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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중국여행

백두산 여행3-북파와 연길

by 황교장 2023. 11. 3.

백두산 여행3-북파와 연길

2023년 10월 8일 일요일 아침 일어나 보니 날이 맑다. 오늘도 백두산을 잘 볼 수 있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북파로 가는 셔틀버스는 이도백하에서 출발하기에 호텔 바로 근처에 있다. 그런데 보통 아침부터 인산인해라고 하는데 사람들이 거의 없어 쓸쓸할 정도로 한산하다.

중국의 국경절 10월 1일 전후 8일 동안 연휴를 하고 10월 7일 토요일과 10월 8일 일요일은 정상 출근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오늘이 우리나라는 휴일이지만 중국은 근무일인 셈이다. 예전에는 중국 유명 관광지에 외국인과 우리나라 관광객이 많았는데 지금은 자국민이 95% 이상이라고 한다. 우리로서는 절호의 타이밍인 셈이다. 삼대 적선을 한 사람이 있어야 만날 수 있는 행운이다.

가시거리가 좋아서 먼 곳까지 다 보인다. 차창으로 지나가는 원시림은 서파로 가는 길과 비슷하다. 낙엽송·가문비나무·사시나무 등 침엽수와 자작나무·황철나무·분비나무 등 활엽수가 함께 혼재하는 혼합림지대를 지나고 있다. 특히 가문비나무는 이곳에선 장백산 어린송(魚鱗松)이라고 불린다.

가문비나무

나무껍질이 고기비늘 모양을 한 데서 생긴 이름이라고 한다. 울창한 숲 사이로 드러나는 하늘이 쪽빛이다. 쪽빛 하늘 사이로 흰 눈으로 덮인 백두산이 얼굴을 내밀었다가 다시 숲 사이에 숨는다. 눈을 뗄 수 없는 풍경이다.

어린송

셔틀버스는 약 40여 분을 달린 후에 백두산 북파산문에 도착했다. 여기까지는 버스로 왔지만 남은 거리는 급경사여서 지프차를 타고 천문봉으로 올라야 한다. 길은 험하고 가파르다. 좁고 꼬불꼬불한 산길을 속도의 줄임도 없이 현란한 운전 솜씨로 북파 정상 부근까지 올라갔다.

여기서 천지 입구까지는 도보로 5분 거리다. 차에서 내리자 기온이 장난이 아니다. 영하 14도라고 한다. 눈물과 콧물이 저절로 났다. 그런데도 천지를 향해 힘차게 나아갔다.

마침내 천지가 바라보이는 곳에 도착했다. 바람이 장난이 아니다. 어제 서파가 봄 이라면 오늘 북파는 전형적인 겨울 날씨다. 추웠지만 조금이라도 더 눈에 천지를 더 담아보려고 애를 썼다. 서파에서 본 천지와는 또 다른 느낌이다. 서파에서 보는 천지는 아기자기하다면 이곳 북파에서 보는 천지는 웅장하다. 천지를 둘러싸고 있는 민족의 영산 백두산은 최고봉인 장군봉(2744m)을 필두로 하여 2,500m 이상인 봉우리가 16개가 있다. 이 중 9개가 북한에 속해 있고 7개가 중국에 속해 있다.

천지는 둘레가 21.89km 동서로 3.08km, 남북으로 4.78km, 최고 수심은 373m, 평균수심은 204m이다. 백두산의 북쪽으로는 장백산맥이 북동에서 남서 방향으로 뻗어 있고, 동남쪽으로는 마천령산맥의 대연지봉(2,360m), 간백산(2,164m), 소백산(2,174m), 북포태산(2,289m), 남포태산(2,435m) 등 2,000m 이상의 연봉으로 이어져 있다.

고산자 김정호의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 해설문에는 “산줄기가 요동 들판을 가로지르며 일어나 백두산이 되니, 이 산은 조선 산맥의 한아비라, 산에 삼 층이 있는데, 그 높이는 200리가 되고, 넓이는 1,000리에 걸쳐 있다. 그 꼭대기에 못이 있으니, 이름을 달문이라고 한다.

둘레가 800리로서 남으로 흘러 압록강이 되고, 동으로 나뉘어 두만강이 된다. 백두산은 분수령 남북으로 길게 뻗쳐 연지봉·소백산·설한등령·철령 등에 걸쳐 있거니와 한 가닥이 동남으로 내달으며 치솟아 도봉 삼각산을 이루고 그 사이를 한강이 흐르고 있다.”라고 설명하였다.

또한 일연스님이 편찬한 삼국유사(1285, 충렬왕 11)에는 “아득한 옛날, 하느님의 작은아들 환웅(桓雄)께서 여러 차례 인간세계에 내려가고자 하자 하느님께서는 아드님의 뜻을 아시고 하계를 두루 살피시더니 태백(太伯) 곧 백두산이 인간을 널리 이롭게 할 만한 곳으로 여기시어, 곧 아드님에게 천부인(天符印) 세 개를 주고 내려가서 그곳을 다스리게 하였다.

환웅께서는 무리 3,000을 거느리고 태백산 마루 박달나무 아래에 내리시어 그곳을 신시(神市)라 하시니, 이 분이 곧 환웅천황이시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는 백두산이 우리 한민족의 발상지라는 의미다.

백두산의 역사적, 지리적 의미를 떠올리면서 천지를 다시 조망하였다. 그런데 날씨가 너무 추워서 완전무장을 했는데도 더 이상 서 있을 수가 없다. 체감온도로는 영하 30도쯤 되는 것 같은 느낌이다.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친구들과 함께 북파의 휴게실에서 커피 한 잔 하니 몸이 녹는다.

다시 지프차를 타고 북파산문으로 내려와 셔틀버스를 타고 비룡폭포로 향했다. 중국에서는 비룡폭포를 장백폭포라고 한다. 비룡폭포로 가는 길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유황온천 지역을 지났다.

평균온도가 60~70℃, 최고온도는 82℃에 이르며, 유황 성분을 많이 포함하고 있고 다량의 무기질과 유화수소도 포함되어 있어서 피부병과 관절염에 효과가 있다고 한다. 이 온천지역은 이곳이 지금도 활동하고 있는 활화산의 증거라고 한다. 신기한 모습의 온천수를 한참 응시하고는 계단을 따라 오르면 웅장한 비룡폭포가 나온다.

비룡폭포를 자세히 보면 물줄기가 두 가닥이다. 웅장하게 떨어지는 물줄기가 비룡폭포이고, 실처럼 가는 물줄기가

은선폭포이다. 천지의 물이 북쪽의 화구벽이 뚫린 달문(闥門)으로 넘쳐흘러 비룡폭포(飛龍瀑布)를 이룬다.

폭포의 높이는 68m로 이 물이 송화강의 원천이 된다. 예전에는 폭포 오른쪽에 나 있는 길을 통해 달문으로 올라 천지에 손을 담글 수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그 길로 갈 수가 없다고 한다. 폭포가 잘 보이는 벤치에 앉아서 잠시 무념무상으로 주변을 조망했다.

달문

가을 단풍과 어우러진 풍광은 별천지이다. 언제 다시 올 수 있을까 하는 아쉬운 발걸음으로 폭포 입구에 있는 가게에서 온천수로 익힌 계란을 맛보고는 이도백하로 내려왔다.

삼대가 적선해야 볼 수 있다는 백두산 천지를 두 번에 걸쳐서 그것도 비도 오지 않고 안개도 끼지 않아 선명하고 장엄한 풍광을 보고 왔다. 그러나 나는 아직 배가 고프다. 남파도 못 보았고, 북한 삼지연에서 오르는 동파도 못 보았기 때문이다. 지금으로선 세계에서 가장 먼 곳이다. 내가 살아 걸을 수 있을 때 통일이 되어 가 볼 수 있기만을 소망해 볼 뿐이다.

우리 일행은 다시 연길로 나와 마시지를 받고는 진달래 광장을 산책하고는 북한 식당으로 갔다. 그동안 중국에 올 때 여러 번 북한 식당을 가 보았지만 이번처럼 분위기가 험악한 경우는 처음이다. 남북관계가 안 좋다 보니 그런 모양이다. 그러나 북한 식당의 음식 맛은 최고였다. 그동안 중국에서 아무리 좋은 음식이 나와도 입맛에 맞지 않았는데 북한 식당의 음식은 늘 최고였다. 그중에서도 김치맛은 압권이다.

산천어

그런데 이번에는 색다른 음식이 나왔다. 분명히 회 모양은 민물회인데 맛은 바다회 이상으로 식감이 좋다. 무슨 회인지 물어보니 산천어회라고 한다. 산천어는 연어과인 한국의 민물고기로 송어의 절반 정도밖에 되지 않고 생김새도 송어의 새끼와 비슷하다. 수온이 20도가 넘지 않고 산소가 풍부한 강 상류의 맑은 물에서 사는데, 우리나라에서는 대부분 동해로 흐르는 강에 분포한다. 연가시, 버들치, 열목어와 더불어 1급수 지표종으로 물이 맑고 아주 차가우며 물속 산소가 풍부한 하천의 최상류에 산다고 한다. 북한식당의 식재료들은 북한에서 직접 갖고 온다고 한다.

맛있는 식사로 찜찜한 기분을 털고는 연길 시내로 들어가니 연길시 야경이 환상적이다.

연길시 야경

상해의 황포강 야경 정도는 아니지만 천진 해하에서 본 야경 정도는 될 정도로 화려하다. 현재 연길시에 남은 조선족 인구는 15만이 채 안 된다고 한다. 대신 연길시 인구는 65만(2014년)까지 늘었고 지금은 70만이 넘는다고 한다. 즉 조선족 인구 비율은 계속 줄어서 이제는 20%선도 간당간당하여 조선족 자치주라는 명칭마저 위험할 정도라고 한다. 그리고 그 빈자리는 한족이 아닌 위구르, 키르기즈, 카자흐 등 투르크계의 소수민족들과 몽골인들이 채우고 있다고 한다.

연길시 야경

특히 교육에 있어서는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그동안 중국어 수업과 영어 수업을 제외하고 모든 수업은 한국어(조선어)로 했다. 그런데 2022년 입학생부터 교육개혁으로 인하여 모두 중국어로 수업을 한다. 국어 수업은 ‘조선어문’, 중국어 수업은 ‘한어문’이라고 했지만 2022년부터 ‘한어문’을 폐지하고 한족들과 똑같이 ‘어문’을 배운다. 대신 국어시간인 ‘조선어문’ 시간에 한국사에 대해 간접적으로 배운다.

교재에 수록된 읽기자료에 단군신화, 주몽전설, 열하일기, 청산별곡, 호질 등 근대 이전의 고전들이 포함되어 있지만 근대, 현대사는 배울 길이 없다. 대부분 조선족 학생들은 3.1 운동, 대한민국 임시정부, 6.25 전쟁, 4.19 혁명, 5.18 광주민주화운동 등에 대해 전혀모른다. 근대사는 중국공산당이 어떻게 위대한지만 배우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는 학교에서 중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부각시키기 위하여 교육하기 때문이다. 학교 교훈부터 “뛰여난 민족인, 우수한 중화인, 개방된 세계인”이다.

연변의 맞춤법은 북한말을 따른다. 따라서 ‘뛰어난’을 ‘뛰여난’으로 표기하고 있다. 이는 한족이 아닌 소수민족인 조선족의 신분으로 중국인으로 살아가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가이드의 말을 빌리면 다른 소수민족들에게는 중국 당국이 아주 잘해주는 데 유독 조선족에게는 조선족을 한족에 동화시키는 정책을 시행한다고 한다. 이는 조선족에게는 자기들의 나라 즉 북한과 대한민국이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번 백두산 여행은 오래된 친구들과 함께한 즐거운 시간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국가와 민족, 우리가 깃들어 사는 국토와 그 속에 살아감으로써 우리 핏속에 흐르는 정신에 대해 다시 한번 더 깊게 생각하는 여행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