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절터의 석탑 이야기
신우택 지음 「사라진 절터의 석탑 이야기」는 선인 출판사에서 나온 신간 도서다. 책 제목부터가 나의 가슴을 뛰게 한다.
‘사라진 절터의 석탑 이야기’를 펼치자마자 단숨에 탐독하고는 다음 날 책을 손에 들고서 답사를 나섰다. 이 책은 ‘사라진 절과 남겨진 탑의 기록’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저자가 전국에 있는 폐사지를 오 년 동안 직접 답사한 기록물이다.

어릴 적부터 저 산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가 궁금했던 나는, 초등학교 무렵에는 자전거를 타고 고향 집 근처 두루 삼십여 리를 누볐고, 중고등학교와 대학을 다닐 때는 방학이 되면 오토바이를 타고 두루 백여 리를 구경하면서 다녔다. 직장인이 되어서는 일 년에 평균 팔십여 일 배낭을 메고 전국 곳곳과 해외를 여행했다. 퇴직한 이후에도 가장 많은 시간과 정열을 여행에 쏟았다. 지금까지 쓴 여행기만 이백육십여 편에 이른다. 나에게 있어 여행은 삶 그 자체라고도 할 수 있다.

영양현리삼층석탑
이 책을 들고 제일 먼저 간 답사처는 경북 영양군이다. 그동안 여러 사람들과 답사를 한 곳도 영양이다. 영양은 볼거리가 많은 고장이다.
담양의 소쇄원, 보길도의 부용동과 함께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3대 정원으로 꼽히는 ‘서석지’를 필두로, 조지훈 생가가 있는 ‘주실마을’, 이문열의 고향인 ‘두들마을’, 주변의 빼어난 경관에 위치해 장중한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산해리 오층모전석탑’ 등이 모두 영양에 있다.

영양화천리삼층석탑
그런데 이 책에는 내가 가보지 못한 곳이 소개되어 있다. ‘영양 화천리 삼층석탑’과 ‘영양 현리 삼층석탑’, ‘영양 현리 당간지주’다.

영양현리당간지주
저자는 이곳을 답사하고서는 “답사를 하며 너른 들에 홀로 서 있는 탑이나 외딴 마을에서 늙어가는 탑에서 본 것은 탑의 구조나 양식만이 아니다. 그건 누군가의 간절한 기원이자 극진한 정성이고 그리움이다. 이제 그만 석탑을 뒤로하고 아름다운 길을 간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은 집으로 가는 길이라고 말이다.”라고 끝을 맺는다.

영양현리오층모전석탑
영양은 이곳 말고도 볼거리가 더 있었다. ‘영양현리삼층석탑’에서 바로 반변천만 건너면 흑회색 점판암을 벽돌 모양으로 다듬어 쌓은 ‘영양현리오층모전석탑’이다.

화강암 문설주

당초문
이 탑에는 덩굴무늬 장식 문양인 당초문(唐草紋)이 새겨진 화강석 문설주가 특징이다.

영양삼지동모전석탑
그리고 독특한 지형에 자연석을 기단으로 한 ‘영양삼지동모전석탑’도 색다른 볼거리였다. 이 또한 ‘사라진 절터의 석탑 이야기’ 덕분이다.

저자는 서문에 “경주에 한옥을 마련한 친구가 몇몇 친구를 초대해주어서 집들이 겸 경주지역 문화유산답사를 했다. 월정교, 최부잣집, 남산 탑곡 마애불상군, 서출지 등을 들러보았다.
답사를 마치고 한 친구가 무장산 억새가 아름답고 산 중턱 무장사지의 삼층석탑도 둘러볼 만하니 다음에 가보라고 귀띔한다. 이때부터 절도 스님도 없지만 석탑이 지키는 폐사지를 찾아 나서기로 마음먹었다. 그냥 텅 비어 있는 폐사지가 아니라, 석탑이 있어 결코 폐허가 아닌 절터를 찾아 나서게 된 것이다. 그런 폐사지에서 건전지의 극에 혀를 댔을 때처럼 싸한 느낌과 아울러 찌릿하게 전율이 일 때도 있었고, 별빛 밤하늘에 일곱 개의 별을 이어서 북두칠성 국자를 완성했을 때처럼 희열감을 느낄 때도 있었다. 그렇게 시작된 5년여에 걸친 폐사지 답사가 어느덧 백여 곳을 이르게 되었다.”라고 했다.

중나리
저자는 나를 만나면 늘 고맙다고 이야기를 한다. ‘무장사지’를 소개해준 한 친구가 바로 나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저자는 평생을 여행 다닌 나보다 더 깊은 감성과 열정으로 여행의 즐거움을 체화하고 있다. 청출어람(靑出於藍)은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인가 보다.
논어 ‘옹야(雍也)’에 ‘공자가 말하기를 아는 것은 좋아하는 것만 못하고 좋아하는 것은 즐기는 것만 못하다(子曰 知之者 不如 好之者 好之者 不如 樂之者)’라고 했다. 저자는 여행을 좋아하는 것을 넘어 즐기고 있는 진정한 여행자이다.

닭의난초
저자는 나와는 부산남고등학교 동기생이자 부산대학교를 같이 졸업한 친구이다. 평생을 교직에서 근무했다. 부산대학교 사범대학 수학 교육학과를 수석 입학한 수재(秀才)로 이학박사 학위를 받은 수학 천재로 학생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선생님이었다.

이 책에는 폐사지 답사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어떤 이는 이름난 절이 아니라도 대웅전 앞에 볼 수 있는 탑이 많은데 하필이면 폐사지 석탑 답사를 하느냐? 라고 묻는다. 종이 한 장과 연필만 있으면 몇 시간이고 즐거운 일이 있을까? 바로 수학 문제를 푸는 일이 그렇다. 이젠 그 즐거움을 느끼기엔 내 머리에 한계가 왔다. 절도 사람도 없이 덩그러니 있는 석탑을 찾아가는 설렘은 크며 비슷비슷해도 처음 가보는 길이기에 영화의 첫 장면을 기다리듯 긴장되기도 한다.”
“폐사지에서 석탑을 마주하면 오롯이 탑과 나, 둘만이 존재한다. 폐사지는 나를 성찰하고 번뇌를 씻겨주는 수행처인 셈이다.”
“폐사지가 아름다운 건 비어 있는 듯 충만하고, 적적한 듯 엄숙하며, 숱한 화마와 폭풍우를 감내하며 순응한 것들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삶이 쫓기고 팍팍하다면 쉼표를 찍듯 폐사지에 들러 석등이나 석탑 앞에 서 볼 일이다. 그리하여 세월의 무게를 읽어내고 천년의 법음(法音)에 귀 기울이는 것, 이것이 더할 나위 없는 행복이다.”

“세상이 울적하고 재미가 없다면 폐사지에 가볼 일이다. 거기에 한 공간의 중심이 된 자신을 발견하고 모진 풍파를 견뎌낸 천년 유물에 자신을 투영하고 위로를 받을 일이다. 어느새 저녁 어스름이 깔리고 땅거미가 어둑어둑 사위에 퍼질 무렵, 고요한 절터의 석물은 하나둘 빛이 된다. 형용할 수 없는 감동이 밀려오고 쉬이 발길을 돌리지 못한다.”라고 했다.

그리고 저자는 경주 마석산 삼층석탑 편에서는
“조금 스산한 기운이 감돌고 아무도 없는 산길, 덜컥 겁이 난다. 멧돼지가 나타나면 어쩌나? 등을 보이지 말고 그 자리에 있거나 나무 뒤에 숨자. 등산스틱이 있으니 그나마 안심이 된다. 탑에 대한 아무런 안내판도 없어 당황스럽다. 문화재 표시가 없는 무명의 석탑이다”라고 표현을 했다. 이 탑은 2026년 3월 16일에서야 ‘시도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탑이다.

경주마석산삼층석탑
저자가 혼자 폐사지를 답사할 때 느끼는 두려움과 스틱이 주는 안심은 공감하는 대목이다. 우리 인간은 두려움 안으로 들어가서 이를 넘어서려고 하는 본능적인 프로그램을 가지고 태어난다고 한다. 인간은 오직 한계 밖으로 나아가는 경험을 통해서만 자신에게 감춰진 더 큰 힘을 찾을 수 있고, 이를 통해 가장 큰 기쁨을 느끼도록 설계되어 있다. 그래서 여행은 도전이며 건강한 스트레스다. 우리가 여행을 통해 얻는 기쁨은 순수한 즐거움이 아니라 스트레스와 즐거움이 함께하는 ‘칵테일 감정’인 셈이다.

따라서 우리 인간은 결코 두려움을 떨칠 수 없고, 스트레스를 피할 수도 없다. 그래서 가치 있는 삶은 불편을 거쳐야만 만족은 깊어지고, 두려움 앞에 마주하는 용기가 있어야만 즐거움은 빛나게 마련이다. 용기는 두려움이 없는 것이 아니라, 두려움보다 더 가치 있는 것을 위해 두려움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용기다. 여행 또한 마찬가지다.

폐사지로의 여행은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사색의 시간을 갖게 하여 나를 성찰하고 번뇌를 씻겨주는 수행처이다. 또한 즐거움을 누리고 가치 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용기를 얻는 터전이 되기도 한다.
이 책의 답사처는 경주 분황사와 황룡사지를 첫 번째로, 상주상오리칠층석탑이 백십 여섯 번째로 마지막이다. 특히 상주상오리칠층석탑은 정감록에 ‘십승지’로 알려진 상주 우복동 근처에 있는 탑이다.
앞으로 가보지 못한 폐사지를 이 책을 들고 틈틈이 답사할 작정이다. 이 책의 마지막 구절인 “폐사지는 버려진 것이 아니라 고요하게 남겨진 것이다.”를 음미하며 우리 삶에 버려진 것은 무엇이며 남은 것은 무엇인지를 깨닫는 고요한 시간을 누려볼 참이다.
그런 계기를 마련해 준 친구의 책에 박수를 보내며 소략한 소개글을 마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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