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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이야기

프로는 아름답다-박원순 변호사

by 황교장 2009. 5. 13.

프로는 아름답다-박원순 변호사

 

토요일은 대운산 등산을 하고 일요일은 부경대학교 평생교육원 풍수반에서 풍수답사를 하고 왔다. 토요일에 등산을 하면 일요일은 쉬어야 하는데도 일요일 새벽부터 늦은 시간까지 강행군을 했다. 그래서 그런지 몸이 무겁고 피곤했다.

그 동안 미루어왔던 일들을 어느 정도 마무리하고 나니 반가운 손님이 왔다. 서울에 사는 조카가 부산에 출장 왔다면서 학교로 찾아왔다. 피붙이는 늘 반갑다. 피가 섞이면 정감을 더하는 것이다.

그 동안의 안부와 상담을 하는 도중에 전화가 왔다. 김부윤 학장님이다. 평소에 나는 학장님의 인품을 존경해왔다. 나에게 부족한 면을 다 갖고 계시어 동일시(Identification)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 분이다. 이런 분에게 직접 전화가 왔으니 얼마나 기쁘겠는가.

 

학장님은 부산대학교 사범대학 학장과 부산대학교 교육대학원 원장을 겸직하고 있다. 나로서는 모교의 학장님이자 원장님이다. 전화의 내용은 내일 점심을 같이 하자고 한다. 불감청고소원(不敢請 固所願)이다.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물으니 박원순 변호사와 함께 점심을 하기로 약속하였는데 나도 같이 하자고 한다. 이 전화 한 통에 피곤함은 어디론가 가고 도파민과 세로토닌이 팍팍 솟아나고 있다는 것이 내 몸으로 느껴졌다.

 

 

이 두 분의 관계를 명리로 풀어보면 학장님이 戊土이고, 박변호사가 癸水이다. 戊癸 合火로 간합 관계이다. 궁합을 볼 때 많이 활용하는 내용이다. 그리고 오행을 보면 서로가 필요한 오행이 상대에게 있다.

 

박변호사와는 2월 25일 만나고 5월 12일 다시 만났다. 그런데 느낌은 어제 만나고 오늘 다시 보는 것 같다. 박변호사의 블로그(원순닷컴)에서 매일 만나고 있기 때문이다.

박변호사의 특강을 주최한 부산대학교 한국민족문화연구소에서 준비한 복국을 맛있게 먹고는 강연장으로 옮겼다. 강연의 주제는 ‘소셜 디자이너(Social Designer) 이야기’다. 소셜디자이너는 우리나라에서 단 한 명밖에 없는 직업이다. 우리나라 사회를 좀더 아름답게 디자인하고자 하는 데 그 의의가 있다고 한다.

 

박변호사의 강연이 시작되었다. 박변호사의 맑고 아름다운 음색이 듣는 이를 청정하게 만든다. 좋은 음색이 청중을 사로잡는 요소임에 틀림없다. 특별한 쇼맨십이나 몸짓을 취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청중과 연사가 호흡을 서서히 맞추어간다.

 

다양하고 많은 내용 중에서 가장 가슴에 와 닿는 것은 리더의 핵심조건에 대한 것이었다. 그는 조직이 크든 작든 간에 리더는 자기 희생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주장한다. 자기희생을 하지 않으려는 사람은 리더로서의 조건을 갖추지 못한 셈이다. 나 스스로를 반성하게 하는 대목이었다.

 

전편에 흐르는 강의의 주제는 창조성이다. 그는 대부분이 대학생이거나 대학교수들인 청중들에게 지금의 심각한 취업난도 창조성으로 극복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창조성에 관한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사례를 들면서 다양하게 제시하여 이해를 도왔다. 지하철 손잡이를 보면 길이가 한결같이 똑같은데 사람의 키에 맞추어 길이가 다양하게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일본의 경우 술의 종류가 4천 종이 넘는다고 한다. 일본 각 지역의 독창적인 술을 화면으로 직접 보여주면서 우리나라도 지역 특산품으로 지역의 실정에 맞게 술을 브랜드화하면 얼마든지 세계에 경쟁할 수 있다고 하였다. 그 예로 우리들의 고향인 창녕 양파로 만든 술을 들었다. 이러한 것들을 개발하면 앞으로 무궁무진한 일거리 창출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창조성을 강조하면서 전체적인 강연은 마무리하였다. 강의를 마치고 청중들과의 즉문 즉답이 이어졌다. 강의도 훌륭하였지만 내가 더 감동받은 것은 이어진 즉문즉답이다. 다양한 질문이 나왔는데도 단 한 번도 청중들의 질문에 더듬거리지를 않고 문제의 본질과 핵심을 바로 꿰뚫고 답변을 하였다. 머릿속에 갖고 있는 지식이 얼마나 많고 체계적으로 정리가 잘되었으면 저렇게 지혜롭게 답변할 수 있는지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름다움 그 자체였다. 좋은 글을 읽고 아름다움은 많이 느껴 보았지만 강연을 듣고 아름답다고 느낀 것은 처음이었다. ‘프로는 아름답다’라는 말이 어떤 의미인가를 진정으로 느꼈다.

 

논어의 계씨편과 중용에서는 사람의 지혜에 대한 등급을 셋으로 분류하였다.

첫째는 생이지지(生而知之, 나면서 배우지 않아도 스스로 깨닫는 사람)이고, 둘째는 학이지지(學而知之, 배워서 깨닫는 사람)요, 셋째는 곤이지지(困而知之, 애써서 고생 끝에 깨닫는 사람)나 셋 모두 앎에 이르면 하나라 하였다.

우리가 생각하기에 생이지라고 보이는 공자님도 자신을 태어날 때부터 알고 태어난 ‘생이지(生而知)’가 아니라 열심히 노력해서 아는 ‘학이지(學而知)’라고 했다.

 

“子曰 我非生而知之者好古敏以求之資也(자왈 아비생이지지자호고민이구지자야, 공자님이 말씀하시기를 나는 나면서부터 모든 것을 다 아는 사람이 아니라, 옛것을 좋아해서 힘써서 그것을 구하는 사람이다. 논어 계씨편 19)”

 

내가 보기에 박변호사도 ‘학이지’이지. ‘생이지’는 아니다. 그도 중학교 1, 2학년 때까지는 그렇게 뛰어나지 않았다. 중 3이 되어서야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성적을 낸 것으로 기억된다. 그는 창녕의 영산 중학교 출신으로 그 시절 중학생들의 꿈인 경기고등학교에 합격하였고 경기고를 졸업하고 서울법대에 들어갔다. 그러나 대학 1학년 때 민주화운동에 가담하여 감옥신세를 지면서 그만 제적을 당했다. 당시에 성인이 아닌 미성년자라서 감옥이 아니라 소년원에 수감되었다. 암울한 시대의 한 단면이긴 하지만 이 시기가 그의 인생에서의 전환기가 된 셈이다. 그 역시 자기가 감옥에 가지 않았더라면 오늘의 박원순은 없고 그냥 평범한 검사나 변호사였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늘 박대통령이 고맙다고 웃으면서 말한다.

 

 

그는 앞으로의 꿈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저는 늘 과로사하는 게 제 꿈이라고 말한답니다(?). 그렇다고 제가 못 죽어서 안달인 것은 아니구요. 다만 늙어서 노망하거나 병원에서 오래 있다가 주변 사람들 괴롭히는 것보다는 온 열정을 다해 세상을 위해 봉사하고 깨끗이 사라지는 것이 좋겠다는 것뿐이지요. 그래도 제가 혼신의 힘을 다해 바꾸고 업그레이드할 세상, 작은 희망을 만들기 위하여 이렇게 많은 일거리들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이고 감사한 일인가요? 그래서 오늘도 저는 행복하답니다.”

 

진정 아름다운 프로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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