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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이야기

현재형의 행복한 사람 박원순 변호사

by 황교장 2009. 2. 26.

현재형의 행복한 사람 박원순 변호사

 

토요일 지인과 함께 경주 문화유산 답사를 떠났다. 서출지에서 다가올 봄을 느끼고 있는데 반가운 전화가 왔다. 김해창 희망제작소 부소장으로부터의 전화다. 큰아들이 대학에 합격했다는 기쁜 소식이다. 

김해창 부소장은 나와는 특별한 인연이 있다. 고등학교 후배이자 대학원 동기생이다.  또 다시 휴대전화가 울린다. 박원순이라고 한다. 얼마나 그리운 목소리인가! 전화 통화를 하고 싶었지만 사인이 아닌 공인인지라 조심스러운 친구이다.

 

 

 

박원순 변호사와 나는 시골중학교인 창녕 영산중학교 동기다. 내가 박원순 변호사와 친구라고 하면 박변호사의 명예에 누가 될까봐 조심조심 자랑하고 있는 친구이다. 이런 친구에게서 전화가 온 것이다.

그런 중에 통화는 계속되었다. 천하가 다 아는 박원순 변호사와 이렇게 길게 통화를 한다는 것이 엄청난 영광이면서 또 한편 부담이다. 바쁘디 바쁜 친구를 너무 오래 동안 내가 잡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에서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두서없이 하다가 2월 25일 수요일 부산에서 초청 강연이 있어 오후 5시에 부산역에 도착을 할 예정이니 나와 함께 저녁식사를 하고, 자기를 민주공원에 저녁 8시까지 데려다 달라고 하면서 전화를 끝맺었다.

 

이 저명인사를 3시간 동안이나 나 혼자 독대를 한다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설렌다. 아름다운 여인과의 테이트 약속보다도 더한 설렘이다.

이날의 기분은 구름을 타고 하늘을 날아오르는 기분이었다. 인터넷에 박원순의 저서를 검색을 해보았다. 무려 스무 권이 넘는 저서명이 등장하였다. 이들 중에서 비교적 최신판이며 제목이 마음에 드는 책을 6권을 선정해 신청을 했다. 이 책들을 출판 년도의 역순으로 읽었다.

 

드디어 기대하고 고대했던 25일이 왔다. 학교에서 나와 민주공원으로 향했다. 사전답사를 겸한 것이다. 민주공원에 도착하니 오늘 행사를 준비하느라고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전화로만 인사한 이광호 관장님과 정답게 인사를 하고 7시 40분까지 박변호사를 모시다 주기로 했다. 다시 부산역으로 향했다.

 

5시 1분에 도착하기로 예정된 KTX는 예정시간보다 7분이 늦을 것이라고 안내판에 나와 있었다. 도착을 하려면 40분이나 남아 있다. 주변을 살펴보니 바로 앞에 책방이 있어 무척 반가웠다. 서점에 들어가니 서점 주인이 무슨 책을 원하는지를 묻는다. 시간이 남아서 책 구경 좀 한다고 했다. 이 책 저 책 뒤적이다가 오늘 신문에 소개된 책 중 조용헌의 '500년 내력의 명문가 이야기'의 2탄격인 ‘조용헌의 명문가’가 나왔다는 기사를 보았는데 그 책이 있는가를 물었다. 서점 주인은 ‘조용헌’을 모른다고 하면서 나에게 다시 자세히 묻는다.

 

그래서 ‘박원순 변호사의 책이 여기에 있느냐?’라고 물으면서 ‘박원순 변호사는 아느냐?’라고 하니 잘 안다고 한다. 착한 사람이고 좋은 일 많이 하지 않느냐며 오히려 반문을 한다. 그러면서 덧붙이는 말이 다른 사람들은 시민 운동하면서 정치에 뛰어들어 전부 정치물이 들어 사람 버렸는데 박변호사는 청정하게 남아 있다고 하면서 요즘 정치인들도 박변호사처럼 깨끗했으면 좋겠다고 한다. 그리고 며칠 전에도 텔레비전 아침마당에 나왔다고 한다.

 

이 말을 듣는 순간 기분이 좋아진다. 사실은 박원순 변호사를 기다린다고 했다. 그런데 이분의 표정을 보니 반신반의한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보니 출구에서 사람들이 몰려나오는 것이다. 중간쯤에서 박원순 변호사가 나타났다. TV에 나오는 그 모습 그대로다.

내가 웃으면서 ‘황대식이다’ 라고 하자 온화한 웃음으로 ‘너는 세월도 안 갔나 아직 팽팽하네’ 라고 한다. 사실은 천하의 박원순 변호사를 만나기 위해 어제 이발도 하고 염색도 했다. 이 장면을 서점 주인이 계속 지켜보고 있었다. 박변호사를 이분에게 소개를 하고 악수도 하게 했다. 정말 아름다운 장면이었다. 관상이 부전공인 나로서는 자연스럽게 이분의 표정을 볼 수밖에 없었다. 표정이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박원순변호사와 단 둘이서만 함께 한다는 것이 얼마나 뿌듯한 마음이랴!

 내 차의 옆자리에 태웠다. 3시간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를 미리 내 머릿속에 밑그림을 그려 놓았다. 시간을 적절하게 안배하여 부산대교를 건너 새롭게 건설된 남항대교를 지나서 송도에 있는 횟집으로 모셨다. 미리 전화로 예약을 하면서 주인에게 ‘우리나라에서 제일 유명한 사람을 모시고 가니 경치 좋고 조용한 자리를 마련해 달라’고 했다.

 

 

 

아직 이른 시간이라 식당에는 다른 손님도 없고 우리가 처음이다. 입구의 어항 안에 자연산 점도다리와 열기가 있었다. 이 두 가지 고기를 구경시켜 주면서 부산아니고는 볼 수 없다고 하면서 구미를 당기게 했다. 두 사람이 먹을 만큼만 달라고 했다.

주인에게 박원순 변호사님이라고 하자 그때서야 알아보고는 아주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며칠 전 아침마당에서 보았다고 하면서 온화한 표정으로 바뀐다. 내가 주인에게 ‘거짓말을 하지는 않았지요? 우리나라에서 제일 유명한 분을 모시고 간다는 것!’을 하니 주인은 더욱더 활짝 핀 웃음으로 답을 했다.

 

송도 앞바다가 훤히 바라다 보이는 자리에 마주보고 앉았다. ‘아! 여기 너무 경치가 좋네’라고 하면서 그런데 주변의 아파트들이 너무 조잡하면서 계획 없이 난립하여 뛰어난 경관을 버리고 있는 것이 아쉬움이라고 한다. 서서히 이야기가 무르익어갔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의 영역을 자유롭게 넘나들면서 화기애애하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특히 ‘프리윌’과 ‘글쓰기의 최소원칙’에 나와 있는 내용을 이야기하니 ‘뭐 그런 것까지 다 읽었느냐’고 핀잔은 하지만 내심 좋아하는 표정이다.

 

 

온화한 표정이 김수환 추기경님의 표정과 많이 닮았다고 하자. 자기를 추기경님과 같이 올리는 것은 추기경님을 모독하는 것이라고 한다. 겸손의 표현이다. 박변호사의 모습을 TV에서 보면서 추기경님과 많이 닮았다고 느꼈다. 이는 남을 위해 봉사하는 마음으로 삶을 살다보면 이와 같이 온화한 관상으로 바뀌는 것일 게다. 이타적인 삶을 사는 사람들의 관상을 보면 동서양을 막론하고 이와 비슷한 느낌을 준다.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관상에서 사주이야기로까지 나아갔다. 내가 추구하는 사주는 ‘운명결정론’이 아니고 ‘운명개척론’이라고 하자 의아하게 생각하면서 생년월일시는 정해진 것이 아닌가라고 반문한다. 생년월일시는 정해졌지만 운의 흐름은 늘 바뀌는 것이 사주 풀이의 핵심이며 주역의 이치 또한 이와 같다고 설명했다.

가장 행복한 인간은 자기가 하고 싶고, 좋아하는 일을 찾아서 평생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하면서 내가 박변호사의 책에서 확신을 가졌다고 말하자 어느 부분에서 그런 것을 찾았는지를 묻는다.

 

‘글쓰기의 최소원칙’이라는 책에 ‘글쓰기로 아름다운 세계를 디자인한다’는 주제로 박변호사와 김동식 교수의 대담이 실려 있다. 마지막 질문에 ‘앞으로 시민운동가로서 어떤 활동을 구상하고 있는지’를 묻자 박변호사는 ‘사실은 잘 모른다’고 답변했다. 그 이유로 다음과 같이 답변하고 있다.

 

“지금의 저는 일년 전의 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저는 끊임없이 다른 사람으로부터 무언가를 흡수합니다. 이런 작업이 1년이 지속되면 저는 다른 사람이 되는 것이고, 제 운동의 아젠다도 달라지게 되는 것이죠. 희망제작소를 구상하면서 좋은 민간씽크탱크를 하나 만들자고 생각했었는데, 지금 저는 씽크탱크와 컨설팅의 역할을 함께하고 있습니다. 벌써 변한 것이죠. 일 년 전 생각이랑요.”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덧 7시가 다 되어간다. 혹시나 차가 밀릴까봐 조금 서둘러 일어났다.

 

민주공원에 도착하니 7시 10분밖에 안되었다. 관장님이 자기들 총회가 있고 하니 7시 40분까지 모시고 오라고 했는데 너무 일찍 도착을 한 것이다. 둘이서 민주공원을 한 바퀴 돌면서 부산항의 야경을 감상했다. 멀리 광안대교도 보이고 부두의 정경이 다 들어왔다. 야경이 참 아름답다고 감탄을 한다. 이야기는 자연스레 건강으로 옮겨갔다. 중학생 까까머리 소년들이 어느 새 쉰을 훨쩍 넘긴 중늙은이의 나이가 되어 있다.

 

 

 

건강 비결의 한 방법으로 족욕 즉 발목욕을 적극 추천했다. 나를 처음 볼 때 젊다고 느껴진 것은 족욕과 마라톤 덕분일 거라고 하니 마라톤도 하느냐며 한편 부러워하는 것 같았다. 족욕을 하면 눈의 피로가 없어져 시력도 좋아지고 피부에 윤기가 난다고 하니 저녁에 해도 되느냐를 묻는다. 아침에는 시간이 별로 없고 저녁에 시간이 있다고 한다. 아침 저녁 언제라도 좋다. 족욕기에 발만 담그고 인터넷 작업을 하면 된다고 했다. 좋은 정보를 주어서 고맙다고 하면서 족욕은 한번 꼭 해보아야겠다고 다짐을 한다.

 

어느 덧 7시 40분이 되었다. 행사장으로 들어가니 여기저기서 박변호사를 알아보는 사람은 가장 아름다운 표정으로 인사를 한다. 그 표정들이 너무 좋다. 나는 잠깐 화장실에 들렀다. 화장실 거울 속에 비친 내 얼굴의 표정 또한 어느새 박변호사의 온화하고 여유 있는 표정을 닮아가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큰 나무 밑에는 역시 쉴 수 있는 그늘이 넓다는 것을 알았다.

 

 

 

8시가 조금 넘자 박변호사의 강연이 시작되었다. 자연스러우면서도 청중을 압도하는 조용한 카리스마가 느껴졌다. 그 동안 살아오면서 크고 작은 강연들을 많이 듣고 보았지만 박변호사의 강연처럼 감동적인 강연은 일찍이 들어보지를 못했다. 1시간 반의 분량으로 준비해온 원고는 주최측의 다른 일정으로 1시간만 한 셈이다. 그런데도 꼭 필요한 것들은 여유 있게 다하고 간 느낌이다.

 

그 중에 뇌리에 가장 강하게 남는 것은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해서는 안 된다. 대안책을 내어놓고 반대를 하라는 것은 현 정치권에게도 일갈을 한 내용들과 근본적인 의미는 같은 것이다. 근본적인 대안을 내어놓기 위해서는 공부를 지속적으로 끊임없이 해야 한다는 것이다.

참여연대의 예를 들면서 과거 박원순이 써먹었던 내용들을 아직도 똑 같이 써먹고 있다고 한다. 상황이 바뀌면 그 상황에 맞게 대처해야 하는데 아직도 발전된 모습이 없다는 것이다. 이 내용이 평소에 내가 갖고 있는 소신과 거의 일치하는 내용이다.

 

아쉽지만 특강이 끝이 났다. 특강을 마치고 뒤풀이에 박변호사 포함하여 중학교 동기생 다섯 명이 모였다. 박변호사와 우리 동기생들은 40년의 회포를 즐거운 이야기로 풀었다. 그러노라 박변호사는 10시 20분 발 KTX를 놓치고 심야고속버스로 서울로 향했다.

 

 

 

박변호사는 끊임없이 다른 사람으로부터 무언가를 흡수한다고 했다. 그는 그 흡수한 것을 또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 주는 사람이다. 그를 만난 오늘 저녁 동안 나 역시 그에게서 많은 에너지를 얻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 에너지를 가지고 나 역시 어제와는 다른 나로 바뀌어 갈 것이다.

 

인간의 행복은 죽을 때까지 자기의 적성에 맞는 일을 프리윌(free will, 자율의지)로써 찾아가는 것에 있다.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자기의 삶을 변화시키고 나아가 사회를 보다 나은 방향으로 개척하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이다.

그는 많은 사람들이 선망하는 직업인 검사와 변호사를 그만 두고, 명함에 소셜 디자이너라고 써놓고 다니면서 자가용도 없이 대중교통을 이용하면서도 어떻게 하면 한국사회를 좀더 좋은 세상으로 바꿀 수 있을까 하는 것을 고민하면서 열심히 살고 있다. 그는 진정 자신의 미래를 개척해 살고 있는 현재형의 행복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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