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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제주여행

한라산의 설경

by 황교장 2010. 2. 3.

부산중앙중학교 부장교사연수 1-한라산의 설경

 

두 달 전에 부장교사 연수 장소로 제주도로 정하고 미리 예약을 해 두었다. 2월 1일 첫 비행기로 가서 2월 2일 마지막 비행기로 올 계획이었다.

첫날은 한라산의 영실-돈네코 코스 등산을, 둘째 날은 우도-성산일출봉-섭지코지-성읍민속마을-비자림-원당사지 5층석탑의 여정으로 계획하였다.

 

2010년 2월 1일 오전 6시 50분 발 첫 비행기로 제주도로 향했다. 모처럼 가는 제주도여행이라 잠을 설쳐 가면서 모두들 예정시간보다 일찍 나왔다. 초등학교 때 수학여행 가기 전날처럼 잠을 설쳤다고 한다. 그런데도 모두들 표정이 밝다.

 

비행기는 김해공항을 출발했다. 날씨가 흐려서 아래가 보이지가 않았다. 날이 맑으면 비행기에서 내려다보는 경치가 일품이어서 도착할 때까지 창가에서 눈을 떼지 않는 것이 평소의 습관이었는데 아무것도 볼 수가 없어 잠깐 눈을 부친 사이에 제주공항에 도착했다.

 

미리 예악해둔 관광회사의 미니버스가 대기하고 있었다. 아침식사를 오분작 뚝배기로 맛있게 먹었다. 비가 제법 많이 오고 있다. 대부분의 선생님들은 오늘 제주 관광을 하고 내일 한라산에 가지고 한다. 그러나 그렇게 하면 관광도 제대로 못하고 등산도 하지 못한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서 알기 때문에 설득을 하기로 했다.

 

버스 기사분에게 영실 휴게소에 전화를 내어보게 하니 영실도 비가 오고 있다고 한다. 잠시 갈등을 느꼈다. 그런데 계획대로 밀고 나가기로 했다. 비를 맞고 제주관광을 하는 것이나 비를 맞고 한라산을 등반하는 것이나 별 차이가 없지 않은가.

 

해발 1500m이상만 올라가면 반드시 눈이 온다고 장담을 하면서 겨우 설득을 하여 강행하기로 했다. 단체로 비옷을 구입하고는 영실로 향했다. 차는 시내를 벗어나 호젓한 산길로 접어들고 있다.

주변의 잡풀들은 철 이른 봄비를 맞아 촉촉이 젖어 생기를 더하고 있다. 제주도 특유의 풍광들이 나타났다. 목장에는 말들이 놀고 있다.

 

 

 

해발이 점점 높아지면서 날씨는 변하기 시작했다. 눈과 비가 섞여서 오는 진눈깨비로 바뀌고 있다. 조금 더 오르니 함박눈으로 변했다. 처음에는 억지로 끌려오는 것 같은 인상이었는데 함박눈을 보는 순간 선생님들의 표정이 금세 밝아졌다.

어린아이의 표정과 꼭 같다. 어리목 입구를 조금 지나자 눈이 많이 쌓여 미니버스로는 더 이상 올라갈 수가 없었다.

앞에 가고 있던 차 두 대는 눈길에 미끄러져 더 이상 못 가고 비스듬히 서 있었다. 그 광경을 본 기사의 표정이 굳기 시작했다.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그래서 여기에서 일단 내려주면 우리는 걸어서 영실까지 가겠다고 했다.

그런데 기사분이 정색을 하면서 지금 내리면 안 된다고 한다. 버스에서 사람이 내리면 버스가 가벼워져서 눈에 미끄러져 사고가 난다는 것이다.

 

차가 뒤로 조금씩 밀리고 있다. 눈에 미끄러져 가만히 있어도 뒤로 가고 있는 것이다. 조금만 더 탄력을 받으면 바로 추락하는 위기의 순간이다.

우리 선생님들의 표정을 보니 모두들 긴장을 하고 있다. 앞좌석을 두 손으로 꽉 움켜진 분들도 몇 분 보인다.

그때 2학년 부장님이 기지를 발휘했다. 일행 중 가장 연장자이자 나의 고교 선배님이기도 하다.

제주도 출신의 인문사회부장에게 고향에 온 기념으로 노래를 한 곡하라고 하신다. 그러자 이분 역시 노래만 빼고는 무엇이든 다 할 테니 다른 것을 시키라고 하는 바람에 모두들 웃고 말았다.

위기상황에서도 한바탕 웃고 나니 마음이 안정이 된 것 같다.

 

마침 그때서야 차를 반대방향으로 돌리는데 성공했다.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비교적 젊은 기사임에도 불구하고 아주 침착하게 대응을 잘 했다. 차는 조심스럽게 천천히 눈길을 내려가고 있다. 조마조마하면서 30여 분은 내려오니 날씨는 눈에서 비로 바뀌었다.

 

 

 

이곳에서 영실로 가는 정기노선버스를 기다렸다. 10시에 제주터미널을 출발한 버스가 10시 35분경에 도착했다. 정기노선 버스를 타고는 다시 영실로 향했다. 정기노선버스는 거침없이 올라갔다. 드디어 영실 매표소에 도착하였다. 다시 전열을 가다듬고는 출발했다. 영실매표소에서 영실휴게소까지는 2.5km이다.

 

이 길은 포장도로다. 차를 타고 갈 계획이었는데 걸어서 갈 수밖에 없었다. 세상일이란 계획대로 되는 것은 아닌 것이다. 삼삼오오로 걸어서 영실 매점에 도착을 하니 시계는 11시 반이다. 계획보다 무려 2시간이나 지체를 한 셈이다.

 

휴게소에서 어묵과 좁쌀막걸리를 한 사발 시켰다. 술 생각 있는 분들에게 한 잔씩만 권하고 출발을 했다. 내가 제일 선두에 서고 예체부장을 마지막에 배치했다. 본격적인 등산이다. 처음에는 천천히 걷다가 조금 속도를 내었다.

뒷사람이 따라오질 못하고 있다. 부지런히 올라야만 15년만에 개방되는 돈내코 코스로 내려갈 수 있다. 그러나 수준차가 많이 난다. 돈네코는 무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계획을 수정했다. 어리목코스로 내려가기로 마음으로 정했다. 무슨 일이든 무리를 하면 반드시 사고가 난다는 것을 그 동안 경험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어리목으로 내려가기로 결심하고 나니 마음에 여유가 생긴다. 천천히 뚜벅뚜벅 주변의 경치를 감상하면서 걸었다. 한라산에는 물이 참 귀하다. 그런데 이곳 영실은 아니다. 해발 1300m가 넘는 곳에 이렇게 많은 계곡물이 흐르는 곳은 아마도 영실뿐일 것이다. 태고의 신비가 가득하다. 눈바람이 제법 많이 불어온다.

 

이 코스는 8년 전 지금과 거의 비슷한 상황에서 가족과 함께한 코스이다. 어느 새 8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주역에서 모든 것은 다 변하는데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세월은 끊임없이 흘러간다는 사실만이 변하지 않는다는 진리관이다.

 

그 동안 살아오면서 이곳에 함께 온 사람들이 생각났다. 가장 최근에 온 것은 아마도 6년 전인 것 같다. 친구들과 함께 왔는데 그 중에서 이미 고인이 된 친구가 가장 먼저 떠올랐다. 이 개울을 건널 때의 환한 미소가 머릿속에 아른거린다.

 

옛 추억에 젖어서 걷고 있다가 뒤를 돌아보니 아무도 따라오지 않는다. 내 발걸음이 너무 빨랐던 것이다. 수준별 수업이 안 된 가이드가 된 셈이다. 다시 기다렸다가 가까이 오면 출발했다.

 

 

 

 

 

 

 

 

 

 

 

 

 

 

 

 

 

 

 

 

숲이 울창한 계곡길이 끝이 나자 이젠 본격적인 오르막이다. 오르막은 늘 힘이 든다. 오르막을 힘들게 오르다 보면 어느새 시야가 확 트이는 곳에 이르게 된다. 그 곳에서 잠시 앞으로 보면 감탄사를 자아내게 한다. 영실기암이다. 이곳까지 오르면서 모두들 말로는 힘이 든다고 하면서도 표정은 너무 맑고 밝다.

 

이곳 영실기암은 영주십경중에서도 으뜸이라고 한다. 영주(瀛洲)는 신선이 사는 곳을 뜻한다. 이곳 제주도를 달리 표현한 말이 바로 영주다. 따라서 영주 10경은 제주에서 가장 뛰어난 경치 열 곳을 말한다.

 

추사 김정희 선생과도 교우했다는 제주도 향토학자이던 매계 이한우(1818-1881)선생이 선택한 제주도의 10가지 경승이 ‘영주십경(瀛洲十景)’이다.

영주십경은 다음과 같다.

 

1. 영실기암(靈室奇巖, 영실의 기이한 바위들)

2. 사봉낙조(紗峰落照, 사라봉의 저녁노을)

3. 영구춘화(瀛邱春花, 영구의 봄꽃)

4. 정방하폭(正房夏瀑, 정방폭포의 여름)

5. 귤림추색(橘林秋色, 귤림의 가을 빛)

6. 녹담만설(鹿潭晩雪, 백록담의 늦겨울 눈)

7. 성산일출(城山日出, 성산의 해돋이)

8. 산방굴사(山房窟寺, 산방산의굴 절)

9. 산포조어(山浦釣魚, 산지포구의 고기잡이)

10.고수목마(古數牧馬, 풀밭에 기르는 말)

 

영실(靈室)은 한자로 풀이하면 신령스러운 방이란 의미이기도하다. 영실은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이 늘 좋다. 봄이면 절벽 사이로 화사하게 피어나는 철쭉꽃이, 여름에는 비온 후 짙은 녹음 사이로 떨어지는 폭포수가, 가을에는 만산홍엽을 이루는 단풍이, 겨울에는 기암괴석과 나무들이 눈꽃으로 치장하는 겨울 풍광이 더욱더 선경(仙境)이다.

 

또한 바위 하나하나가 장군의 모습을 닮았다고 하여 '오백 장군'이라고도 한다. 그리고 불교적인 측면에서 보면 오백 명의 나한이 앉아 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해서 '오백 나한'이라고도 불린다.

오늘같이 눈발이 휘날리는 날은 오백 나한이 눈을 맞으면서 앉아 좌선에 들어가 있는 느낌이 든다.

그러나 배고픈 민초들의 입장에서 보면 한 맺힌 원혼으로 보이기도 할 것 같았다.

이곳 영실기암에는 가난이 빚어낸 애달프고도 슬픈 이야기가 전해진다.

 

 

 

 

 

“한 어머니가 영실 골짜기에서 오백 아들을 낳고 살았는데, 흉년이 든 어느 해 아들들에게 양식을 구해오라고 하고는 어머니는 아들들을 위해 죽을 쑤고 있었다. 그러다 잘못하여 죽 솥에 어머니가 빠졌다.

그런 연유를 모르는 아들들은 돌아와 맛있게 죽을 먹었다. 맨 마지막에 돌아온 막내아들이 죽을 뜨려고 솥을 젓다가 이상한 뼈다귀와 옷을 발견했는데 바로 어머니가 입든 옷이다. 뼈는 당연히 엄마의 뼈였다.

막내아들은 통곡하며 그 길로 제주 서쪽 끝의 고산리 앞바다로 가 바위가 되었다. 나머지 형들도 뒤늦게 이 사실을 알고 슬퍼하며 울다가 바위로 굳어져 버렸다.

지금도 바람이 몹시 부는 날이면 이곳의 나무와 바위들이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웅웅거리는 소리가 마치 그들의 넋 인 양 처절한 울음소리로 들린다고 한다.”

  

똑 같은 경치를 보고도 보는 사람에 따라서는 이렇게 차이가 많이 나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은 아니다.

오늘이야말로 더 이상 말로서 표현할 수 없는 최고의 풍광이다. 지금까지의 해본 겨울산행은 눈이 오고 난 직후의 눈산행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오늘처럼 눈을 직접 맞아가면서 하는 산행은 드물었다. 지금처럼 함박눈과 절경을 모두 감상하기는 처음이다.

 

 

 

 

 

 

 

이윽고 오르막이 끝이 난다. 구상나무 군락지다. 한라산은 해발이 높아감에 따라 나무의 수종이 달라진다. 처음에는 주목나무와 비자나무가 보이다가 더 오르면 구상나무가 나타난다. 크리스마스 트리로 전세계적으로 가장 각광을 받은 나무가 코리아 구상나무라고 하는 다큐멘터리를 본 기억이 난다.

 

구상나무는 우리나라의 특산종으로서 한라산, 지리산, 덕유산, 백운산, 가야산, 무등산 등에서 표고 500-2,000m에 자생한다. 주로 습기가 많고 비옥한 땅에서 잘 자란다고 한다. 구상나무는 전나무와 같은 형제나무인 관계로 ‘코리안 퍼(Korean fir)’ 즉 한국 전나무란 이름으로 불리며, 학명도 ‘에이비스 코레아나(Abies koreana)’로 한국의 나무임을 확실하게 명기하고 있다.

 

국립산림과학원에 따르면 최근 이들 구상나무집단이 심각한 쇠퇴현상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 더욱 심각한 것은 후계림이 없다는 것이다.

이는 지금의 큰 나무가 죽고 나면 새끼나무가 없어서 더 이상 이곳에서는 구상나무를 볼 수 없다는 뜻이다.

이 세상에는 영원한 것은 없다고 하지만 이렇게 아름다운 구상나무의 설경이 좀더 오래도록 보존하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의 노력이 필요할 것 같다.

 

구상나무의 미래를 생각하면서 발걸음은 더욱더 천천히 했다. 구상나무의 설경을 한번이라도 더 눈에 담아두려고 좌우로 앞뒤로 살펴보았다. 눈길이 가는 곳이 모두가 다 절경이요 승경이다.

그리도 세차게 몰아치던 눈보라도 이곳에서는 잦아들었다. 이곳이야말로 명당이다. 바람을 막아주는 장풍(藏風)이 되는 곳이 풍수에서는 명당이다.

 

 

 

 

 

뒤따라오는 분들을 기다리다 가까이 오면 다시 출발을 했다. 등산은 늘 그렇다. 단체로 같이 가면 제일 마지막으로 오는 사람이 휴식을 취하려고 하면 다시 출발을 하기 때문에 꼴지는 늘 쉬지를 못한다.

그렇다고 꼴지에게 충분한 휴식을 주었다가는 사고가 나기 쉽다. 따라서 큰 산에 갈 때에는 미리 연습을 충분히 하고 와야 된다. 그렇지 않으면 힘이 들 뿐만 아니라 민폐를 끼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윽고 환상적인 구상나무 숲길이 끝이 났다. 나무가 하나도 없는 능선이 나왔다. 다시 눈보라가 휘몰아친다. 선글라스를 끼고 옷단장을 새롭게 했다.

매서운 눈보라는 선글라스도 크게 소용이 없다. 견디기 힘든 상황이 오자 눈앞에 윗세오름 대피소가 어렴풋이 나타났다.

 

 

 

 

 

잠시 기다리는 동안 일행들이 차례차례로 도착을 했다. 도착하는 순서대로 컵라면을 시켰다. 눈 속에서 김밥과 함께 먹는 컵라면 맛은 경험해보지 않으면 알지 못한다.

그 중 몇 분은 컵라면은 건강에 좋지 않을 뿐만 아니라 맛도 없어서 먹지 않았는데 컵라면이 이렇게 맛이 있다는 것이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고 하면서 연신 후루루 쩝쩝 먹으면서 감탄을 하고 있다.

총무선생님이 부산에서 마련해 온 김밥이라 더 맛이 있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다. 속을 든든히 하고 다시 전열을 가다듬어 어리목으로 출발을 했다.

처음 계획한 돈네코 방향은 이미 막혀 ‘입산금지’라는 팻말이 붙어 있었다. 어리목으로 내려오는 길에 잠시 동안 하늘에서 반짝 쇼를 한다. 햇볕이 나온 것이다.

일행들 중 누군가가 소리를 치고 있다. 감탄의 소리다. 저절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영혼의 소리인 것이다. 자연과 인간이 동화되는 순간이다.

 

 

 

 

 

 

 

 

 

 

 

 

 

 

걷기가 너무 좋다. 내려오는 길은 외길이다. 뒷사람들도 길 잃을 염려가 없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가장 믿음직한 김부장이 있기에 별 걱정 없이 내려왔다.

 

무념무상이다. 내가 산인지 산이 나인지, 눈이 나이고 나무가 나이다. 내려오는 줄도 걷고 있는 줄도 모르는 사이에 어리목 산장이 나타났다. 어리목 광장에는 눈에 익은 차가 체인을 감고 서 있었다.

 

몸이 좋지 않아 함께하지 못한 한 부장선생님과 오전에 교육청에서 상을 받기 위해 같이 출발하지 못하고 2시 비행기로 오신 교장선생님이 기다리고 계셨다. 반가운 마음으로 인사를 했다. 뒤이어서 한 분 한 분이 도착을 한다. 뒤에 도착한 분일수록 지친 기색은 역력하나 뭔가를 성취했다는 자신감이 더욱 찬 표정이다.

 

비가 온다는 핑계로 일정을 바꾸었다면 누리지 못할 경험들을 했다고 다들 칭송을 한다. 비와 눈과 바람을 맞으면서 힘든 산길을 함께 오르고 내려왔다는 것만으로도 진한 동료애가 생긴 셈이다.

극한 상황을 함께 하면 집단의 응집력이 생긴다. 군대에서 경험하는 전우애와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집단 에너지는 그 어떤 난관도 극복할 수 있게 만들어 준다. 이런 부장연수가 필요한 이유는 그 연수 동안에 긴 이야기를 나누지 않아도 얻을 수 있는 경험의 공유이다.

 

처음에는 억지로 끌려 올라갔지만 이처럼 아름다운 경치를 다시 한번 더 경험하고 싶은 순간들이었다고 한결같이 이야기하면서 즐거운 저녁식사 장소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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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 Raise Me Up

When I am down and, oh my soul, so weary

When troubles come and my heart burdened be

Then, I am still and wait here in the silence

Until you come and sit awhile with me

You raise me up, so I can stand on mountains

You raise me up, to walk on stormy seas

I am strong, when I am on your shoulders

You raise me up, to more than I can be

 

You raise me up, so I can stand on mountains

You raise me up, to walk on stormy seas

I am strong, when I am on your shoulders

You raise me up, to more than I can be

There is no life, no life without its hunger

Each restless heart beats so imperfectly

But when you come and I am filled with wonder

Sometimes, I think I glimpse eternity

You raise me up, so I can stand on mountains

You raise me up, to walk on stormy seas

And I am strong, when I am on your shoulders

Oh, you raise me up, to more than I can be

 

You raise me up, to more than I can be

 

당신은 나를 일으켜 주십니다

 

 

내가 힘들고 지칠 때 괴로움이 밀려와

나의 마음을 무겁게 할 때,

당신이 내 옆에 와 앉으실 때까지

나는 고요히 당신을 기다립니다.

당신이 나를 일으켜 주시기에, 나는 산에 우뚝 서있을 수 있고,

당신이 나를 일으켜 주시기에, 나는 폭풍의 바다를 건널 수 있습니다.

당신의 어깨 위에 있을 때, 나는 강건해 집니다.

당신은 나를, 나의 한계 너머로 일으켜 주십니다.

 

당신이 나를 일으켜 주시기에, 나는 산에 우뚝 설 수 있습니다.

당신이 나를 일으켜 주시기에, 나는 폭풍의 바다를 건널 수 있습니다.

당신의 어깨 위에 있을 때, 나는 강건해 집니다.

당신은 나를, 나의 한계 너머로 일으켜 주십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다 허전함을 느끼고

쉼없이 뛰는 심장은 너무나도 불완전합니다.

그러나 당신이 내게 오시고 내가 경이로움에 충만할 때,

때때로 나는 영원을 봅니다.

당신이 나를 일으켜 주시기에, 나는 산 위에 우뚝 설 수 있고

당신이 나를 일으켜 주시기에, 나는 폭풍의 바다를 건널 수 있습니다.

내가 당신의 어깨 위에 있을 때, 나는 강건해 집니다.

당신은 나를, 나의 한계 너머로 일으켜 주십니다.

당신은 나를, 나의 한계 너머로 일으켜 주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