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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이야기

술의 노예가 되지 않기 위해서 -어느 협심증 환자의 고백

by 황교장 2008. 6. 1.

술의 노예가 되지 않기 위해서

 

2008년 6월 1일 일요일, ‘부산여성서화작가회’ 하계연수에 사물놀이 강사로 초빙을 받았다.

부산여성서화작가회는 붓글씨와 그림을 전문으로 하는 전문작가들의 모임이다. 이 분들에게 금정산성에 있는 학생교육원에서 풍물놀이를 한 시간 연수를 하였다. 정확히 말하면 이분들과 같이 놀고 온 셈이다. 예술을 하는 전문가들이라서 그런지 적지 않는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아주 적극적으로 연수에 참여해 주었다. 듣기 좋아라고 한 말이겠지만 예정된 다음 일정을 취소하고 계속 사물놀이만 하잖다.

회장님의 말씀이 ‘서도와 회화는 정적인데 반해 풍물놀이는 동적이라서 평소에 해보지 못한 것을 해보니 정말 신명이 났다’ 라고 하면서 나를 추켜세워 준다. 오늘 내가 이 연수회의 강사로 초빙된 것은 순전히 부산학생교육원 정도영 원장님 덕택이다. 원장님의 사모님도 ‘부산여성서화작가회’ 회원이기 때문이다.

원장님으로부터 강사 초빙을 받고는 ‘내 모자라는 실력으로는 훌륭한 분들의 모임단체의 연수강사로는 부적격자’라면서 거절을 했다. 그러자 원장님이 너무 진지하게 부탁을 하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번 일요일이 6촌까지 온 집안이 다 모이는 6촌계 모임을 마산에서 한다고 연락을 받은 상태다. 거절하는 게 당연한데도 ‘오죽 답답했으면 나에게 부탁을 하셨을가’라는 생각이 나서 육촌계 모임 이야기는 하지 않고 그만 하겠다고 대답을 하고 말았다. 내 어줍잖은 실력이지만 알아주는 이가 있으니 한편 기쁜 일이다.

 


 

원장님과는 부산학생교육원에서 첫 인연을 맺었다. 나는 부산학생교육원에 1994년부터 1995년까지 2년간 파견교사 신분으로 근무를 하였다. 그 당시의 공식 명칭은 부산교육원이었다. 이때 만난 분이 바로 지금의 원장님이다. 그 당시 소위 3총사라고 명명한 3사람이 뜻이 맞아 늘 함께 했다. 정도영 원장님은 그 당시 전문직 시험 1기로 합격하여 신참 연구사님이었고, 나와 박성철 현 본청 과장님은 같은 파견교사였다. 그때 맺은 인연으로 지금도 종종 삼총사 모임을 하고 있다.

 

부산교육원은 고등학교 1학년 간부학생들에게 리더십교육과 심성개발교육을 시키는 것이 주된 교육내용이었다. 당시에 나는 주로 사물놀이를 이들에게 가르치는 과정을 맡고 있었다. 사물놀이는 특별히 따로 시간을 내어서 배운 적은 없지만 어릴 적부터 보고 행한 것이 내 몸에 밴 것이다. 일종의 비형식적인 교육을 받은 셈이다. 어떤 면에서는 타고난 재주다. 귀로 몸으로 자연스럽게 전승된 가락으로 가장 신명나게 전통적인 풍물을 가르칠 수 있었다. 이 당시의 추억으로 나를 잊지 않고 강사로 불러준 것만으로도 영광이다.

 

그 당시의 부산교육원 프로그램 중에서 잊지 못할 심성계발 프로그램이 있었다. ‘나는 누구인가?’ 와 ‘자기개방’이다. 나는 학생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강사였다고 생각된다. 그 시절에 나의 진가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평소에 사람들에게 사주를 보아주던 것을 심성계발 프로그램에 적용시켜 보니 정말 학생들에게 감동을 주는 것이었다.

한 분임 당 20명으로 구성되었는데, 이 20명을 담임 한 사람이 전담하여 이들과 삼박 사일 동안 숙식을 같이 하면서 학생들을 지도한다. 내가 담임을 맡은 분임은 ‘나는 누구인가?’ 와 ‘자기개방’ 프로그램을 마치는 시간에는 눈물의 바다를 이루었다. 학생들의 감성을 자극하여 마음을 정화시키는 프로그램이었다. 학생들의 기억 속에는 영원히 잊지 못할 추억들이 될 것이다. 이 당시의 가슴 뿌듯함은 지금 생각해도 흐뭇한 광경이다.

학생교육원의 건물들은 조금씩 확장은 되었지만 주된 건물은 그대로 있어 어제 인 듯 눈에 선하다. 그런 세월이 어언 10년하고도 4년이 더 흘러가 버린 것이다.

 

우리 인간의 삶은 유한적(有限的)이다. 끝없이 흘러가는 세월 속에 사람들은 저마다 주어진 운명의 시간을 살아가는 단 한번밖에 없는 일회적인 존재다. 또한 그 삶 속에는 행복과 불행이 반복되면서 언제 어떻게 바뀔지 모르는 변화무쌍한 삶을 살아가는 존재이기도 하다. 이러한 유한적인 삶이기에 더욱더 살아있는 동안만이라도 행복하게 잘 살려고 하는 것이 인간의 욕망이다. 이 유한적인 삶을 가능하면 건강하게 오래토록, 그리고 재미있고 의미 있게 삶을 영위하고자 하는 것이다.

내 취미생활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건강하기 살기 위해 시작한 것이 가장 많다. 마라톤, 등산, 요가, 테니스... 그리고 재미있고 의미 있게 살기위해 하는 것이 독서, 여행, 사주, 관상, 수상, 사물놀이, 야생화 등이다.

이처럼 건강을 최우선시하면서도 나의 의지가 박약하여 건강을 가장 많이 해치는 것이 있다. 바로 주(酒)님이다. 이 주님이야 말로 나의 영원한 화두(話頭)이다.

나는 유전적으로나, 체질적으로나 술이 맞지 않다. 젊은 시절(대학재학)에도 소주 반 병만 먹으면 토했다. 그러나 그 이후에 피나는(?) 연습에 의해 조금씩 조금씩 주량이 늘어난 것이다. 지금은 바로 이 늘어난 주량이 병폐이다.

지난 내 삶을 되돌아보면 술로 인해 삶이 뒤엉킨 경우가 많았다고 생각된다. 그 동안 살아오면서 크고 작은 사건과 부끄러움이 모두 다 이 술에서부터 출발한 것이 대부분이다.

 

올 초부터 시작된 일 년 간의 금주 계획이 3달 정도 지켜지다가 무산되었다. 물론 원인은 의지박약(意志薄弱)이다. 3개월간 금주하는 동안 일어난 내 생활의 변화를 보면 우선 얼굴과 몸의 피부가 희고 고와졌다. 또한 생활이 아주 규칙적이고 계획적으로 변하여 내가 세운 목표를 거의 달성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러한 생활이 다시 옛날의 습관을 버리지 못하고 조금씩 주님과 친하게 지내면서 서서히 망가지게 되었다.

 

과거의 습관을 버리는 것이 얼마나 어렵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하는 사건이 있다. 우리 학교에 대학 직계 후배인 선생이 지금 질병휴직을 하고 있다. 병명은 '말기 간암'이다. '간염' 환자인데도 술을 계속 마셔온 것이다. 그리고 간암 말기 진단을 받고서도 담배를 끊지 못하고 피운다. 습관의 고리는 이렇게도 무서운 것이다. 

 어제 전국소년체전에서 우리 학교 학생이 역도 부문에서 중학생 한국신기록을 세우면서 3관왕의 영예를 안았다고 축하 전화가 왔기에 축하를 하면서도 부탁의 말을 잊지 않았다. ‘호사다마(好事多魔)라고 술 적게 먹어라’고 하였다.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담배나 술과 같은 마약류에게 인간의 의지가 진 것이다. ‘건강은 절제에서 생긴다’라는 말이 정말 실감난다.

 

이러한 사실을 알면서도 나 자신한테는 그 동안 너무 관대하게 살아왔다. 지난 주에는 화요일부터 시작해서 토요일까지 일주일 내내 계속해서 술을 마셨다. 그 결과 나의 지병인 ‘이형협심증’의 증상이 삼년 만에 나타났다.

병이라는 것이 한 번 발병을 하면 정말 완치라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았다. 내가 이 병이 처음 발병한 것이 1985년 여름방학 때였다. 가족과 함께 충북 영동에 있는 친구집에 놀러 가서 삼 년 묵은 칡술을 그 전날 다 비우고 잠자리에 들었다. 그리고 아침에 일어나 화장실에서 쓰러진 것이다. 식은 땀이 온 몸에 나고 가슴의 심장이 꽉 쪼여 행동은 물론이며 말조차도 하지 못할 정도로 심하게 온 몸에 경련이 온 것이다. 약 10분간을 그렇게 고통이 진행된 것이다. ‘이렇게 사람들이 죽는구나’라고 느꼈다. 생불여사(生不如死)라는 말이 실감이 났다.

그 후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이때 받은 충격으로 그 동안 해오던 행시공부도 포기하고 오로지 건강을 위한 운동과 등산 그리고 평소에 내가 좋아하는 사주공부에만 전념하였다. 그렇게 살다가 다시 이 병이 재발한 것은 1999년도 10월경이다. 14년 만의 일이었다. 원인은 역시 술이다. 이 해는 한국영재학교(부산과학고)교사에서 전문직시험에 합격하여 부산학생교육원에 교육연구사로 근무할 때이다. 선생 할 때는 운동도 공부도 열심히 했지만 업무와 환경이 달라져 생활패턴도 많이 바뀌었다.

전문직 시험에 합격을 하고 발령을 받으면 법적으로는 전직이지만 승진보다도 더 영광스럽게 생각한다. 그동안 주변의 가까운 지인들과 축하주를 너무 자주 마신 것이 원인이다. 즉 운동은 하지 않고 술만 자주 먹은 관계로 재발한 것이다. 다시 병원 치료를 받고 2000년 3월 1일자로 학생교육원 철마분원장으로 발령을 받았다.

 

철마분원장 시절은 지금까지 내 인생에서 가장 알차게 보냈다고 생각된다. 그 중에서 가장 잘 한 것은 담배를 끊은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로 잘한 것은 마라톤 풀코스를 십 수 차례 완주를 했다. 그리고 독서도 열심히 했다. 이때부터 쓰기 시작한 독서노트가 대학노트로 지금 17권째이니 지금까지 내 인생에서 가장 보람 있었다고 말할 수가 있겠다.

 

그리고 2005년 3월 1일부터 용호동에 있는 분포중학교 교감으로 발령을 받은 것이다. 여기에서 또 문제가 발생했다. 새로 발령받았다고 지인들과 주님을 너무 많이 마신 것이다. 이때에도 아침에 목욕탕에서 협심증의 증상이 나타난 것이다. 다시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그리고 2008년 3월 1일자로 부산중앙중학교로 전근 발령을 받았다. 여기에서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그만 안일한 마음에서 조금씩 주님을 즐겨 마신 것이다.

급기야 지난 주에는 화요일부터 시작해서 토요일까지 일주일 내내 계속해서 술을 마셨다. 그 결과 나의 지병인 ‘이형협십증’의 증상이 다시 삼년 만에 나타났다.

이 병의 특징은 술을 먹지 않으면 최첨단 장비를 가지고도 찾아낼 수가 없다고 한다. 꼭 술을 먹고 난 후 아침에 술이 깰 때쯤이면 가슴이 쪼이는 것이다. 일반적인 협심증은 관상동맥이 좁아져서 생기는데 내 병은 술만 안 먹으면 멀쩡하다가 술만 먹으면 생긴다는 것이다. 이는 유전적으로 술이 받지 않는데 억지로 술을 많이 먹어서 되는 것일 수도 있다고 전문가는 말하고 있다.

 

어제 밤에 20년 전에 느꼈던 생불여사(生不如死)를 한번 더 느끼고는 정말 술의 고리를 끊어야겠다고 결심을 하였다. 사물놀이 연수를 위해 교육원에 가서 원장님과 점심을 먹었다. 반주로 포도주가 나와서 권하는 것을 사양하였다. 이유를 물으시길래 어제 저녁의 일을 말씀 드렸다. 내 말을 듣고 정원장님도 이와 같은 증상이 가끔 있다고 하셨다. 최첨단 정밀검사를 받았는데도 나타나지 않았다고 한다. 본인도 술이 체질적으로 맞지 않은데 자주 먹다보니 그런 증상이 나타난 것일 수 있다고 하였다. 사회생활을 하자면 부득이 원하지 않지만 술을 먹을 수밖에 없는 일이 생기기 마련이 아닌가. 하지만 원장님의 경우는 통증이 길어야 십 수초 정도인데 나의 경우 상당히 긴 시간 동안 이어지는 것은 생명이 위험하니 꼭 술을 끊으라고 당부 하셨다.

이젠 더 이상 술의 노예가 되지 않기 위해서 부끄러운 나의 과거와 의지박약을 만천하에 고하고 내 친한 지인들에게도 나와 놀 때는 주님 없이 차를 마시면서 담소를 즐겼으면 한다. 단 한 번밖에 없는 삶을 보다 더 오래 건강하게 유지하기 위해!

다시 한 번 퇴계선생의 글을 떠올려 본다.

★ 술이 사람을 망친다

아! 술이여

사람을 망침이 심하여

창자를 헐뜯고 병을 일으키며

본성을 잊은 채 헤매게 하고

덕을 잃게 하는구나.

한 사람에게 들어가서는

그 몸을 망치고

한 나라에 들어가서는

그 나라를 엎어버리는구나.

나도 일찍이 그 독을 맛보았고

그대도 그 구렁텅이에 빠졌었으니

옛 임금이 시까지 지어서

타이른 훈계를

어찌 함께 힘써 지키지 않겠소

뜻을 굳건히 세워

이 놈을 다스리면

저절로 많은 복이

찾아지리라.(제자 김응순에게 준 술 조심하라는 훈계)

퇴계선생에게 배우는 인생의 지혜 -이윤희-에서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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