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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리학

주역의 이해 7 카를 융과 주역 3 : 분석심리학-그림자

by 황교장 2026. 6. 17.

주역의 이해 7

카를 융과 주역 3 : 분석심리학-그림자

 

1. 분석심리학

분석심리학(分析心理學, Analytical Psychology)은 카를 융이 창시한 심리학이다. 인간 정신을 의식과 무의식의 구조로 나누고, 무의식을 개인의 영역을 넘어 인류 공통의 세계로 확장하여, 꿈·신화·종교·예술 등 상징적 표현을 통해 무의식적 내용을 의식화하려는 심리학적 접근이다.

분석심리학은 경험심리학이며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도움 주기 위한 가설이다. 그런 의미에서 응용심리학, 의료심리학이며 우리 마음의 심층을 다루기에 심층심리학에 속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분석심리학이 심혼(心魂, Seele)을 다룬다는 점이다. 심혼은 정신의 독자성, 자아를 초월하는 정신의 자율성이다. 우리 마음 깊은 곳에는 혼이라 부를 수 있는 강렬함과 자유로움, 그리고 누미노제(Numinose)라 불리는 신성한 힘의 영향력을 발휘하는 어떤 것이 존재하며 끊임없이 작동하고 있다. 이러한 사실에 대한 통찰이 바로 분석심리학이다.

융은 인간의 마음을 설명하면서 세 가지 수준, 즉 의식, 개인 무의식, 집단 무의식으로 구분했다. 의식(consciousness)이란 개인이 직접적으로 알아차릴 수 있는 부분이며, 무의식(unconsciousness)은 의식되지 않은, 우리가 모르는 우리의 마음을 의미한다.

의식의 중심에는 자아(ego)가 있으며, 자아는 한 개인의 정체성을 추구하고 타인과의 경계를 수립하는 기능을 한다.

융은 개인이 다른 사람과 구별되는 자신만의 고유한 존재로 성장해 간다고 보고 이러한 과정을 개성화(individuation)라 했다. 개성화의 목표는 ‘자기의식의 확대’로 개인이 가능한 한 완전하게 자신의 전체성을 인식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 자아가 중심적인 역할을 담당한다.

융은 처음에는 프로이트의 학설에 따라 환자를 치료했으나, 학설과 일치하지 않는 현상을 발견했다. 즉 무의식에는 억압된 성적 충동뿐만 아니라 그 밖의 여러 가지 다른 충동과 심리적 요소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단순히 잊어버린 것들이나 자극이 약해 의식까지 미치지 못하는 내용 등이다.

인간이 태어나 살아오면서 이루어진 무의식 층을 개인 무의식(personal unconscious)이라 했다. 개인 무의식은 고통스러운 사고, 기억, 감정이 특정 주제를 중심으로 뭉치고 연합되어 심리적인 복합체를 이루게 된다. 이를 콤플렉스(complex)라고 했다. 흔히 콤플렉스는 열등감이라는 뜻으로 여겨질 때가 많은데, 열등감 콤플렉스는 다양한 콤플렉스의 한 종류일 뿐이다.

콤플렉스가 심하면 꿈과 히스테리 증상을 일으킨다. 그 예로 어머니 콤플렉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거세 콤플렉스 등이 있다.

융은 더 나아가 이미 태어날 때부터 마음의 토대를 이루고 있는 무의식의 층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태어날 때부터 갖추어져 있는 인간 고유의 원초적인, 그리고 인간이면 누구에게나 있는 보편적인 특성을 집단무의식(collective unconsciousness)라고 했다.

집단무의식은 개인의 마음속에 존재하는 인류 보편적인 심리적 성향과 구조를 말하며, 지리적 차이, 문화나 인종의 차이와 관련 없이 존재하는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행동 유형을 의미한다.

집단무의식을 구성하는 주된 내용은 본능과 원형이다. 본능은 행동을 일으키는 충동을 의미하고, 원형은 인간 정신의 보편적이며 근원적인 핵으로,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가장 기본적인 조건이다. 원형은 단순히 지적인 개념이 아닌 엄청난 에너지를 방출할 수 있는 능력이다. 융은 다양한 원형 중에서 우리의 성격과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5개 원형인 그림자, 페르소나, 아니마, 아니무스, 자기를 중요하게 여겼다.

 

가. 페르소나

페르소나(Persona)란 인간이 사회생활에서 필수적으로 써야 하는 가면으로서 사회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심리 기제이다. 페르소나는 고대 그리스의 연극에서 배우들이 쓰는 가면을 말하는데, 실상이 아니라 가상이라는 뜻이 있다. 페르소나는 다른 사람에게 자신을 드러내는 방식이다. 인간은 태어나서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페르소나를 배우고 여러 종류의 페르소나를 번갈아 쓰면서 살아간다. 그러나 페르소나는 사회적 상황에서 사고, 감정, 행동 조절을 배우는 데는 매우 유용하지만, 페르소나와의 동일시가 심해지면 진정한 자신은 멀어지고 결국 형식적이고 피상적인 삶을 살게 된다.

융은 개인의 자아의식이 지나치게 외적 인격, 즉 페르소나와 동일시함으로써 내적 인격을 외면할 때 우울증이 생긴다고 보았다. 특히, 오랜 기간 페르소나에만 충실했던 사람은 중년기에는 정신적 균형이 깨어지면서 우울증을 겪을 수 있다고 했다.

나. 아니마와 아니무스

아니마(anima)와 아니무스(animus)는 자신과 반대되는 성의 특성으로, 남성의 무의식 속에 있는 여성적 요소를 아니마라고 하고, 여성의 무의식 속에 있는 남성적 요소를 아니무스라고 부른다. 아니마는 남성이 가진 감성적인 면과 섬세함, 다정함 등의 여성적인 부분을 나타내고, 아니무스는 여성이 가진 논리성이나 합리성과 같은 남성적 부분을 나타낸다. 우리 몸이 생리적으로 남성호르몬과 여성호르몬을 모두 분비하듯이 우리는 모두 자신과 반대 성의 특성을 가지고 있다.

융은 조화로운 성격을 갖추기 위해서는 남성은 아니마를 여성은 아니무스를 무의식에서 끌어내어 통합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다. 그림자

그림자(shadow)란 우리가 자신의 성격이라고 의식적으로 알고 있는 것과 반대되는 특성을 말한다. 그림자에는 개인이 의식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성적, 공격적 충동이 포함되어 있으며 성장 과정에서 형성된 인격의 열등한 측면도 포함된다.

그림자는 개인이 숨기고 싶은 모든 불쾌한 요소들을 모은 자신의 어두운 부분이다. 즉 자아의 어두운 면의 무의식에 있는 나의 분신이다. 융은 모든 사람에게 그림자가 있다는 것을 강조했다.

라 자기

자기(self)는 성격의 중심이며 의식과 무의식의 과정들을 하나로 통합하는 역할을 한다. 자기는 어느 다른 누구도 아닌 그 사람의 전체를 말한다. 융은 자아가 자기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을 개성화(individuation)라고 불렀다. 개성화를 위해서는 그림자, 아니마, 아니무스 등 무의식의 내용을 의식으로 가져오는 것이 필요하다. 무의식의 내용을 의식으로 더 많이 가져올수록 자기실현에 더욱 가까워진다.

 

2. 그림자와 투사

그림자는 무의식에 있는 자신의 이미지이다. 그런데 자아는 자신의 그림자를 모른다. 왜냐하면 그림자는 자아가 볼 수 없는 무의식의 그늘에 있는 인격이기 때문이다. 그림자는 자아의 의식에서 결코 있을 수 없는 것, 가장 싫어하는 것이기에 절대로 그렇게 되지 않으려고 노력해 온 바로 그 성격이다.

우리가 대인관계에서 ‘버럭’ 화를 내는 것은, 우리 무의식의 ‘아픈 곳’이 건드려졌기 때문이다. 이 아픈 곳은 격한 감정을 내포하고 있는 무의식의 콤플렉스이다. 사람들마다 마음속의 어떤 부분이 자극받느냐가 다를 뿐 누구에게나 아픈 곳이 있다. 그림자는 의식에서 배제되어 있어 의식에서 볼 때 ‘나에게는 속할 리 없다’라고 부정하는 게으름, 불성실, 무능력, 비겁함, 탐욕, 야비함 등 인간 성격의 온갖 열등한 부분과 연관되어 있다.

자신의 그림자를 볼 수 있는 방법은 대인관계에서 일어나는 투사를 살펴보는 것이다. 투사(projection)란 자기 스스로 용납할 수 없거나 사회적으로 용납되지 않는 충동이나 생각을 다른 사람이나 사물에게 전가하여 자아를 보호하고자 하는 방어기제이다. 무의식의 그림자는 투사를 통해 밖으로 드러나기 때문에 그 투사 대상을 향한 자신의 감정을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다.

투사는 자신을 돌이켜보고 자신으로부터 떨어져 나간 자신의 분신을 되찾을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우리는 기본적으로 의식이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나쁜 것은 모두 남들 때문이고 남들이 가지고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싶어 한다. 그러하기에 투사된 그림자를 자신의 인격에 통합하기 위해서는 용기와 노력이 필요하다.

우리는 일상에서 다음과 같은 경험을 한다. ‘왠지 모르게 싫은 사람’, ‘이유 없이 비위에 거슬리는 사람’이 있다. 그럴 때 우리는 흔히 이런 말들을 한다. “그 친구 주는 것 없이 미워”, “돈만 아는 노랭이야”, “이중인격자 위선자야”, “거짓말쟁이 속물이야”, “엉큼하고 능구렁이에 호색한 같아” 등 이렇게 감정이 섞인 말투로 남을 비평할 때는 그림자의 투사 현상이 일어나고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투사는 어떤 대상에 대한 강렬한 감정반응을 불러일으키고 자아를 그 대상에게 집착하게 만든다. 따라서 투사가 일어나면 자아는 그 대상에 대해 초연해지기가 어렵다. 이것이 투사 현상의 특징이다.

문제는 투사가 무의식적으로 일어나기 때문에 사람들은 자신이 투사하고 있는지 모르거나 그 감정이 투사된 마음인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물론 상대방이 실제로 그러한 부정적인 특성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투사의 더 큰 문제는 상대방이 가진 성격의 긍정적인 측면을 볼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갖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 나쁜 놈’의 상당 부분은 나의 그림자인 것이다. 따라서 그림자를 ‘의식화’하면 그림자의 부정적 작용은 건설적으로 바뀔 수 있다는 것을 융은 강조한다.

 

3. 집단무의식의 그림자와 투사

투사는 무의식적으로 일어나므로 자신은 그것이 투사된 자기의 마음인지를 모른다. 그러나 그를 잘 아는 사람 눈에는 그가 비난하고 싫어하는 성격의 경향이 바로 그 사람 성격의 일부라는 것이 보인다.

어떤 사람이 한 좌중에서 청렴결백하고 고지식한 누군가가 부정부패의 혐의를 받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자 몹시 언짢은 표정으로 “그 사람 너무 독선적이야” “혼 좀 나야 해” “그런 사람이라고 돈에 더럽지 말라는 법 없지”라고 말했다. 그러나 사실 그 자신은 겉으로는 점잖으나 매우 독선적이고 돈에 더러운 것으로 정평이 나 있는 사람이었다.

이는 개인 무의식의 그림자 투사의 예이다. 그런데 융은 그림자라는 말을 집단적 무의식의 내용에도 적용시킨다.

모든 원형상(原型像)에는 밝은 면과 어두운 면, 창조와 파괴의 양면이 있다. 또한 우리의 무의식에는 의식과 무의식을 하나로 통합하고자 하는 핵심적인 원형이 있다. 이것을 ‘자기원형’이라 하는데 이 또한 그림자를 가지고 있다.

원형적 그림자는 개인 무의식의 ‘나’의 그림자에 비해 엄청나게 강력한 에너지를 갖고 있다. 이는 신화적인 상을 띠는 파괴적이고 부정적인 모습을 하고 있으므로 그러한 원형적 그림자 상이 외계로 투사되면, 그 대상에 대해서 사람들은 일상적인 대인관계에서 느끼는 감정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의 강한 증오감, 혐오감, 공포감 등을 느끼게 된다. ‘마귀’ ‘사탄’이라 부르는 것들이 자기 원형의 그림자 상이 될 수 있다. 우리는 이미 한국전쟁을 통해 “반동분자 처단하라!”는 구호가 외쳐진 인민재판의 피비린내 나는 처단의 현장을 경험했다. 그리고 중국의 문화를 송두리째 파괴한 문화혁명 당시 홍위병들의 문화인 처단도 그림자의 집단투사를 바탕으로 빚어진 사건이다.

또 다른 그림자의 집단적 투사로 마녀사냥을 든다. 중세에서 르네상스기에 걸친 마녀사냥은 그 당시 사람들의 의식 세계에서 배제된 자유분방한 삶, 쾌락에의 욕구, 억압된 성적 욕구의 집단투사로 일어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마녀는 획일적 율법주의, 금욕주의, 정신주의의 특징을 가진 당시 사람들의 의식 세계 밑에 도사리고 있던 집단적 그림자였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집단적 무의식의 그림자는 그대로 의식에 동화할 수 없다. 이는 원형이 지닌 강렬한 에너지가 감정적 충격의 형태로 의식에 작용하여, 의식의 기능을 지배해 버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마음속에 전율할 만한 파괴적 충동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우리 자신과 인류를 위해 큰 공헌을 한 것이라고 융은 주장한다. 그러한 인식은 무의식의 원형적 그림자에 사로잡히지 않는 면역력을 주기 때문이다.

 

4. 전쟁과 그림자의 집단투사

전쟁은 흔히 합법화한 집단폭력이지만 그 밑바닥에는 악의 원형, 그림자 원형의 엄청난 에너지가 도사리고 있다. 그림자 원형이 적의 집단에 투사되면 적은 인간이 아닌 일종의 괴물로 보여 죽여도 좋거나 죽여야 할 악한 존재이다.

전쟁도발자들은 국민의 집단적 무의식을 자극하여 그림자 원형의 투사를 촉진시키기 위해, 정의와 자유를 위한 성전, 민족 해방을 위한 혁명, 세계 인류의 구제를 위한 정벌 등으로 적을 무찌르는 명분을 제시하여 집단적 광분을 부채질한다.

그림자의 집단적 투사의 역사적 사례는 나치 독일의 유대인 배척과 학살이 대표적이다.

유대인에게 비난을 퍼부었던 나치와 이를 추종했던 독일인들은 유대인더러 ‘작당한다’, ‘자기네끼리 논다’, ‘돈에 인색하다’, ‘자기네 전통만 고수하고 남과 섞이지 않는다’라고 욕을 했다.

그러나 정작 자신들은 아리안족의 순수한 피를 지켜야 한다며 오만했고, 스스로 우월감에 젖어서 자기네끼리 작당했으며 그들 자신 또한 매우 돈에 짠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자기의 그림자를 보지 않고 이를 유대인에게 뒤집어씌웠다.

이는 집단적 무의식의 그림자 원형이 투사된 것이다. 왜냐하면 이들에게 유대인은 마음대로 죽여도 좋은 버러지 같은 존재로 보였기 때문이다. 원형은 신화적 상으로 누구의 무의식에나 존재하는 것이므로 그것이 투사되는 곳에서는 대상에 대한 강력한 감정반응이 집단으로 일어나는 것이다.

 

5. 대한민국과 그림자의 집단적 투사

대한민국은 그림자의 최대 결투장이었고 지금도 그러하다. 민족상잔의 전쟁으로 막대한 희생을 치렀다. 단지 생각을 달리한다고 해서 죽고 죽인 사람이 수없이 많았다. 현재도 남북과 동서로 분열되어 있고, 여야가 극한 상황에 놓여 있다. 아직도 집단적 무의식의 그림자 문제를 여전히 해결하지 못한 채 남아 있다. 이러한 분열과 화해의 문제는 우리가 수행해야 할 최대 과제이다.

그 과제 중 하나는 지금도 진행 중인 지역감정과 집단적 그림자인 5·18 광주민주화운동이다. 광주민주화운동의 서막은 ‘서울의 봄’에서 시작된다.

서울의 봄은 1979년 10월 26일부터 1980년 5월 17일 사이에 전개된 민주화 운동 시기이다. 1968년 체코슬로바키아의 프라하의 봄에 비유한 명칭이다.

1979년 10·26 사건의 발생으로 국회에서 계엄령 해제와 유신헌법 개정 논의에 합의하여 유신철폐와 민주주의 실현에 대한 국민적 기대가 팽배해졌다. 그러나 전두환 등 신군부는 12·12군사반란을 일으켰다.

이에 맞서 학생들은 1980년 봄부터 대규모 시위를 벌이기 시작하였다. 신군부의 비상계엄에 저항하여 일어난 광주 5·18민주화 운동은 1980년 5월 18일~27일 광주와 전남 지역에서 신군부의 비상계엄 확대 등에 맞서 계엄령 철폐, 전두환 퇴진, 김대중 석방 등의 구호를 외쳤다.

이에 공수여단의 강경 진압으로 희생자가 발생하자 5월 21일 시민군을 조직하여 계엄군을 광주 외곽으로 몰아냈다. 그러나 5월 27일 새벽 공수부대의 무력 진압 작전으로 항쟁은 종결되었다. 희생자는 사망자 165명, 행방불명자 65명, 상이 후 사망자 376명 등 606명으로 집계되었다.

이러한 대학살은 집단적 그림자의 투사를 이용한 독재권력 집단의 명백한 만행이었다. 그런데도 아직도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다. 최근에도 일부 유튜버들은 집단적 투사를 부추기고 있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원형상의 투사는 위험하다. 사람을 바보, 장님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장님이 되지 않으려면 개인 개인이 깨어 있어야 한다. 선동자의 교묘하고 달콤한 유혹에 넘어가지 않도록 해야하며, 그림자를 비롯해 자신의 무의식을 의식화해야 한다.

따라서 투사되어온 자기의 그림자를 통찰하여, 자기 잘못을 남의 탓으로 돌리지 않고, 자기의 책임으로 걸머질 수 있는 용기 있는 시민집단이 되어야만 집단적 투사를 막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