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중앙중학교 부장연수4-비자림과 불탑사 오층석탑
성읍민속마을을 나와 비자림으로 향했다. 비자림으로 가는 길 이름이 ‘비자림로’이다. 이 길은 2002년에 건설교통부가 선정한 우리나라에서 아름다운 도로로 영예의 대통령상을 수상했다.
이 길이 대한민국 최고의 길이 된 데에는 원시림의 자연미를 간직하고 있는 ‘비자림’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길가에는 삼나무가 가로수처럼 펼쳐져 있다.
삼나무 너머에는 오름과 목장들이 보인다. 제주도에서만 볼 수 있는 풍광들이다.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하다가 보면 어느덧 차는 비자림 입구에 도착했다.
비자림 입구
비자림은 천연기념물 제374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곳에는 300-800년생 비자나무 2,800여 그루가 밀집하여 자생하고 있다. 비자나무는 재질이 좋아 고급가구나 바둑판을 만드는데 사용된다. 열매는 구충제로 많이 쓰인다.
비자나무의 잎 뻗음이 한자의 ‘非’자를 닮아 ‘비자(榧子)’라는 이름이 생겼다고 한다. 비자나무와 그 열매는 고려시대부터 공물로 진상되었다고 한다.
비자림 안에는 나도풍란, 풍란, 콩짜개란, 흑난초, 비자란 등 희귀한 난과 식물의 자생지라고 하는데 지금은 겨울이라 이들을 볼 수가 없다. 언젠가 이들을 직접 보고 싶다.
벼락맞은 비자나무
전에 왔을 때보다 길이 아주 잘 다듬어져 있다. 가장 먼저 맞이하는 나무가 벼락 맞은 비자나무다. 벼락을 맞고도 살아남은 나무이다. 생명의 끈질김을 느끼게 한다. 특히 피부병 환자가 벼락 맞은 나무에 살갗을 문지러거나 만지면 종기나 부스럼이 없어진다고 한다.
비자림 안으로 점점 더 깊숙이 들어가자 공기가 다르다. 비자나무 숲에서 뿜어내는 독특한 향기가 느껴진다. 비자림의 산책로는 붉은 색을 뛴 ‘송이(스코리아, scoria)’로 덮여 있다. 송이는 제주도 화산활동의 화산쇄설물로 알카리성의 천연세라믹이다. 이는 제주를 대표하는 지하천연자원이다.
송이는 인체의 신진대사 촉진 및 유해한 곰팡이의 증식을 억제시켜 준다. 특히 악취를 없애고 새집증후군을 없애는데 탁월한 효과가 있다고 한다.
산책로
술에 취한 사람이 비자림에 들어갔다 나오면 숙취가 자연적으로 해소된다고 한다. 비자나무 숲에서 뿜어내는 향기에다 송이까지 더했으니 술이 깰 만도 하겠다.
호젓한 비자림을 무념으로 걷고 있는데 안내판에 연리목의 이정표가 보인다.
다른 분들은 그냥 지나치지만 호기심 많은 나로서는 지나칠 수가 없었다. 산책로에서 조금 더 들어가면 사랑나무로 알려진 연리목을 볼 수 있다. 나무 두 그루가 참 특이하게 붙어 있다.
연리목
백낙천이 장한가에서 “하늘에서는 비익조가 되기를 원하고(在天願作比翼鳥), 땅에서는 연리지가 되기를 원한다(在地願爲連理枝)”라는 사랑을 노래한 구절이 떠올랐다. 백낙천의 시에서는 연리지(連理枝)이지만, 이 비자나무는 연리목(連理木)이다.
연리지와 연리목의 차이점은 나무의 줄기가 연결되면 연리목이고 가지가 연결되면 연리지다.
인간은 각자가 독립된 주체성을 갖고 살아가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모습일 수 있지만 항상 외롭고 쓸쓸한 존재일 수도 있다.
따라서 허무를 극복하기 위한 방편으로 연리목처럼 서로가 의지하면서 붙어 살아가는 모습 또한 의미가 있겠다.
새천년비자나무
연리목을 보고 나오면 비자림에서 가장 덩치가 크고 오래된 나무를 만난다. ‘새천년비자나무’다. 이렇게 큰 비자나무는 어디에서도 본 적이 없다. 안내판에는 이 나무가 고려 명종 20년(1189년)에 심어졌다고 되어 있다.
어디에서 근거를 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올해로 821세인 셈이다. 안내판에는 이 나무가 제주도 내 모든 나무 중 최고령목이라고 적혀 있다.
이 나무는 지난 2000년 1월 1일자로 지역의 무사안녕을 지켜온 숭고한 뜻을 기리고 희망과 번영을 구가하는 새천년의 문을 열고자 하는 취지에서 ‘새천년비자나무’로 명명됐다고 한다. 성읍리에 있는 느티나무의 수령은 천 년이라고 하면서 821년의 비자나무가 도내 가장 고령목이라고 한다.
어느 나무가 더 오래된 나무인지를 가릴 필요가 있겠다.
올레길
새천년비자나무를 보고나면 다시 돌아 나와야 된다. 더 이상 길이 없다. 비자림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일 것이다. 그러나 이곳에서 멈추기에는 길이 너무 짧다.
아쉬움을 달래면서 비자림을 나오자 비자림이 끝나는 곳에 아름다운 올레길이 끝없이 이어져 있다. 가지 못하게 막아놓았다. 가지 못하는 길은 항상 마음에 남는다. 저 길도 언젠가는 개방하여 끝까지 걸을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버스는 마지막 답사처인 불탑사로 향했다. 잠시 조는 동안 차가 멈추었다. 불탑사가 아닌 다른 곳으로 기사가 안내를 한 것이다.
새롭게 만들어진 절인데 양식이 독특하다.
관광버스기사조차도 불탑사는 처음이라 잘 모른다고 하여 길을 잘못 든 것이다. 다시 내비게이션으로 불탑사가는 길을 찾아 불탑사로 향했다.
굳이 불탑사를 가고자 한 것은 불탑사 안에 있는 보물 제1187호인 ‘불탑사오층석탑’을 보기 위해서다. 불탑사는 해발 170m의 원당봉 기슭에 자리하고 있다.
불탑사의 원찰인 원당사(元堂寺)는 원나라시대 때 제주도의 3대 사찰 중 하나였다고 한다. 차가 절 입구까지 올라갈 수 있도록 길이 잘 포장되어 있다. 불탑사오층석탑은 제주도에서는 유일하게 보물로 지정된 탑이다.
불탑사 대웅전
홍예문
불탑사 일주문을 들어서니 아담한 불탑사 대웅전이 나온다. 소담스럽고 평안함을 준다. 절 동쪽에는 돌담에 홍예문이 하나 있다.
이 문을 들어서면 불탑사오층석탑이 자리하고 있다.
탑은 1단의 기단에 5층의 탑신을 두고 있다. 기단은 뒷면을 뺀 세 면에 안상(眼象)을 얕게 새겼는데, 무늬의 바닥선이 꽃무늬처럼 솟아나도록 조각하였다.
탑신의 1층 몸돌 남쪽면에는 감실(龕室, 불상을 모셔두는 방)을 만들어 놓았다. 상륜부에 올려진 머리장식은 아래의 돌과 그 재료가 달라서 후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짐작된다.
오랫동안 쓰러져 있었던 것을 한국전쟁 후에 복원하였다고 한다. 현재 위치가 원위치라고 전하고 있다.
불탑사오층석탑
감실
안상
오층석탑의 풍수는 삼첩칠봉(三疊七峰)이라고 하는데 내 눈에는 아무리 잘 보아도 이첩이봉 정도로만 보인다. 그저 조그만 산봉우리일 따름이다. 좌향으로 분석해 보아도 주산, 종산, 좌청룡, 우백호, 남주작인 안산이 마땅치 않다.
그런데 이곳은 산세를 기준으로 하지 않고 북극성을 향하고 있다고 한다. 탑이 세워진 때가 고려 시대라 원나라의 영향으로 천문을 중시한 모양이다. 별자리를 보고 점을 치거나 별의 기운에 따라 인간의 운명이 결정된다는 천문사상이 풍수에 반영된 것이라 볼 수 있겠다.
이곳은 ‘북두칠성의 명맥이 비치는 삼첩칠봉의 산세를 갖춘 곳에 탑을 세우고 기도를 하면 아들을 낳을 수 있다’는 어느 승려의 말을 듣고 원나라 기황후가 사람들을 시켜 이곳에서 기도를 하게 한 덕으로 아들을 낳은 곳으로 알려져 있다.
여기서 기황후에 대하여 조금 집고 넘어가자. 기황후는 기철의 누이동생이다. 기철은 기황후를 등에 업고 친원파 세력을 결집하여 남의 토지를 빼앗는 등 권세를 부리다가 공민왕에게 제거된 인물이다.
‘고려사’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요사이 나라 풍속이 크게 바뀌어 오직 권세만 추구하게 되었다. 기철 등이 군주를 놀라게 하여 나라 법을 혼란에 빠뜨려 관리 선발, 인사이동을 마음대로 하였다. 이로 인해 나라 명령이 들쭉날쭉하였다. 또 다른 사람의 땅과 노비도 함부로 빼앗는다. 이것이 과인이 덕이 없는 탓인가. 기강이 서지 아니하여 통제할 방법이 없음인가? 깊이 그 까닭을 생각하니 늘 슬프게 되노라.”
‘원사(元史)’에는 기황후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황후 기씨는 고려 사람이다. 황태자 애유식리달엽(愛猷識理達獵)을 낳았다. 원래 집안은 미천했으나 후에 귀하게 되어 3대가 모두 왕작으로 추봉됐다.”
기황후에 대해서는 전설 같은 이야기가 전해져 온다. 기황후는 고려가 원나라에 바친 ‘공녀’였다. 원나라로 끌려간 뒤 고려 출신 내시의 도움으로 황제인 순제에게 차를 올리는 일을 맡았다. 타고난 미모와 지략을 활용하여 순제의 총애를 받아 제2황후가 되는 데 성공한다.
그러나 그만큼 질시와 견제도 많이 받았다. 제1황후한테서 온갖 모욕뿐 아니라 심지어 매질을 당하기도 하였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기황후는 황실에서 모범적인 언행을 보였다. 돈을 모아 자신을 지지해줄 세력을 꾸준히 넓혀나갔다. 굶주리는 백성들에게는 식량을 아끼지 않고 베풀었다. 그러나 이런 선행과 지지세력 확대만으로는 자신의 입지가 확실해질 수가 없었다.
자신의 권력을 굳건히 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황제의 뒤를 이을 아들을 낳는 것이었다.
황후가 되었지만 아들을 얻지 못하자 ‘북두칠성의 명맥이 비치는 삼첩칠봉의 산세를 갖춘 곳에 탑을 세우고 기도를 하면 아들을 낳을 수 있다’는 한 승려의 비방을 받고는 천하의 이름난 풍수들을 동원해 천하를 두루 살펴 찾게 했다.
마침내 제주도 동북 해변에서 원하던 자리를 찾았다. 기황후는 사신을 보내 오층탑을 쌓게 하고 극진한 기도를 올리게 했다.
이런 노력 덕분에 1339년 기황후는 원나라 황통을 이을 아들을 낳았다. 바로 소종황제(昭宗皇帝)다. 드디어 기황후는 황제의 어머니가 된 것이다. 황제를 낳게 한 명당터의 석탑이 바로 불탑사오층석탑인 셈이다.
그후 불탑사오층석탑은 아들을 못 낳은 수많은 여인들이 불탑에 지극정성으로 기도하여 아들을 많이 낳았다고 하는 전설이 이어지고 있다.
아들을 낳고 싶은 분은 지금이라도 이 탑에서 빌면 낳을 수 있지 않을까 싶지만 지금은 아들보다 딸을 더 귀히 여기는 세상이다.
세간에 회자되는 말 중에는 “매우 잘난 아들은 국가의 아들이고, 잘난 아들은 장모의 아들이고, 못난 아들만 내 아들이다”라는 말이 유행할 정도이니 아들을 꼭 주장할 필요는 없겠다.
불탑사오층석탑을 나와 제주시의 한 음식점에서 제주흑돼지구이로 저녁을 맛있게 먹고는 8시 40분 비행기로 제주를 출발하여 무사히 부산에 도착했다.
비록 1박 2일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첫 비행기로 출발해서 마지막 비행기로 돌아오니 2박 3일 정도는 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아주 먼 곳으로 아주 긴 시간 동안 여행을 다녀온 듯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여행이란 어디로 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누구와 가는가가 더 중요하다는 말이 있다. 같은 학교에서 같은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동고동락을 하는 동료들과 함께 하는 여행은 단순히 물리적인 시간과 공간적인 이동만으로 가늠할 수 없는 무언가를 쌓게 만들어준다.
이러한 여행을 통해서 서로를 더 잘 이해하게 되고 그 이해를 바탕으로 서로 도와가면서 또 한 해 동안 학교를 이끌어갈 힘을 얻게 된다. 그런 면에서 중간관리자 역할을 하는 부장들과 관리직이 함께 하는 연수는 꼭 필요하다고 본다.
비록 이 중에서 같은 학교에서 함께 근무할 사람도 있고 다른 학교로 가는 사람도 있지만 이 연수를 통해서 재충전한 에너지로 자신이 근무하는 그곳에서 의미있고 중요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 것이다.
정년퇴임을 맞이한 교장선생님, 한 해 동안 고생하신 우리학교 부장선생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린다.
Midnight,
Not a sound from the pavement
Has the moon lost her memory?
She is smiling alone
In the lamplight,
The withered leaves collect at my feet
And the wind begins to moan
Memory,
all alone in the moonlight
I can dream of the old days
Life was beautiful then
I remember the time
I knew what happiness was
Let the memory live again
Every streetlamp
seems to beat a fatalistic warning
Someone mutters,
and the streetlamp sputters
And soon it will be morning
Daylight,
I must wait for the sun rise
I must think of a new life
and I musn't give in
When the dawn comes,
tonight will be a memory too
And a new day will begin
Burned-out ends of smoky days
The stale, cold smell of morning
A streetlamp dies, another night is over
Another day is dawning
Touch me,
It's so easy to leave me
All alone with a memory
Of my days in the sun
If you touch me,
You'll understand what happiness is
Look, a new day has begun
한 밤중
거리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고
저 달은 추억을 잃어버렸나요
홀로 미소를 짓고 있네요
가로등 사이로
말라버린 낙엽이 발 밑에 쌓이고
바람은 신음소리를 내기 시작하네요
지나간 추억
달빛 아래 홀로
난 오래 전 날들을 꿈을 꾸어요
그땐 사는 게 아름다웠죠
그 시절이 떠올라요
행복이 뭔지 난 알았어요
추억이 다시 살아나게 해요
모든 가로등들이
운명적인 경고를 울리는 것 같아요
누군가가 웅얼거리고
가로등은 깜박거리고
이제 곧 아침이 올 거예요
한 낮의 빛
난 떠오르는 태양을 기다려야 해요
새로운 생활을 생각해야 해요
포기하면 안돼요
새벽이 오면
오늘 밤 또한 추억이 될 거예요
그리고 새로운 날이 시작될 거예요
그을인 날들의 타버린 지스러기
곰팡내나고, 서늘한 아침 냄새
가로등은 꺼지고 또다른 밤은 끝났어요
새로운 날이 통 트지요
날 어루만져줘요
날 떠나기는 아주 쉬워요
태양석 한낮의
추억을 갖고 혼자서
날 어루만져준다면
당신은 행복이 뭔지 알게될 거예요
봐요 새로운 날이 시작되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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