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평생공부

도시로 보는 유럽사

by 황교장 2022. 6. 9.

도시로 보는 유럽사(백승종 저, 출판사 사우, 2020)를 읽고

 그동안 살아오면서 가장 나를 즐겁게 하는 것 중 하나가 여행이었다. 어릴 적부터 저 산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가 궁금했다. 초중학교 무렵에는 자전거를 타고 고향땅 근처 사십 리를 누볐고, 고등학교, 대학을 다닐 때는 오토바이를 타고 두루 백 리를 헤매고 다녔다. 성인이 되어서는 일 년에 평균 80일을 배낭을 메고 전국 곳곳과 해외로 떠나곤 했다. 여행에 있어서 가장 깊은 영향을 준 책은 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그러나 유교수의 답사기는 우리나라와 일본, 중국 여행 답사기라 늘 서양의 문화유산 답사기가 아쉬웠다. 그런데 나의 바람이 백승종 교수에게서 이루어졌다. 그 책은 백교수의 저작인 도시로 보는 유럽사이다. 저자는 역사가이자 역사 칼럼니스트로 독일 튀빙겐 대학교 문화학부에서 철학 박사학위를 받고, 같은 학교에서 한국학과 교수를 비롯해 서강대학교 사학과 교수를 역임한 역사학자이다.

 

퐁파두르 부인의 초상, 프랑수아 부셰

이 책은 일반적인 유럽여행 안내서와는 질적인 차이가 있다. 저자는 30년 동안 유럽의 여러 도시를 여행했다. 그는 가고 싶은 도시를 정하고, 여러 달 동안 그 도시와 나라의 역사, 유서 깊은 건축물과 예술 작품을 깊이 공부하고, 현지인들의 일상생활과 음식에 대해서도 조사한다. 현지 뉴스에도 계속 관심을 기울인다. 이렇게 오랜 시간 동안 준비하여 마침내 한 도시에 도착하면 열흘 이상 그곳에 머문다. 많은 명소를 둘러보기보다는 자세히 살피면서 역사의 향기를 깊이 느끼는 여행 방식이다.

 

이 책의 목차를 따라 특징적인 내용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파르테논신전

1. 아테네, 아크로폴리스에서 21세기의 혼란을 마주하다

델로스 동맹을 이끈 페리클레스는 그리스의 영웅이지만 델로스동맹의 예산을 멋대로 빼돌려 파르테논신전을 지었다. 역사에서 길흉이 반복하기 마련이다. 끝없이 펼쳐지는 진보의 물결 따위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 어느 한 시기의 문화적 창조와 융성은 독창적인 결과물도 아니다. 교섭, 조합, 융합의 결과가 아닌 것이 없다. 고대 이집트와 페르시아의 문화적 성과를 무시하고는 그리스 문화의 번영을 논하기 어렵다.

 

콜로세움

2. 로마, 아직 남아 있는 제국의 향기

저자는 로마의 멸망 원인 중 하나를 기후변화로 보았다. 날씨가 추워지자 로마변방에 살던 고트족, 훈족, 반달족이 교대로 로마를 침략한 것이 제국 멸망의 요인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통치자들이 로마제국의 양극화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하지 못했다고 주장한다. 즉 통치자들은 로마의 기득권층을 설득하여 경제적으로 양보하도록 유도하지 못했다는 점 또한 로마의 멸망 원인으로 보았다. 오늘날에도 그대로 적용이 가능한, ‘역사란 이따금 반복되는 것으로 생각된다.

 

구스타프아돌프광장

3. 스톡홀름, 바이킹의 후예들이 만든 복지사회

스톡홀름은 스웨덴의 수도이자 스칸디나비아반도에서 제일 큰 도시이다. 14개의 섬을 57개의 다리로 연결한 도시라서 북방의 베네치아라 불린다. 스웨덴은 무자비한 바이킹의 후예들이지만 지금은 자유와 평화를 구가하는 복지국가의 나라다. 스웨덴은 1523년에 덴마크로부터 독립했다. 오늘날 스웨덴의 핵심 가치는 평등이다. 바이킹의 전통이 부족 구성원 회의에서 평등한 권리와 사회적 합의를 존중했다고 한다.

 

성소피아대성당

4. 콘스탄티노플, 동서양을 연결한 비단길의 영광과 치욕

330년 콘스탄티누스 1세는 이곳을 제2의 수도로 삼아 콘스탄티노플이라 명명했다. 콘스탄티누스 2세는 360년에 소피아 대성당을 건립했다. ‘하기야 소피아는 성스러운 지혜를 말한다. ‘소피아 대성당은 로마의 성베드로대성당이 건립되기 전인 15세기까지는 세계 최대 규모였다. 4차 십자군원정대(1204)는 본래 이집트를 향해 출정식을 마쳤다. 그런데 베네치아공화국의 흉계로 부유한 무역도시 콘스탄티노플을 약탈하게 된다. 이후 1453년에 오스만튀르크의 술탄 메흐메트 2세에 의해 콘스탄티노플은 함락되고 도시의 이름도 이스탄불로 변경되어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산마르코대성당

5. 베니스, 자유와 모험정신의 분화구

게르만족이 북이탈리아로 침입해오자, 베니스 사람들은 배를 타고 석호로 도망쳤다. 일종의 피난처였다. 이후 도시국가로 발전하여 헝가리,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 달마티아 등 교역하던 여러 나라를 차례로 제압했다. 베니스는 교황의 의지를 무시하고 동로마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을 침략하여 막대한 부와 보물을 약탈하였다. 최고의 전성기 때는 로마교황청의 권위와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에게도 허리를 굽히지 않았다. 그러나 그 후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이끄는 대항해시대가 열리면서 베니스는 유럽경제에서 비중이 줄어들었다. 결국 나폴레옹에게 항복하였다. 나폴레옹이 베니스를 점령한 후 산마르코 대성당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응접실이다!’라고 감탄할 정도로 베니스의 문화는 뛰어났다. 베니스는 8세기부터 1797년까지 천 년 이상 독립성을 유지한 도시이기도 하다. 베니스 출신 카사노바는 단순한 바람둥이가 아니라 미지의 세계를 적극적으로 탐험한 대단한 모험가이자 시대를 앞서간 천재였다.

 

성모자상

6. 브뤼헤, 중세 도시로 떠나는 시간여행

브뤼헤는 인구 11만의 벨기에에 있는 중소도시지만 유럽의 교역 중심지이자 최초의 증권거래소가 탄생한 곳이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의 중세의도시다. 성모성당에는 미켈란젤로가 조각한 성모와 아기 예수상이 있다.

 

카를다리

7. 프라하, 저항과 혁신의 역사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인 카를 4세는 보헤미아 왕을 겸했다. 황제는 프리하의 궁궐에서 제국을 통치했다. 카를 4세가 완성한 카를다리위에서 낙조를 바라보는 즐거움은 형언하기 어렵다고 한다. 프리하는 체코의 민족적 영웅인 얀 후스의 저항 정신이 살아 있는 곳이기도 하다.

 

프라도 미술관

8. 마드리드,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스페인의 수도는 1561년에 톨레도에서 마드리드로 옮겨왔다. 마드리드는 축구팀 레알마드리드와 프라도 미술관이 있는 곳이다. 프라도 미술관은 루브르박물관, 에르미타주 미술관과 더불어 세계 3대 미술관으로 꼽힌다. 이곳에는 엘 그레코와 벨라스케스의 대표작들이 있다. 또한 국립 소피아 왕비 예술센터에는 피카소의 게르니카가 소장되어 있다.

 

야경, 렘브란트

9. 암스테르담, 이곳에서는 누구나 자유롭다

유럽에서 인구밀도가 가장 높은 나라가 네덜란드이다. 따라서 땅도 좁고 자연조건도 거주에 적절하지 않다. 그런데도 부강한 나라다. 이는 관용의 전통 때문으로 여긴다. 관용은 개방적인 문화 또는 자유의 정신과 안팎을 이룬다. 네덜란드의 수도인 암스테르담은 렘브란트와 스피노자를 배출한 도시이기도 하다.

 

웨스트민터대성당

10. 런던, 사라져가는 제국의 영광인가

런던은 전통과 혁신의 조화가 만들어내는 매력이 있다. 저자는 유럽의 여러 도시를 둘러보았으나 런던보다 더 근대 제국의 위용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도시는 없었다고 한다. 영국 사회의 특징은 실용주의에 기초한 합리성이다. 영국의 귀족들은 시골에 있는 영지를 경영하는 데 주력했고 겨울철에만 런던으로 돌아와서 한철을 보내고 다시 시골로 내려갔다. 거리 시위가 없는 의회의 나라다. 이 책에는 영국과 스코틀랜드 사이에 스콘의 바위를 두고 얽힌 오랜 이야기가 있다.

 

쉰브룬궁전

11. 비엔나, 아직 살아 있는 구체제의 영광

비엔나는 화가 크림트와 심리학자 프로이트의 고향이다. 또한 비엔나의 역사를 수놓은 음악과 문화의 향기는 합스부르크 왕가의 본거지라는 사실과 관계가 깊다. 영원한 여제, 마리아 테레지아가 계몽 군주로서 많은 개혁 조치를 단행한 곳이 비엔나이다. 1452년 프리드리히 3세가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로 즉위한 이후 무려 460년 동안 그의 자손들이 제위를 독점했다. 오스트리아를 넘어서 독일 전체를 대표하는 왕가였다. 오늘날 비엔나는 주변의 다른 도시에 비해 주거비용과 교통비가 저렴하고 공기와 물의 질은 여느 도시와 비교할 수 없이 훌륭하다.

 

베르사유궁전

12. 파리, 시민이 주인인 도시

사람들은 파리를 예술의 도시라고 부른다. 파리는 귀족과 특권층의 전유물이 아닌 평범한 시민들도 이곳에서는 주인 행세를 하며 산다는 의미가 있다. 프랑스 혁명의 도시답게 파리는 일반 시민의 것이다. 가장 화려한 궁전인 베르사유 궁전과 이를 건설한 루이 14세는 무려 72110일간 왕위를 차지했다. 루이 왕의 많은 이야기가 이 책에 있다.

 

브란덴브루크문

13. 베를린, 수천 수백 개 얼굴을 가진 국제도시

베를린은 세계적인 도시이지만 자연 풍광이 유난히 깨끗하고 아름답다. 이는 베를린을 감싸고 있는 넓은 숲과 여러 개의 호수 덕분이다. 베를린에는 다섯 개의 대형 박물관이 있는데 이중 가장 인기가 있는 곳은 페르가몬 박물관이다. 이는 터키 페르가몬에 있던 제우스 제단을 송두리째 운반해온 것이다. 베를린은 동서독 통일의 상징인 브란덴부르크 문과 대다수 독일인이 자랑스럽게 여기는 프리드리히 대왕에 관한 많은 이야기가 있다. 또한 빌헬름 2세와 불화 끝에 물러나면서 "앞으로 15년쯤 뒤 독일제국이 파멸할 것"이라고 정확히 예언한 독일제국의 재상 비스마르크의 일화도 있다.

 

레고랜드

14. 코펜하겐, 명랑하고 유연하게 대안을 만드는 사람들

코펜하겐은 상인의 항구라는 의미다. 덴마크는 바이킹의 후손이 건국한 나라다. 바이킹은 약탈보다 여러 나라와 교역하는 상업이 생존전략에 더 좋다는 것을 발견했다고 한다. 덴마크는 행복지수와 성 평등지수가 가장 높은 나라 중 하나이다. 농업국가인 동시에 산업국가이다. 아이들 장난감을 잘 만들어도 부자 나라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나라다. 동화작가 안데르센의 도시다.

 

츠빙글리 동상

15. 취리히, 세계인이 가장 선호하는 명품 도시

스위스는 1인당 국민소득이 세계 1위인 나라다. 스위스의 수도는 베른이지만 여러모로 취리히와 제네바의 영향력이 더욱 크다. 취리히는 북이탈리아와 프랑스 및 독일을 하나로 연결하는 길목이어서 세관을 뜻하는 라틴어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취리히는 교육의 도시이기도 하다. 종교개혁가로 스위스의 루터로 불리는 츠빙글리와 페스탈로치가 이 도시의 아들이다. 그리고 취리히연방 공대 출신 28명이 노벨상을 받았다. 취리히는 스위스 경제의 중심이자 세계 굴지의 기업들이 정착해 있다. 취리히는 모나코와 제네바에 이어 세상에서 3번째 부자 도시이다.

 

크램린궁전

16. 모스크바, 여전한 황제와 귀족의 도시

모스크바는 1200만 명의 시민이 거주한다. 도시 분위기는 가부장적이고 권위적이다. 러시아는 240년간 몽골의 지배를 받다가 이반 대제가 몽골의 압박에서 러시아를 구했다. 러시아는 값비싼 모피인 검은 여우를 찾느라 혈안이 되었다. 그 결과 시베리아까지 영토가 확장되었다. 효종 때 나선 정벌도 흑룡까지 내려온 러시아를 토벌하기 위한 것이다. 지금의 러시아는 일종의 마피아 사회이다. 60명 가량의 대부호가 사회를 지배한다. 마치 차르와 보야르의 시대가 되돌아온 듯한 시대다. 그들의 자제는 심한 낭비벽에 사로잡혀 있단다. 러시아 특수층의 삶은 지나치게 호화판이다.

 

유럽의회

17. 스트라스부르, 국경도시의 아픔 딛고 유럽 통합의 상징으로

스트라스부르는 브뤼셀과 더불어 유럽연합의 중심지다. 유럽연합은 28개 회원국을 거느린다. 유럽의회와 유럽인권재판소가 있다. 스트라스부르는 1201년 신성로마제국의 카를 4세가 자유 제국 도시라는 지위를 주어 왕과 영주들의 간섭에서 벗어났다. 그 후 문화가 꽃피었다. 대표적인 것이 노트르담 대성당이다. 프랑스의 문호 빅토르 위고는 이 건물을 가리켜 거대하면서도 섬세한 경이라며 경탄했다고 한다. 스트라스부르는 유럽 출판업의 중심지였다. 구텐베르크가 이곳에서 마르틴 루터가 번역한 독일어 성경을 인쇄한 곳이기도 하다.

 

프라이부르크

18. 프라이부르크, 어떻게 세계가 주목하는 생태 도시가 되었을까

프라이부르크는 태양광의 메카라고 불리는 독일의 생태 도시다. 프라이부르크는 경치가 아름답다. 날씨도 따뜻하고 맑은 편이다. 흑림에 가까운 관광도시다. 흑림은 자연림이 아니고 오랫동안 많은 정성을 기울여 가꾼 인공 숲이다. 프라이부르크 인근 빌이란 마을에 핵발전소가 건설될 예정이었다. 이에 핵발전소에 반대하는 시민운동과 에너지 절약운동이 줄기차게 전개되었다. 1986년 구소련 체르노발에서 초대형 원자력 사고가 일어났다. 그러자 핵을 반대하는 분위기가 더욱 확대되었다. 그들은 여러 가지 생각 끝에 태양광 전기를 새로운 대체 에너지원으로 인식하였다. 그리하여 프라이부르크 시청은 독일 최초로 환경보호국이 설치되었다.

 

이 책은 18개 도시에 관한 문화적 체험담이다. 인간의 문명은 도시를 중심으로 발달했다. 도시는 정치와 경제, 예술과 학문의 중심지이자 인간의 역사를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공간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18개 도시는 유럽 역사는 물론 세계사의 흐름이 형성된 현장이기도 하다.

책을 순서대로 읽어나가면 유럽 역사의 큰 흐름을 알 수 있고, 나아가 한 도시와 국가가 세계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는 과정도 파악하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유럽의 역사, 더 나아가 세계사를 보는 새로운 시야를 제공한다. 위의 18개 도시 중 많은 도시들은 이미 답사한 곳이다. 그런데 내가 느낀 것과 저자가 느낀 것은 차이가 있다. ‘아는 것만큼 보인다는 것은 영원한 진리인 것 같다. 다시 한번 이 책을 들고서 여행을 하고 싶다. 아마도 역사를 보는 눈이 한층 깊고 넓어져 삶의 질이 높아 행복한 삶이 될 것 같다.

 

'평생공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페인 역사 3-2, 합스부르크 왕조의 펠리페 2세  (2) 2023.02.05
스페인 기독교 문화와 이슬람 문화의 이해  (2) 2023.01.20
순자(荀子)  (0) 2022.06.03
맹자  (0) 2022.04.21
보살과 반가사유상  (0) 2021.12.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