 지냈다. 어머니는 문헌학 박사, 외할아버지는 바젤 대학의 언어학 교수였다. 할아버지 카를 구스타프 융(Carl Gustav Jung)은 바젤 대학 교수이자 의사였다. 할아버지와 같은 이름의 손자는 존경하던 할아버지의 뒤를 이어 정신과 의사로서 바젤 대학 교수를 지냈다.
융은 프로이트와 함께 정신분석학을 연구하고, 알프레트 아들러의 개인심리학을 참조해서 자신만의 분석심리학을 창시했다. 따라서 융을 좀더 이해하려면 프로이트와 아들러의 삶을 살펴보아야 한다.

프로이트
1. 프로이트
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 1856~1939)는 오스트리아의 심리학자로 정신분석학의 창시자이다. 1856년 오스트리아의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양모를 거래하는 유대계 사업가였다. 세 번째 결혼한 아말리아와의 사이에서 프로이트를 낳았다. 프로이트에게는 모두 6명의 형제가 있었고 그의 이복형은 어머니와 나이가 비슷했다. 프로이트는 다른 형제들에 비해 어머니의 보살핌을 많이 받으며 성장하였다.
4살 때 가족이 오스트리아의 빈으로 이주하여 빈에서 거의 평생을 살았다. 김나지움 7학년 내내 학업성적은 매우 우수했다. 그는 문학을 좋아했고 독일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스페인어, 영어, 히브리어, 라틴어, 그리스어에 능통했다.
프로이트는 우리의 의식에는 떠오르지 않은 무의식이 본인도 모르는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프로이트는 인간 활동 중 가장 기본이 되는 원동력을 성본능이라고 생각했다. 유아에게도 성욕이 있는데 유아의 발달 단계에 따라 일정한 순서로 성욕이 채워지거나 채워지지 않음으로써 그 사람의 성격이 형성되어 나간다는 것이 ‘정신-성적 발달이론’이다.
프로이트는 ‘히스테리·유아 성욕구’를 바탕으로 자신의 이론을 전개했다. 그 이유로 그는 두 살이 좀 지났을 때 어머니의 몸을 보고 강하게 마음이 끌렸고, 여자 조카를 성적 관심의 대상으로 삼았으며, 어머니의 사랑을 놓고 서로 다투었던 남동생이 죽었을 때는 도리어 기쁨을 느꼈다고 고백했다. 그리고 그가 치료했던 히스테리 환자의 대부분이 성적인 문제를 갖고 있었으며, 어린 시절 성적인 폭력이나 유혹을 경험한 적이 있는 것으로 기억했기 때문이다.
또한 자신의 자녀들을 관찰한 결과, 아이들이 대부분 순수할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어린 시절부터 성적인 쾌락을 추구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여기서 성적인 쾌락은 성기뿐만 아니라 구강, 항문, 배설, 가학성 등과 연관된다.
프로이트는 거의 모든 이론을 성적 욕구와 연관해 툭하면 섹스 얘기를 꺼내어 미친 사람 취급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프로이트가 말하는 이러한 성욕의 다양한 형태는 보편적인 성욕인 ‘리비도’를 상정하는 근거가 되었다.
프로이트의 핵심 이론 중 하나는 성격의 구조론이다. 인간의 성격은 3개 영역 즉 이드(Id), 자아(Ego), 초자아(Super ego)로 구성된다. 이드(Id)는 쾌락의 원리에 지배되는 무의식의 영역으로, 성욕과 같은 원시적 욕구를 말한다. 자아(Ego)는 이드와 초자아 사이를 현실을 고려하여 조정하는 현실 원칙에 지배된다. 초자아(Super ego)란 양심과 같은 것으로 사회적 규범과 행동 기준이 내면화된 것이다.
세 가지 구성요소 중 어느 것에 더 많은 심리적 에너지가 집중되는가에 따라 개인의 행동 및 성격의 특성이 결정된다고 보았다. 한정된 심리적 에너지를 서로 많이 차지하기 위해서 삶의 매 순간 이드(Id), 자아(Ego), 초자아(Super ego)는 성격 구조 안에서 갈등 상황에 놓이게 된다고 보았다.
또한 프로이트의 업적 중 하나는 무의식(Unconsciousness)의 발견이다. 무의식(無意識)이란 ‘의식에 영향을 미치기는 하나, 꿈이나 정신분석의 방법을 통하지 않고는 의식화하지 않는 의식’을 말한다. 즉 무의식이 실수 · 꿈 · 강박행위 등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행위의 당사자가 자신의 행위 동기를 전혀 알지 못하는 무의식은 인간의 성 충동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고 주장한다.
프로이트는 성 충동을 일으키는 에너지인 리비도(Libido)를 억제하고 순화해서 나타난 것이 우리의 문화라고 했다. 프로이트는 이 리비도를 대단히 넓게 해석한다. 학문을 열심히 연구하는 것이나, 수도승이나 신부가 자신의 육체적 욕망을 억제하면서 종교 활동에 몰두하는 것도 모두 리비도의 활동 방향을 바꾼 결과라고 주장한다.
인간이 성장하는 동안 어떤 발달 단계를 원만하게 거치지 못했을 때, 여러 가지 형태의 불안이 생긴다. 그리고 자아가 불안하면 승화 · 억압 · 투사 · 전이 · 합리화 · 퇴행과 같은 방어기제를 사용하는데, 이상과 같은 여러 가지 이상증세 중에서도 히스테리(Hysterie)가 가장 대표적이다.
히스테리가 생기면 신체 감각이 장해를 받고, 운동이 마비되는가 하면, 발작을 일으키기도 하고 또 망각 증세를 동반하기도 한다.
여기에서 프로이트는 다음과 같은 주장을 편다. 첫째, 신경증 증상은 우연히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어떤 과거의 사건에 의해서 촉발된다. 둘째, 그것은 무의식적인 것이기 때문에, 환자 자신은 전혀 그 증상을 모른다. 셋째, 이는 불쾌한 체험을 기억하기 싫어하는 환자의 심리 때문이다. 넷째, 이러한 충동은 말이나 행동으로 발산되어야만 깨끗이 씻기므로, 그 치료 방법에 카타르시스를 사용해야 한다.
카타르시스(Catharsis)란 환자의 무의식 속에 억압되어 있던 망각이 의식 세계로 올라오면서 어떤 심리적 찌꺼기들이 씻겨 내려가는 과정을 말한다. 이에 대해 아리스토텔레스는 “우리가 비극을 보고 눈물을 흘릴 때 쾌감을 느끼는 것은, 마음속에 잠재한 울적한 마음과 슬픔 등을 배설하여 마음속을 후련하게 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프로이트는 많은 신경증 환자를 돌본 치료자였으나, 자신 역시도 불면증과 우울증을 비롯한 수많은 신경증에 시달렸다고 전해진다. 이 때문에 그의 연구 중에는 자기 자신을 관찰하며 얻은 결론을 토대로 세워진 것들이 많다. 대표적으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꿈의 상징성에 대한 해석’ 같은 것들이 그의 아버지 사후 자기관찰을 통해 나온 것들이다.
지독한 애연가였던 프로이트는 구강암 때문에, 생전에 30번이 넘도록 수술을 받았다. 그런데도 니코틴 중독이 심했던 프로이트는 흡연량을 줄이지 못했다. 이후 수술 후유증, 인종차별과 불행한 가족사 등으로 인한 심적 고통, 기타 여러 질환으로 인한 통증으로 고단한 삶을 보내다가, 오스트리아가 독일에 병합되어 나치의 유대인 탄압을 피해 런던으로 떠났다.
그러나 떠난 지 1년 만에 고통을 이기기 힘들어 그의 친구인 의사에게 자신의 안락사를 요구해 모르핀을 투약받고 83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그의 유해는 영국 골더스 그린 공동묘지에 매장되었다.
빅데이터 인문학의 저자들이 구글 엔그램 뷰어를 이용해 지난 200년 동안 가장 유명했던 사람을 선정했는데 1위 아돌프 히틀러, 2위 카를 마르크스, 프로이트가 3위에 선정될 정도로 유명 인사였다.
2. 프로이트와 융의 관계
스위스의 젊고 유능한 정신과 의사였던 융은 프로이트의 이론에 깊이 매료되었다. 이들의 처음 만남은 1907년에 이루어졌다. 19살의 나이 차에도 불구하고, 처음 만나 무려 13시간 동안 쉬지 않고 대화를 나눈 일화는 전설처럼 남아 있다.
1909년 프로이트는 미국 클라크 대학 초청 여행에 융을 동반할 정도로 두 사람은 가까웠다. 미국으로 가는 배에서 프로이트는 자신의 꿈을 제자들과 공유하며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는데, 융은 최선을 다해 그 꿈을 해석했다. 그러나 거부감을 느낀 프로이트는 자신을 분석하지 말라고 요청했다. 이에 융은 프로이트가 꿈의 분석을 자신의 권위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이는 것으로 생각했다. 나중에 융은 이때부터 프로이트에 대한 절대적 신뢰와 존경에 의문을 갖게 되었다고 회고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융은 프로이트를 “옛날의 헤라클레스와 같고,” “인간 영웅이자 더 높은 신”으로 여겼으며, 의견이 불일치되는 것은 자신이 프로이트의 이론을 잘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융도 정신분석 이론에서 점차 자신만의 생각을 넓혀 가면서, 프로이트의 생각들과 부딪치는 부분들이 생겼다. 하지만 스위스와 빈에서 각각 활동하던 융과 프로이트는 주로 서신으로 친교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1912년 스위스 크로이츨링겐 정신병원 원장이었던 루트비히 빈스방거의 병문안을 했던 프로이트가 불과 60킬로미터 거리의 취리히 대학에 있던 융을 방문하지 않았던 일이 있었다. 이에 기분이 상한 융은 프로이트가 자신을 등한시할 뿐더러 자신의 독립적 활동에 부정적이라고 받아들이면서 프로이트를 비난하는 일이 잦아졌다.
마침내 프로이트는 융이 신경증인 것 같다고 하면서 “정신분석에서 유대인과 비유대인을 융합하려는 것은 물과 기름처럼 따로 놀기 때문에 실패”했다고 자인하기에 이르렀다.
1912년 겨울부터 융은 프로이트의 리비도 이론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재정립해서 강연하기 시작했다. 성욕으로만 신경증을 해석하는 것에 불편해하는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대중의 긍정적인 반응에 자신감을 얻은 융은 “지금 나의 입장은 개인적 거부감 같은 기분의 문제가 아니라, 내가 진실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지키는 문제입니다”라고 프로이트에게 편지를 보냈다. 조금씩 대담해지기 시작한 융은 프로이트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쓰기에 이르렀다.
“교수님이 의심한다면 그것은 교수님의 문제입니다. 제자들을 마치 환자처럼 대하는 교수님의 기법은 큰 실수라는 사실을 환기시키고 싶습니다.”라고 썼다.
그리고 융은 ‘인간과 상징’에서 조상이나 종족 자체의 경험과 사고의 바탕이 되는 무의식인 ‘집단 무의식’이 존재한다고 말한다. 결국 이 두 사람의 결정적인 차이는 ‘리비도(Libido)’와 ‘무의식’에 대한 해석이었다.
프로이트는 리비도를 근본적으로 ‘성적인 에너지’로 보았고, 무의식은 개인의 억압된 기억과 욕망이 담긴 ‘개인 무의식’의 영역이라고 생각했다.
융은 리비도를 성적인 것을 넘어선 포괄적인 ‘삶의 에너지’로 보았다. 그리고 개인 무의식보다 더 깊은 층위에 있는 ‘집단 무의식’이 있다고 주장했다. 집단 무의식(Collective Unconscious)이란, 모든 인류가 태어날 때부터 공유하는 원시적인 기억과 이미지의 저장고라 했다. 즉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것들인 본능과 원형을 말한다. 본능은 행동을 일으키는 충동을 의미하고, 원형은 인간 정신의 보편적이며 근원적인 핵으로,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가장 기본적인 조건이라 했다.
융은 다양한 원형 중에서 우리의 성격과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페르소나, 아니마, 아니무스, 그림자, 자기의 5개 원형을 중요하게 여겼다.
융의 이러한 주장에 프로이트는 일종의 위기감을 느꼈다. 국제정신분석학회의 회장은 융이었으니 자칫하면 창시자인 프로이트 본인이 퇴출당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에 프로이트는 초창기 추종자들에게 융을 사임시키자는 제안서를 극비리에 돌렸다. 반면에 융은 강연에서 프로이트의 이론과 자신이 어떻게 다른지를 강조했으며, 1913년 7월부터는 ‘분석심리학’이라는 명칭을 따로 쓰기 시작했다.
융은 프로이트와 달리 원형(archetype), 집단무의식, 종교적 경험에 대한 공감, 콤플렉스, 신화와 연금술의 중요성 등을 이론에 포함시켰다.
정신분석학을 합리적·과학적 학문으로 세우고자 했던 프로이트로서는 이러한 신비주의적 속성을 정신분석의 한 갈래로 인정할 수가 없었다. 결국 1914년 4월 융은 국제정신분석학회의 회장직을 사임하고, 공식적으로 프로이트와 결별했다.
프로이트와 결별한 이후에 융은 극심한 내적 혼란과 고립감에 시달려, 취리히 의대를 사임하고 은둔생활에 들어갔다.
하지만 그는 이 위기를 회피하는 대신, 오히려 자신의 무의식 속으로 깊이 파고드는 위험하고도 대담한 여행을 시작했다. 그는 이 과정을 ‘무의식과의 대면’이라 불렀다. 수년간 그는 스스로 환상을 유도하고, 꿈속에 나타나는 이미지와 인물들과 대화하며, 그 모든 것을 비밀스러운 붉은 가죽의 책에 기록하고 그림으로 그렸다.

레드북
이것이 바로 그가 죽은 뒤 거의 50년 만에 공개된 전설적인 ‘레드북(The Red Book)’이다. 이 책은 그의 모든 핵심 이론의 원천이 되었다. 융은 이 책의 제목을 라틴어로 ‘새로운 책’이라는 뜻으로 ‘Liber Novus’라 붙였다. 한편으로 빨간색 가죽 장정의 이 책을 ‘RED BOOK’이라 부르기도 했다.
이 원고는 1961년 융이 세상을 떠난 직후 출판되지 못했다. 학자들이 이 원고를 보는 것도 2001년이 되어서야 허용되었다. 그러고도 한참 더 지나서 2009년에야 독일과 미국에서 처음 소개되었다.
3. 칼 융과 주역 점
칼 융은 ‘점을 쳐서 미래를 아는 행위’는 ‘인과법칙’이 아니라 ‘동시성 원리’로 설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람들이 인지하지 못하는 오묘한 ‘동시성의 그물’을 통해 나의 현재와 미래에 대한 ‘암시’를 주게 된다는 것이다.
융은 나아가 ‘인간은 따로 떨어진 정신이 아니라 서로의 에너지로 상호 작용하여, 우리가 생각지도 못한 수많은 방식으로 서로에게 영향을 끼치는 광대한 네트워크의 일부분’이라고 생각했다.
융은 한 개인의 의식과 무의식 그리고 집단 무의식이 대립 구도(enantiodromia)를 이루면서 이러한 대립 속에서 끊임없이 조화를 향해 역동적으로 움직인다는 것을 인식했다.
융은 무의식을 두 층으로 나누었다. 개인 무의식과 집단 무의식이다. 개인 무의식은 한 사람이 살아오면서 억압하거나 잊어버린 기억과 감정들이 쌓인 층을 뜻한다. 그리고 그 아래 더 깊은 곳에는 집단 무의식이 있다. 집단 무의식은 인류 전체가 공유하는 태고의 기억과 상징들이 담긴 층으로 무의식 속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상징적 패턴들을 원형(Archetype) 이라 불렀다.
그는 주역의 64괘가 수천 년간 인간의 삶과 공명해왔다고 생각했다. 64괘를 동아시아 문명이 오랜 세월 관찰하고 압축한 원형적 상징의 체계로 본 것이다. 그것은 개인의 경험을 넘어 인류 공통의 집단 무의식과 깊은 곳에서 만난다고 주장했다.
4. 동시성의 원리
칼 융의 개념 중 가장 독창적인 것이 바로 동시성(Synchronicity)이다. 1952년 융이 물리학자 볼프강 파울리와 함께 발표한 이 개념은 인과율로 설명되지 않는 현상들을 다룬다. 볼프강 파울리(1900~1958)는 양자역학자로 1924년 제창된 ‘파울리 배타 원리’로 1945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오스트리아의 이론물리학자다.
동시성이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서로 인과적으로 연결되지 않은 두 사건이 의미 있게 겹쳐지는 현상이다. 원인과 결과의 사슬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두 사건이 마치 서로를 알고 있었던 것처럼 정확하게 맞아떨어지는 그 순간을 말한다.
우리 삶 속에서 동시성의 흔적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오랫동안 연락이 끊겼던 사람을 어떤 이유로 문득 떠올렸는데, 바로 그날 그 사람에게서 연락이 오는 것, 어떤 문제로 오래 고민하던 중 우연히 집어 든 책의 한 구절이 그 문제의 핵심을 정확히 짚어내는 것, 꿈에서 본 낯선 장면이 며칠 후 현실에서 그대로 펼쳐지는 것...
융은 이러한 일들이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고 보았다. 무의식이 시간과 공간의 제약 밖에 존재하며, 과거·현재·미래를 동시에 감지할 수 있기 때문에 이러한 의미 있는 일치가 일어난다는 것이다. 이것이 주역점의 놀라운 정확성을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열쇠로 보았다. 이는 물리학의 양자 얽힘과 비슷한 개념이다.
칼 융의 동시성은 단순한 심리학 이론이 아니라, 주역점이 수천 년간 살아 남은 이유를 서양 철학의 언어로 설명해주는 가장 가까운 개념이다. 원인이 결과를 낳는다는 전통적인 뉴턴식 인과법칙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어떤 ‘비인과적인 연결’을 가리키는 것이 동시성 원리다. 결국 ‘동시성’이란 서로 연관이 없어 보이는 사건이나 요소가 시간적, 공간적 또는 개념적으로 일치된 형태를 보이는 것을 말한다.
융의 주역점은 동시성의 원리와 양자역학과 상당한 연관성이 있다. 미래의 일이 궁금하여 점을 칠 때 나오는 괘인 주역점은 인간 마음 속의 이미지가 나타난 것으로 이 이미지의 해석을 통해 미래의 일을 알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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