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실학자 박원순 변호사
-모라중학교 특강-
3월 1일자로 모라중학교 교장으로 발령을 받은 후 박변호사로부터 학교를 방문 하여 축하를 해 주겠다는 전화를 받았다.
이왕 방문하는 김에 학생, 교사, 학부모, 지역주민을 대상으로 특강을 한 번 하는 것이 어떤지 제안을 했다. 박변호사가 흔쾌히 승낙을 하였다.
이 약속이 박변호사의 바쁜 일정에도 불구하고 부산까지 내려와 모라중학교에서 특강을 하게 된 배경이다.
특강은 7월 12일 오후 3시부터 4시 반까지 모라중학교 강당에서 실시되었다. 주제는 ‘미래교육’이다.
박변호사로부터 2시 30분에 도착한다는 연락을 받고 교문 입구에서 특강 소식을 듣고 찾아온 지인분들과 함께 박변호사를 기다렸다.
지인들을 박변호사에게 소개를 하고 함께 교장실로 가서 잠시 담소를 나누고 있으니 교무부장으로부터 준비가 다 되었다고 연락이 왔다.
강당에 도착을 하니 학생들뿐 아니라 학부모, 지역주민들 등 많은 분들이 자리에 앉아 있었다.
오후 3시라는 시간대가 성인들은 한창 일할 시간이어서 별반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도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특강에 참석하였다.
먼저 학교장으로서 박변호사님의 약력을 소개하였다. 천하가 다 아는 박변호사를 굳이 소개할 필요는 없었지만 참석한 분들에게 궁금증을 풀어주기 위해서 박변호사와의 인연을 이야기했다.
오전에는 담임장학이 있었는데 북부교육청의 장학사님이 교육청 차원에서도 모시기 힘든 분을 단위학교에서 어떻게 모셨는지 질문을 했기 때문이었다.
학생들에게 나와 박변호사님과는 경남 창녕의 영산중학교 24회 동기라고 소개를 했다.
지금 여러분들처럼 중학교를 함께 다녔고 40년이 지난 지금 이렇게 여러분 앞에 박변호사님을 모시고 특강을 할 수 있어서 감개가 무량하다고 소개를 마쳤다.
이어 박변호사의 특강이 시작되었다. 중학생을 대상으로 강의해 보기는 이번이 처음이라고 한다. 그래서 어떻게 준비를 해야 될지를 몰라서 그냥 내가 살아온 것에 대한 것과 미래의 교육에 대하여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고 하였다.
요즈음 중학생들의 일반적인 특징은 5분이 넘으면 집중을 하지를 못한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일부 학생들을 제외하고는 1시간 반 동안 진지하게 경청을 하고 있었다.
명사의 강의는 역시 다른 것이다. 지금까지 본 특강 중 단연 최고였다. 강연은 절찬리에 끝을 마쳤다.
학생들의 소감문을 보면 강연의 내용과 느낀 점이 잘 나타나 있다. 이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창의적인 직업들과 미래에 주목받게 될 다양한 직업들을 소개해주셨다. 진정 나눔과 베풂의 행복이 무엇인지 어떻게 힘든 사람들을 도와 줄 수 있는지도 잘 가르쳐 주셨다. 모두에게 베풀면서 사는 박원순 변호사님은 정말 행복해 보였다. 그렇게 선행만 하고 사는 것도 힘드실 텐데 정말 대단하신 것 같다. 또한 나눔과 베풂의 행복을 알게 되었다. 요즘 이런 것들에 삭막한 우리들이 반성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앞으로는 이기적인 마음을 버리고 넓은 마음으로 주위 사람들을 둘러보고 베풀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그리고 ‘나눔은 중독이다’라는 말이 참 인상 깊었다. 나도 지금부터 조금씩 조금씩 베풀면서 나누면서 살아야겠다.”
- 3학년 5반의 전영인-
“일찍부터 책, 신문 등을 통해 보아왔던 박원순 변호사의 강의를 어제 듣게 되었다. 주제는 미래교육. 박원순 변호사는 그간 인권변호사와 NPO 활동 등으로 살아온 자신의 삶을 간단히 소개하고 여러 가지 직업들을 소개해 주셨다. 박원순 변호사가 진정 말하고 싶었던 것은 ‘꿈을 가지자. 그리고 자신만 배부른 삶을 살기보다는 항상 약자를 생각하고 배려하며 나눔을 실천하자’는 것이다. 인상 깊었던 것은 거창고의 교훈을 설명해준 것이었다. 의사, 판검사 등 돈과 명예를 추구하는 것보다는 진정 자신의 꿈을 실천하고 다른 길로 도전해 보자는 것이다. 박원순 변호사의 강의를 듣고 배부른 돼지처럼 살지 말고 정의, 나눔을 실천하는 삶을 살아야겠다는 것이다. 꿈을 강조하셨다. 하지만 이 사회의 구조적 모순 속에는 아이들이 꿈을 가지기가 어려워 안타깝다. 아이들이 돈보다는 진짜 꿈을 가진 아이들이 되기를 바란다.”
-3학년 9반의 정다희-
그 외 많은 학생들이 느낀 점을 열거하면 다음가 같다.
“많이 알지 못했던 여러 직업들을 알게 되어 내 꿈에 좋은 영향을 많이 미칠 수 있을 것 같고, 좋은 사이트를 많이 알게 되어 너무 좋다. 이렇게 좋은 기회를 가지게 되고 득이 되는 말을 들어 좋다. 좋은 멘토를 만난 것 같아 왠지 감사한 마음이 든다. 새로운 비전을 가지고 가게된 것 같다. 미래를 조금 더 신중히 생각하자!”
“직업에 대해 새로운 가치관을 가지게 된 것 같고, 요즘 새로운 아이디어의 발달이 매우 신기했다. 그리고 기부와 나눔의 필요성도 깨달은 것 같다.”
“오늘 명사초청 강연회로 인하여 미래의 꿈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고, 자라서 새로운 생활 속에서 편리하게 사용 될 수 있는 발명품을 만들어 보고 싶다.”
“강의 듣기 전에 인터넷에서 찾아보고 왔었다. 정말 너무 진짜 유명하신 분이었다. 우리나라를 위해 많이 노력하셨던 분이다. 정말 이분의 강의를 들으니까 희망을 가지게 되었고, 무언가 할 수 있고 나도 해보자는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 진짜 감사하다.”
“이제까지 내가 한 행동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나만을 위해서만 행동하지 않았는지... 틀에 박힌 생각만 하진 않았는지... 박원순 변호사의 말씀을 듣고는 앞으로 나 혼자만이 아니라 모두를 위해 행동해야겠고, 또 나만의 독창적인 아이디어로 사회발전을 이룰 뿐만이 아니라 나 자신도 스스로 발전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미래직업에 대해선 별로 생각해 본적도 없고 개발해 볼 생각은 아예 하지도 않았었다. 그런데 사회디자이너인 박원순 변호사님을 만나보니 직업의 틀이 깨진 것 같고 앞으로 내가 가야할 길이 이렇게 넓다는 것도 깨달았다.”
학부모님의 소감문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미래의 직업소개와 여러 나라를 방문하시고 세계의 정보를 볼 수 있어서 또 다른 경험이었습니다. 지역 특산물 개발, 된장, 고추장, 간장 등 우리나라 고유전통음식을 발전시켜 세계의 건강 음식이 되면 좋겠구나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도시 농업의 발전, 에너지의 자립, 장례문화의 발전과 전문성, 음식디자이너, 스포츠의 혁신, 교육 협동조합 등 박원순 변호사님의 놀라운 생각. 미래를 바라보시는 눈. 아이를 키우면서 부족한 부분입니다. ‘나눔은 기쁨으로 다가온다’라는 나눔의 말씀 또한 감사합니다.”
-2학년 8반의 허민군의 어머니인 김복임님-
“남을 생각하고 자신을 돌아보는 생활을 하자. 남을 생각한다는 것은 큰 것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작은 마음에서부터 온다. 많은 독서와 풍부한 경험을 통해 자신의 미래를 설계하라. 많이 생각하고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만들어라. 미래의 나아갈 길은 무궁무진하다. 틀에 박혀있는 고정된 관념에서 벗어나 자신의 특성에 맞는 소질과 기술을 계발하고 발전시켜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가장 우선적인 것은 그것을 찾아내는 것이고 그것을 알아가는 것이라고 여겨지네요.”
-3학년 6반 우다경 어머니인 박영실님-
위의 소감문들에서도 알 수 있듯이 현실의 부조리를 극복하고 미래에 대한 대안을 구체적으로 제시한 셈이다.
그는 자신을 늘 점쟁이라고 한다. 미래가 눈에 보인다고 한다.
황도사는 인간의 미래 운명이 보이겠지만 자기는 앞으로 다가올 미래사회가 눈에 보인다고 하였다.
박변호사는 일 년 중 삼분의 일 이상을 외국을 다닌다. 세계 여러 선진국의 문물을 체험하고 다양한 분야의 세계적인 석학들과 친분을 가지고 교우한 결과 미래가 예측된다는 것이다.
박변호사의 강의를 들을 때마다 나는 17세기 중엽 이후에 대두한 실학을 떠올리게 된다. 그 당시 실학은 성리학의 공리공론에 반대하여 정치 경제적 현실 문제와 과학, 기술, 역사, 문학, 풍습과 같은 우리 문화에 대한 광범위한 연구를 통하여 조선의 변화와 개혁을 주장하던 새로운 사상이다.
실학의 근본정신은 실사구시(實事求是), 이용후생(利用厚生), 경세치용(經世致用)이다.
사실에 토대를 두어 진리를 탐구하는 것이 실사구시(實事求是)이고,
기구를 편리하게 쓰고 먹을 것과 입을 것을 넉넉하게 하여 국민의 생활을 나아지게 하는 것이 이용후생(利用厚生)이며,
학문은 세상을 다스리는 데에 실질적인 이익을 줄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 경세치용(經世致用)이다.
오늘 박변호사의 강의는 이러한 정신과 일맥상통하다고 느껴진다. 그는 진정한 21세기 대한민국 최고의 실학자라고 주장하고 싶다.
마지막으로 이 자리를 빌어서 그 바쁜 일정 속에서도 친구를 찾아서 먼 부산까지 와서 귀한 강의를 해 준 박변호사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有朋이 自遠方來면 不亦樂乎라!’ 어찌 기쁘지 않을 수 있으랴...
큰 나무 아래에는 그늘이 넓어서 쉴 곳이 많다고 한다. 그 넓은 그늘의 음덕을 우리 모라 가족들도 다 함께 받아서 더 큰 사람으로, 학교로 거듭 날 것을 다짐하고 기대해 본다.
동갑내기?
My Way - Frank Sinatra
And now the end is near
이제 생의 마지막 순간이 다가와
and so I face the final curtain
인생의 마지막 장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my friend I'll say it clear
나의 벗이여, 이제 사심없이
I'll state my case
내가 자신있게 살아온
of which I'm certain
나의 인생을 밝히고 싶군요
I've lived a life that's full,
난 나의 인생을 충실하게 살아왔고
I traveled each and every highway
살아오면서 수많은 일을 겪어왔습니다.
And more much more than this,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I did it my way
난 내 삶을 내 방식대로 살아왔다는 겁니다.
Regrets I've had a few
조금의 후회도 없지는 않아요
but then again too few to mention
그러나 다시금 되새길 만한 후회는 없었지요
I did what I had to do
나는 내가 해야 할 일을 다했고
and saw it thru
힘들었던 고난의 일들을
without exemption
아무런 편법도 쓰지 않고 해왔습니다.
I planned each chartered course
나는 내모든 인생의 길을 계획했고
each careful step along the by way
그 길을 따라 최선을 다해 걸어왔습니다.
and more much more than this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I did it my way
난 내 삶을 내 방식대로 살아왔다는거지요.
Yes, there were times,
그래요, 친구도 알고 있으리라 확신하지만
I'm sure you knew
난 내가 할 수 없었던 일에도
When I bit off
터무니 없이 대들기도 했었던
More than I could chew
그런 적도 있었습니다.
But through it all
그러나 그 모든 일을 겪어오면서도
when there was doubt
행여 의심스러웠을 때는
I ate it up and spit it out
그 모든걸 다 먹었다가도 뱉어내버렸죠
I faced it all and I stood tall
난 모든 것에 맞서서 자신있게 견뎌냈어요
and did it my way
그래요 난 내 방식대로 살아온겁니다.
I've loved, I've laughed and cried
난 사랑도 했고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하면서
I've had my fill,
소유하는 만족감도 얻었고,
my shere of losing
잃어 버리는 좌절감도 겪었습니다.
And now as tears subside
그런데 이제 눈물을 거두고 나니
I find it all so amusing
그 모든 것이 우스웠다는걸 알게 됩니다.
To think I did all that
내가 해온 그 모든 일들을 생각해보면
And may I say,
부끄럽지 않은 인생이었다고
Not in a shy way
난 말할 수 있습니다.
Oh,no,oh,no not me
그래요, 아녜요, 난 부끄럽게 살지 않았어요.
I did it my way
난 내 방식대로 살아온 겁니다.
For what is a man
남자란 무엇을 위해 사는가
what has he got
남자란 무엇을 성취해야 하는가
if not himself then he has not
자신을 지키지 못하면 아무 것도 없는 거지요.
To say the things
자신의 감정을 솔직히
he truly feels
얘기할 수 있어야 합니다.
And not the words
부릅을 꿇고 말하는 그런
of on-e who kneels
비굴한 자들의 말이어서는 안되는거지요.
The record shows
지난 세월들이 말해주고 있습니다.
I took the blows
내가 온갖 어려움을 겪었다고 말이죠
And did it my way
난 내 방식대로 살아온겁니다.
Yes,
그래요
It was my way...
그것이 바로 내가 걸어온 인생이었습니다.
가사 출처 : Daum뮤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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